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것이 다시 돌아오기는 하는지
엄마는 나에게 취미를 갖는 것이 좋다고 했다. 시간을 긍정적으로 보낼 수 있는 것을 찾으라고 했다. 운동을 하는 것도 좋다고 했다. 그래. 다 좋아. 나는 글을 쓸 수 있다고 했다.
글을 쓰는 것은 나에게 시간을 보내는 동시에 안정을 찾게 해 주었다. 나는 무언가를 쏟아내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를 정리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 내 생각이 한층 더 깊어질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나는 제법 시적인 문장을 쓸 수 있게 되었는데 자꾸 써 버릇하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쓸 수는 없었지만 무엇을 쓰고자 하면 결국 써낼 수 있었다. 언젠가는 나를 정리하는 문장들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나는 영원한 미지의 영역이고, 탐구의 대상이었다. 내 깊은 곳에 있는 것들을 정리할 수가 없어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혼자 외로워질 때면 글을 썼다. 종이 위에 만년필을 한 글자 한 글자 움직여 새겼다. 문장은 때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 때로는 마음에 들었다. 몇 가지 문장들을 골라내어 다시 웹에 올렸다. 몇 문장들은 호평을 받았고, 몇 가지는 외면받았지만 나는 그런대로 내가, 뱉어낸 것들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것들을 토해냈다고 말한다. 깊은 뱃속에서 긁어모아 게워낸 것들. 그것이 나의 글을 이루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토사물이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것을 진주라고 말하고 싶다. 다소 모양이 일그러진 것이 있고, 다소 빛깔이 탁한 것이 있다. 또 어떤 것은 꽤 그럴싸하다. 나는 진주조개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 글을 돈을 받고 팔 수는 없었지만 어떤 이들은 내 진주를 사고자 했다. 나는 그들에게 감사한다. 결국 나는 다시 진주를 머금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누군가 나를 건져 올려 배불리 먹이고 재워주고 보살펴 주었다면 나는 진주를 토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내가 마음에 드는 것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그저 존재했을 것이다. 때로는 그런 삶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존재하는 것이 하나의 힘겨운 과제가 되어 버린 삶이니까. 존재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진주를 토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남겨지는 것도 없었을 것이고, 기억하는 사람도 없었겠지. 그래. 그런 삶도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진주를 남길 수 있었다. 이 삶은 나에게 우윳빛깔 희고 탁한 진주를 주었다.
나는 가끔 그것을 혓바닥 위에서 굴리다가 다시 삼켰다. 더 큰 이물질이 되어 더 큰 진주를 뱉을 수 있도록. 모든 것은 삼키고 뱉어져야 한다. 그렇게 다시 태어난다. 나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 끔찍했지만 다음 생이 있다면 진주조개로는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아름다운 것이 되고 싶어. 아름다운 것이 되어 아름다운 것을 생산해내고 싶어. 그런 꿈을 꾸었다. 다음 생을 상상하지는 않았지만 꼭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면.
엄마는 내가 뱉어내는 것을 좋아해 주는 것 같았다. 엄마에게 혼자 만든 책을 보냈다. 엄마는 책값이라고 과분한 용돈을 주었다. 나는 그 돈을 힘껏 탕진해 버렸다. 책을 팔아서 번 돈은 없었다. 그게 전부였다. 짧은 글들을 읽고 있으면 나는 그 때의 나를 떠올리곤 한다. 누구나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고 싶어한다. 나는 자주 나를 잊었다.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떠올릴 수가 없을 때면 그 때 썼던 글을 펼쳐 보았다. 그럼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 당시의 나. 그 순간의 나. 울고 싶었던 내가 우는 대신 썼던 진주들을 어금니로 깨부수었다. 나는 자주 이를 악물고 있었고 그래서 턱이 저렸다.
가끔 깨지지 않는 진주가 있었고 어떤 진주는 너무나 날카롭게 깨져서 혀와 입안을 상하게 했다. 나는 그 피도 즐겼다. 비린 맛이 나면 그렇구나. 그렇게 아팠구나, 생각하곤 했다. 가끔은 그런 통증이 반가웠다. 붉게 나는 피를 보면 너무나 선명하고 너무나 저려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곤 했고 이렇게 아픈 것이 있구나, 생각하곤 했다. 세상에는 아픈 것이 너무 많은데 나를 다치게 하는 것도 너무 많았다. 다치고 나서야 아픈 것을 깨달았다. 아픈 것을 숨기는 것이 너무 익숙해서 입은 다물었고 깨진 무릎은 스타킹 뒤로 숨겼다. 아무도 몰랐다, 아무도. 나는 내내 피를 흘렸지만 상처는 언젠가 아물고 딱지는 곧 떨어지지 않던가. 해묵고 오래된 격언 같은 말들을 중얼거리며 무엇 하나 틀린 게 없지만 전부 다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픈 건 아픈 건데. 나는 아직도 피가 나던 나의 무릎을 기억한다. 진주조개로 태어났다면 무릎 같은 건 없었을 테지만.
나는 조개가 아니니까. 뱉을 진주는 없으니까.
무릎이 있는 조개가 되고 싶다. 진주를 뱉으면서 아픈 무릎을 내려다보고 싶다. 깨진 무릎에서 흐르는 붉은 피를 쓰다듬고 싶다. 손가락으로 훑어 입 안에 넣으면 비리고 짠 맛이 퍼졌다. 피는 너무나 새빨갛고 너무나 많이 흘렀다. 나는 넘어지는 것도 좋았다. 오랜만에 넘어진 감각이 생경해서 좋았다. 넘어진 순간 세상이 뒤집히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해서 깨진 무릎을 아무도 걱정해주지 않아서 좋았다. 찢어진 스타킹 뒤편으로는 많은 것이 숨어 있다. 내 진주와 내 무릎.
나는 내 진주가 붉은 색일 거라고 생각한다. 혹은 푸른 색일 것이다. 눈물을 먹고 자란 내 진주는 분명히 우윳빛깔 천연덕스러운 색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