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서른 살에 결혼을 했다. 엄마는 서른 살에 나와 내 동생을 길러냈다. 어릴 땐 아빠의 얼굴 보는 일이 드물만큼 아버지는 열심히 일을 하셨고 주말에는 본가와 처가에 찾아가 어른들의 안녕을 살피셨다. 엄마는 우리 둘을 데리고 어른들에게 인사를 시키고, 밥을 먹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 태웠다. 곯아 떨어진 우리 남매를 하나 둘 집으로 옮긴 다음 다시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재우는 것도 서른 살 엄마의 몫이었다.
그렇게 30년이 넘게 한 직장에서 근무하시며 아버지는 잘난 자식 하나와 덜 떨어진 자식 하나를 길러내셨다. 서른 살부터 벌어오는 돈으로 책값, 옷값, 밥값은 물론 하고싶다는 공부는 다 시켜주셨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밥값은 벌 수 있어 독립한 아들과는 달리, 제 앞가림도 못하고 돈도 못버는 딸내미가 집에 있다. 아빠의 퇴직 이후 우리집 기둥은 엄마가 되어 엄마가 벌어오는 돈으로 살아가고 있다. 염치도 없는 나는 삼시세끼 잘 챙겨먹으며 여기저기 입사지원서를 내는데 영 시원치 않다. 2년째.
여기저기 전전하며 계약직으로만 근무했던 20대 후반과,
그리고 아무 일도 없는 삼십이 된 것이다.
나의 서른은 부모님의 서른과는 많이 다르고, 친구들의 서른과도 많이 다른 것 같다. 뒤처져 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까. 여튼 만나는 사람도 거의 없고 밥벌이를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일도 없으며 마지막 출장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작년도 그랬고 올해도 그랬다. 참 한결같은 녀석. 왜 하필 그런 면에서 한결 같은지. 좀 다양한 도전을 해보고 나가서 알바라도 해보고 그런 20대를 보냈었더라면 좀 더 씩씩한 서른 살이 될 수 있었을까. 우리 아빠가 그랬듯이, 친구들이 지금 그러고 있듯이 번듯하게 밥벌이를 하는 서른 살이 될 수 있었을까.
스물 여덟살 쯤엔 사실 서른 살이 빨리 되고 싶었다. 매번 계약기간 만료를 걱정하고 혹시나 이번에는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지 않을까를 기대했던 계약직 생활을 청산하고 싶었다. 서른이 되면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고, 잘은 아니지만 운전도 좀 할 줄 알고, 나름대로 경제 관념이나 철학이란 것도 있어서 저축도 척척 하고, 남들 앞에서 내 생각을 조리있게 말할 수 있게 될 줄 알았다. 그런 서른 살이 되기 위해 자소서를 2년 동안 500개 가까이 자소서를 썼고 몇십 개의 면접을 보러 다녔다. 남들이 볼 때는 한심하겠지만 나는 내 선에서 최선을 다해봤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서 결국 남은 건, 언젠간 난 잘될 거라며 오밤중에 이불로 입을 가리고 엉엉 우는 철없는 애새끼 하나다.
오늘도 들지 않았던 철이 갑자기 내일 하루만에 드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바람이 있다면 서른 하나를 좀 더 긍정적으로, 씩씩하게 맞이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직업도 있는 상태에서.
감히 나 같은 게 바라고 바라건대, 제발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앞으로 남은 생은 지금보다는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서 베풀 용의가 있으니, 하나님이 됐건 부처님이 됐건 누가 됐건 간에 이 글을 본다면 좀 도와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