한 주먹의 삶

뭉뚱그리면 그 무엇도 빛이 바랬다.

by 민트박하








망가지고 싶은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나를 망가뜨리고자 하는 욕망. 내가 망가지면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겠지.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존재하고자 하는 것. 나는 정말 존재하고 싶은 걸까. 존재와 비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비존재에 가까워지고 싶다. 아무도 나를 모르면 좋겠어. 조용히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대답은 없다. 고양이에게 말을 건다. 우리 아가. 작은 생에 겹쳐 놓은 여린 생.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물음을 던져도 대답은 없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존재가 죄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짊어진 거대한 죄.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 무엇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저 존재하고 있는데 나는 그저 존재하는 것이 때로는 커다란 죄가 된다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맡겨져 있는 생을 사는 것. 누군가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영향을 받고. 나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생각한다. 그저 쓰는 것. 이것이 나를 존재하게 한다고 나는 믿는다. 쓰는 것이 오로지 나를 나이게 한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이유. 내가 나로 있고 싶은 이유는 그저 쓰고 싶기 때문이다.




무엇을 쓰고 싶은지에 대해 오랫동안 물어보았다.


나는 비참과 절망에 대해 쓰고 싶다. 우울과 슬픔에 대해 쓰고 싶다. 깊게 가라앉는 침몰에 대해 쓰고 싶다. 나의 침몰에 대해 쓰고 싶다. 이 침몰을 침몰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주 얕은 물에서 놀다가 침몰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이 바닥에 머무르는 것이 죄가 될까? 더 깊은 곳에 가라앉은 사람들에게, 나는 그저 물장난을 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을까? 그러나 얕은 물에서도 사람은 익사한다. 문 손잡이에 줄을 걸어 자살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다양한 소멸의 방법에 대해 생각한다. 언젠가는 소멸할 나는 왜 아직 꾸역꾸역 살아 있는지. 가끔 터무니 없는 절망이 찾아온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나를 찾아올 때면 나는 물었다. 조용히 슬픔을 내 앞에 앉혀 두고 나는 질문했다. 왜 나에게 오는 거니. 왜 나를 살지 못하게 하는 거니. 왜 나를 존재하지 못하게 하는 거니. 나는 물었고 슬픔은 대답했다. 네가 나를 불렀어. 네가 살아 있어서 내가 찾아 오는 거야. 네가 존재하기 때문에 내가 존재해. 거대한 슬픔은 꾸역꾸역 내 방으로 밀고 들어왔다. 나는 그것에 깔려 가끔은 호흡이 버거웠다. 버거운 호흡을 붙잡고 그래도 살아야 해. 라고 중얼거렸다. 살아야 해. 어떠한 의무. 나는 의무감으로 살고 있었다.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


어디에서 왔는지.

왜 왔는지.


그런 것을 묻다 보면 쉬이 절망에 빠진다고 한다. 사람이 쉽게 우울해진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묻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절망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걷는다. 그것을 향해 걷는다. 그리고 푹신하고 농밀한 어둠에 나를 맡긴다. 침대에 뛰어들 듯 그것에 뛰어든다. 내가 원하는 게 뭔데? 나는 그저 가라앉고 싶을 뿐이야. 나열되는 단어들 그리고 문장들. 그것이 나를 감싼다. 나는 가끔 그렇게 가라앉고 싶었다. 악취와 악몽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좁은 방 안에서 나는 자꾸만 나를 생산해낸다. 또 다시 태어난 나는 검푸르다. 나는 검푸른 나를 찌른다. 물컹하다. 물컹물컹한 나를 이리저리 만져본다. 끈적한 나는 쉽게 묻어나지 않는다. 내 손바닥은 창백하고 나는 나를 만져본다. 너는 퍽 가엾구나. 중얼거린다. 나는 자기 연민에 가득 찬다. 너는 불행하고 불안하구나. 불안한 나의 정신머리를 어떻게든 일반인과 가깝게 돌려 보려 하였으나 번번히 실패하였다. 모두가 이렇게 살고 있는 거야? 모두가 이런 걸 견디면서 살고 있는 거야? 납득할 수 없었다. 왜 사람들은 이런 걸 견디면서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 같으면 죽어버렸을 거야. 가만히 발치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나는 내가 나였다면 죽어버렸을 거야. 죽음을 쉽게 입에 올렸다. 그러다가 관두었다. 죽는 것도 사치였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죽음은 사치라는 당신의 말.


자살도 사치스러워. 그래서 나는 죽지 못해.




누구나 이렇게 살고 있는 거, 맞아? 이해할 수 없어. 타인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 자신의 삶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일기장에 한 글자 한 글자 내리긋는다. 오늘도 나는 살아남았는데, 이렇게 살아남는 게 올바른지 모르겠다고 적는다. 한 자 한 자를 적는다. 내일이 어떨지 모르겠다고 적는다. 내일이 두렵고 불안하고 무섭기만 하다고 적는다. 나는 항상 겁에 질려 있었고 모든 것은 나를 무섭게 만들었다. 나는 울고 싶었지만 울지 못했다. 우는 것도 사치야. 소리 없이 흐느끼는 것이 특기였다. 엄마.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어?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해? 고독했다. 모든 것이 고독했다.


모든 것이라고. 나의 삶을 뭉뚱그린다.


한 주먹도 되지 않는 얄팍한 삶.


엄마. 이게 정말 시작일 뿐이라고 믿어? 이게 고작 내 삶의 시작이라니. 믿어지지가 않아. 이게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나는 거기에 깔려 죽는 거야? 내 불행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인 거야? 나는 이제 불행한 삶을 사는 거야?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견딜 수가 없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은 두서없이 쓰여진다. 오늘의 일기는 그래서 망가졌다. 나처럼. 어지러운 머리로 쓸 수 있는 것은 그저 불평과 불안과 불만과…….


이게 정말 전부일까. 내 삶의 전부는 이렇게 초라할까.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삶에서 나는 왜 이렇게 외로울까.




글을 쓰는 게 나를 의미있게 만든다고 믿는다. 최소한의 희망을 긁어 모은다. 누군가 나를 위해 한 마디 남겨 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살아 있으니까. 살아 있다고 증명할 수 있으니까. 증명될 수 있으니까. 모든 것은 의미가 없다. 나는 의미를 부여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것도 의미가 있을 거야. 중얼거린다. 망가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 한다. 시는 처음부터 잘못 쓰여졌다. 머뭇거리는 손목을 잡는다. 나는 쓰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무엇이 나에게 날파리처럼 엉겨 붙는다. 그 속에서 쓰고 있다. 그러면 무언가 해낸 것 같다. 그것이 나를 명예롭게 만든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 해내고 있다는 성취감. 나는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있다.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를 찾고 있다. 그것이 아무것도 아닐지라도 나에게 와서 의미가 되도록 만들고 싶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나의 삶이므로. 그것을 위해 살아가기로 마음 먹었으므로. 지나가는 바람에도 외로워 하기로. 나는 스쳐가는 삶을 살고 싶었다. 비록 그 무엇도 나에게 남지 않더라도.



스쳐지나가는 삶을 살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이 지나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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