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가 빛나면 빛은 부재
존재하고 싶은 게 잘못은 아닐 거야.
함께하고 싶은 건 잘못일 수 있지만.
결핍이 있어서 메우고 싶은 건 잘못이 아닐 거야. 바닥을 모르는 건 잘못일 수 있지만. 바닥이 얼마나 깊은 줄도 모르고 감히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아무거나 집어넣은 건 잘못이 아닐 거야. 뭣도 모르고 소화할 수 없는 것마저 넣어 버린 것은 잘못이겠지만. 누구도 나에게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어요. 상냥한 사람들. 나는 내가 잘못했다는 걸 알아요. 어떤 일들은 바라지 않았는데도 저질러져 버리곤 한다. 알 수 없었다고 변명해도 이미 저지른 걸 어떡해. 수습할 도리가 없다. 맨손으로 물을 끌어담으려 노력하는 꼴이야. 손만 눅눅하게 젖은 꼴이야. 젖은 손을 들여다보면 눈이 비칠 것 같다.
비친 눈동자를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싶은 밤이야. 이런 밤이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잊고 싶었던 것들만이 선명해진다. 젖은 손은 한껏 울고 난 얼굴을 덮었던 것 같다. 나는 한참을 울었나? 되돌아보게 된다. 너무 자주 울어서 이제는 모르겠어. 울었던가. 울지 않았던가. 흐느꼈던가. 소리없이 흐느꼈던가. 왜 울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아. 어쨌든 울었겠지. 울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곤 하니까.
빛나는 것을 쥘 수 없어서 눈물이라도 쥐고 싶어서.
빛나는 것은 하나도 없어서 온통 까맣고 눅눅해.
하염없이 늘어지기만 하는 시간.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면 죄를 짓는 걸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삶이라서 욕심이 많아서 벌을 받는 건지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서 무엇도 주어지지 않는 삶인지. 어느 쪽이든 아파. 아픈 건 다르지 않아. 결과가 같으면 아무래도 좋다고, 어느 쪽이든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고. 믿지 않아서 믿고 싶지 않아서 믿을 수 없어서. 믿는다고 말하면 그만큼 마음을 푹 떠내어 버리는 것 같아서. 한 스푼의 믿음과 한 스푼의 마음과 한 스푼의 끈적함. 붉은 혓바닥을 내밀어 삼켜 주세요.
빛을 모르면 살 수 있다. 빛난 적 없었다고 생각하면 살 수 있을 것이다. 한 번도 빛나 본 적 없다고 앞으로도 빛날 일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우습다. 빛났던 순간을 없었던 거라고 그런 적 없었다고. 그건 빛나는 순간이 아니었다고 어쩌면 더 깊은 추락을 위해서 도약하는 순간이었다고 생각하면 어쩌면 바닥까지 닿았다고 생각한다면. 더 깊은 바닥만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로지 이 어둠만이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든 살고 싶어질까.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발자국은 보이지 않고 그래도 올라가지 않으니까 더 떨어질 일도 없겠구나. 떨어져봤자 더 깊어지기만 할 뿐, 나는 깊숙히 파고들어간다고 생각하자. 방향을 바꾸어 생각하면 이것도 삶인가 싶다. 그저 깊어지는 방향만이 나의 것일 뿐 올라가는 것은 생각하지 않으면 어쩌면 이것도 삶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저 방향이 다를 뿐이야. 어찌 되었든 나아가고 있잖아.
그걸로 위안삼을 수 있을까. 모든 것을 아무것도 아닌 걸로 살아갈 수 있을까. 존재하고 싶은 건 잘못이 아닐까. 존재하는 건 짐이 되는 것 같아. 안 그래도 무거운 어깨에 나까지 얹어 줄 필요가 있을까. 그걸 생각하면 나는 하루라도 빨리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싶어지곤 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면 이 모든 것이 부질없는 것이 되어서 허무한 것이 되어서. 곧 없어질 것에 신경 쓰지 말아요, 라고 말한다면 뺨을 맞을까.
아픔만이 나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