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찌꺼기

그 무엇도 너를 돌아오게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아

by 민트박하







망가진 달 아래 서서 오늘의 그리움을 빚어낸다.



오늘의 꿈은 약간 씁쓸한 커피의 찌꺼기 같은 끈적함. 오늘의 꿈은 약간 너덜거리는 끊어진 외다리나무의 낡은 한숨. 오늘의 꿈은 그래. 꿈을 꾸고 싶지 않다면 잠들지 않는 밤이 지속되고 나의 밤에서 나비는 영원히 탈피할 수 없다. 이 밤은 끝나지 말았어야 하는 밤. 끝날 수 없는 밤. 끝나면 안 되는 밤. 이 밤을 잡고 멀리 달아난다면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을 했다. 착각은 밤처럼 길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없이 손톱이 길어졌다. 긴 손톱을 다듬으며 기대를 조금씩 갉아먹었다. 언젠가는 돌아와줄거야. 너는 마음도 없는데 혼자서 키워나가는 것은 익숙했다. 익숙하다 못해 넌더리가 났다. 나는 항상 이 모양 이 꼴이지. 네가 없는 곳에서 너를 그리워하는 것. 그것이 내가 받고 있는 벌이었다. 아무도 벌을 준 적 없는데 혼자서 벌을 받았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누구에게도 잘못을 빌어야 할 필요 없었는데 나는 혼자 잘못을 빌었다. 사과했다. 반성했다. 미안해. 말하면 돌아와 줄 거야? 나의 마음은 항상 얄팍했다. 얄팍하고 얇았지. 그래서 너는 쉽게 구멍을 뚫을 수 있었다. 훤히 비쳐 보이는 마음. 언제나 적나라했지. 그래서 너는 돌아오지 않았다.


너는 돌아오지 않아.


몇 번이나 중얼거렸지만 기다리는 것을 그만 둘 수는 없었다. 그게 내 일상이 되어 버렸는걸. 물을 마시고 너를 기다리고. 산책을 하고 너를 기다리고. 귀를 만지고 너를 기다린다. 너를 기다리지 않는 나를 상상할 수 없어서 억지로 그려내본다. 네가 없는 내가 정말 나일까?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너무나 어색한 기분이 들어.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눈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징그러워. 나는 징그럽다는 생각을 해. 내 눈가도, 눈매도, 눈썹도. 뺨도, 코도 모든 것이 나는 징그러워서 손을 뻗어 긁어낸다. 맨들한 유리의 표면. 갉작거리는 손가락. 이런 나는 결코 네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겠지. 생각해보면 너는 한 번도 나를 원한 적이 없었는데.


너는 살면서 한 번도 나를 이렇게 원하지 않았을 텐데.


너에게 사랑받는 나를 결코 상상할 수 없다. 그건 징그럽지 않은 나와 같다. 나는 징그러워. 너를 기다려. 그리고 밤이 온다. 나의 밤은 길고 어둡고 차가워. 유리 구슬처럼 차가운 표면을 혓바닥으로 핥는다. 너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나는 몇 번이나 중얼거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네가 돌아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환상으로 너를 꿈꾸게 된다. 나의 말은 이제 빛을 잃어가고 있어. 너를 그리워하는 것이 결코 아름답지 못한 일이 되어갈 때 나는 나를 혐오하고. 나는 아름답게 너를 추억하고 싶었으나 나의 그 무엇도 아름다울 수 없어서 모든 그리움은 오물처럼 탁하다. 이 탁함 속에 발목을 담그고 너를 기다리고 있으면 그래 너는 정말 오고 싶지 않겠구나. 너는 돌아오고 싶지 않을 거야. 너는 돌아올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을 거야. 나는 네가 보고 싶어져서 눈물을 흘린다. 이 탁함에 눈물을 더해도 조금도 맑아지지 않는다. 아직 덜 울어서 그래. 눈물이 부족해서 그렇다. 잠겨 죽을 때까지 울어야 하는데.


언제나 눈물은 부족하다. 꿈은 지워지지 않는다. 흔적은 남지 않고 발자국은 사라져만 간다. 모든 기억이 사라졌을 때 너는 마침내 너로 자유로워진다. 나는 너를 더듬는다. 한없이 더듬으며 더듬을수록 네가 흐려져간다. 흐려진 너는 더 이상 네가 아니다. 나는 누구를 그리워하고 있는 거지?



더듬을 때마다 지워지는 흔적을 그토록 오래 사랑했다.



그림자를 사랑했다. 길어지고 짧아지는 그림자가 언젠가는 내 마음에 꼭 맞도록 변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림자는 사실 태양을 사랑하는데. 그래서 햇빛에 맞추어 변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나는 태양이 아니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어리석다. 어리석다. 깨달았어도 멈출 수가 없다. 깨달음은 항상 뒤통수를 때리지만 그것이 앞을 보게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그저 나는 잠깐 멈추고 잠깐 쉬었다가 잠깐 숨을 돌리고 다시 그리워한다. 그리워한다. 그것이 어디까지 이어져 나갈지 모르고. 한없이 길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없이 짧아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나와 함께 손을 잡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손바닥. 내려다보면 거칠었다. 네가 잡고 싶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꿈을 꾸었다. 언젠가는 네가 나와 주겠지 싶은 마음으로 꿈을 꾸었다.


너는 한 번도 꿈에 나와 준 적 없었지만 나는 꿈을 꾸는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 달빛에 비춰내면 무엇이라도 아름답게 보일 거야. 꿈을 꾸었다. 소원을 빌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들어올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 탁한 오물의 늪에, 아무것도 들어올 수 없었다.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들여보낼 수 없었다. 네가 떠나갈 것이 두려워 애매하게 붙잡아 놓고 오지도, 가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네가 영영 가 버릴까 두려웠어. 변명한다. 너는 변명을 들을 수 있는 곳에 있지 않다. 사실 너는 내 목소리가 닿지 않는 곳에 있으니까 어떤 말도 너에게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네가 보고 싶어.


너를 기다리지 말라고 말해 줘.


한 번만 그렇게 말해주면 나는 그만둘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냥 한 번만 돌아와서 그렇게 말해 줘. 나는 말도 안 되는 소원을 빌었다. 그래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비는 날지 못하고 자꾸만 추락했다. 달은 기울었다. 차오르기를 기다렸다. 날아오르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것은 의미없었다. 의미가 없는 것들만 모았다. 나는 항상 그러고 있었으니까. 의미 없는 것들만 모으고 필요하지 않은 것들만 가졌으니까. 누구도 갖고 싶지 않은 것을 내가 혼자 가졌다. 탐을 낼까봐 두려워 할 필요 없으니까. 누구에게 뺏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나는 항상 그게 두려웠어.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무엇도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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