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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한 Nov 27. 2022

진심은 얼마나 솔직해야 하나요

어릴 적부터 거짓말은 거의 무조건 나쁘다고 배우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너무 솔직하게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터득하기도 했다.

누가 대놓고 가르쳐주진 않았지만, 친구가 어색할 정도로 짧게 자르고 온 머리에 부끄러워 할 때면 정말 하나도 안 이상하다고도 해봤고, 재수생 시절에는 학원에서 최고로 어울리지 않는 강사 두 분이 사귄다는 걸 우연히 목격하고 속으로야 놀라 뒤로 넘어갈 지경이었지만, 겉으로는 전혀 티가 안나서 몰랐다면서, 근래 본 커플 중에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 일상적인 선의의 거짓말들이야, 마음과는 반대로 말하면 되는 건데

그것과는 별개로 진심은 얼마나 솔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배우지 못한 것 같다.




이젠 우리가 더 이상 연인 같지도, 친구 같지도 않은 사이로 느껴진다는 진심을 전했을 때 상대방이 받을 타격은 감히 예상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쓸데 없는 말들로 핑계를 만들어내고 말도 안되는 이유로 4년이 넘는 연애의 끝을 냈던 날, 나는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쁜년이었는지 아니면 그나마 돌려말했기 때문에 덜 나쁜년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 후로 얼마 간은 익숙한 연애를 포기한 데에 대한 후회인지 변해버린 감정의 정리인지 모를 강렬한 현자타임이 지나가며 앞으로도 연애 같은 건 한번 더 할 수 있을지, 진심은 얼마나 솔직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했었다. 답이 없는 고민을 하며 가끔은 무기력해졌고 가끔은 상대방에게 진심이었던 많은 순간들을 떠올리며 클라우드에 업로드되어 있던 사진 수백 장을 밀어버렸다.

결국은 남에게 상처주기 싫다는, 결론적으로는 최악의 연애상대가 되기 싫었다는 마음이 이렇게 나와버린 것이니 이런 고민 따위가 인생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득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기쁨이나 고마움, 행복 같은 감정들도 딱 내 마음만큼만 표현하면 되는 걸까.



나는 상대의 눈치를 많이 살피고 거기에 부응해줘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예전에는 상대와 나의 코드가 맞아떨어질 때의 안정감이 관계에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었고 남의 말에 동조도 잘하고 필요하면 태세전환까지 하는 편이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내가 관계에서 얻는 것이 피로감 외에는 없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기 때문에 요즘은 얘기를 묵묵히 듣고 있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과거의 나는 상대가 나에 대해 원하는 기대치를 채우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이런 내가 가장 곤혹스러움과 당황스러움을 느낄 때는 깜짝 선물이나 깜짝 생일파티를 받게 되었을 때였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내가 느끼는 감정 이상으로 표현하며, "깜짝"이라는 단어에 맞는 제스처나 표정을 보였다.비록 걔중 눈치빠른 누군가가 내가 표현 이상으로 기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캐치해내고 놀릴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분위기에 맞게 행동하고 표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의 경우,

나를 놀래켜 주기 위해 들였을 많은 이들의 수고로움과, 내게 맞는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돈을 모으고 선물로 적당한 여러가지 아이템을 선정했을 이들의 노고가 무색하게도, 

나는 선물이나 파티 그 자체에 놀라기 보다는 '이 정도로만 반응을 해도 괜찮은 걸까',  '과연 내가 이런 걸 받아도 될만한 사람인가'를 먼저 떠올리며 모두가 즐거웠어야 할 순간을 즐기지는 못했다. 그 과정만 생략했었어도 그저 적당히 즐겁고 행복했었을 순간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매사 솔직함에 집착하다가 감정의 길을 잃거나 순간을 잃어버리는 실수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관계에 따라, 경우에 따라, 사람에 따라 진심을 표현하는 방법을 좀 바꿔봐야 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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