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의 세계
“모든 색에는 의도가 있다.”
「중경삼림」 「라라랜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고유한 감성과 매력적인 세계를 만들어내는 컬러의 비밀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는 작품에는 남다른 ‘컬러 한 끗’이 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호텔은 왜 분홍색과 보라색일까?
「박하사탕」의 영호는 왜 회색 양복을 입었을까?
「아멜리에」 주인공의 피부색에 숨겨진 비밀은?
이 책을 통해 이미 알고 있던 영화에 대해서는 새로운 통찰을 얻고, 몰랐던 영화에 대해서는 새롭게 다가갈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필자가 바라는 것은, 이 책의 독자들이 모든 영화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색상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그리고 그 색상이 어떤 의미를 어떻게 나타내는지에 주목하는 것이다. 미리 말해두지만, 한번 보는 눈이 바뀌면 다시는 세상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바라보진 못할 것이다.
-작가의 말-
어떤 영화는 강렬한 색감과 분위기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에겐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그러한데 〈친절한 금자씨〉나 최근작 〈헤어질 결심〉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금자가 출소할 때 입었던 붉은 물방울무늬 원피스, 탕웨이의 집 벽지라던가 유난히 반듯하게 정리된 박해일의 근무처라던가 진한 감정선에 집중하게 만드는 그만의 색감이 좋았다.
「컬러의 세계」를 읽고 싶었던 이유는 색에 담긴 의미, 상징을 더 알고 싶었고 표지에 담긴 사진도 다른 한몫을 했다. 좋아했던 배우 왕페이가 출연한 <중경삼림>은 너무 오래전에 봤던 영화라서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미소년처럼 귀여웠던 왕페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장면만은 선명하다. 화려한 홍콩의 밤거리, 좋아하는 남자 집에 몰래 들어가 청소를 해주던 모습도 떠오른다. 삽입곡이었던 가수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 은 다시 들어도 흥얼거리게 한다. 〈중경삼림〉은 한마디로 내 감성을 흔든 영화였다.
책을 받자마자 〈중경삼림〉이 실려 있는 124쪽을 펼쳤다. 「란콰이퐁 지역의 산업화된 도시는 온통 회색빛으로 가득하고 밤거리 포장마차의 희미한 불빛만이 거리를 비추는 듯하다. 하지만 두 인물이 만나면 왕가위가 ‘햇살’, ‘밝음’ ,‘ 사랑스러움’으로 묘사하는 색채를 발산한다. 그는 이런 만남의 밑바닥에 깔린 잔잔한 슬픔을 파랑, 보라, 초록의 시원한 색감으로 표현한다. ... 바텀즈 업 클럽의 주황색 불빛 아래서 만나는 경찰과 매혹적인 마약상처럼.」작가가 알려주는 색채의 감정은 어쩌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로 내 가슴에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왕페이와 양조위, 두 주인공이 머릿속에 스르륵 떠오른 걸 보면 말이다.
그렇다면 다른 영화들은 어떻게 소개되었을까? 이 책에는 모두 50편의 영화가 소개되었는데 내가 아는 영화라곤 고작 대여섯 편밖에 되지 않았다. 흑백영화 시대부터 코닥과 후지필름을 찍었던 영화는 거의 모르는 영화들이고 80년대 이후 영화 중에는 브래드 피트가 출연했던 〈세븐〉, 〈중경삼림〉, 〈박하사탕〉, 〈아멜리에〉, 〈라라랜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정도만 알고 있었다. 영화의 내용을 알고 이 책을 읽는다면 훨씬 흥미롭고 신기한 느낌을 줄 것 같다. 그래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좀 더 대중적인 작품들을 소개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므로 평소 미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나 영화와 색채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글자가 매우 작은 데다 영화 관련 전문 단어들이 사용되었음에도 영화 자체가 주는 매력 때문인지 색채를 모르는 나조차도 흥미롭게 읽었기 때문이다.
흑백영화에서 디지털 영화까지 영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색채의 변화와 화면 속 색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는데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에서 컬러를 표현한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영화 속 컬러는 현실에서 보는 색과는 다르다. 진하고 선명하게 또는 뿌옇거나 흐리게 대비되는 색감으로 상황을 표현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충분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게 바로 영화 속 컬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통찰까지는 아니어도 작은 변화는 얻은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