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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한 Dec 13. 2022

서른 살도 치과가 무섭다

얼마 전, 치과에서 정기검진을 받으러 오라는 문자와 독촉 전화를 받았다. 그 때는 코로나에 걸려 있어서 가지를 못했지만 코로나가 물러간 최근까지도 전화를 계속 하는 걸 보니 한번은 가야할 것 같았다. 사실 저번에 치료받은 곳이 괜찮은지, 다른 이가 또 말썽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내심 겁이 나기도 했다. 이왕 헬스장 갈 시간을 놓치게 된 거, 오늘은 헬스장 대신 치과에 가기로 큰 맘을 먹고 예약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으시는 분은 정기검진은 병원에 도착해서 키오스크로 접수하면 된다는 명료한 대답을 주셨다.


 어릴 때는 치과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아니, 그냥 생각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치과에서 울고 떼쓰는 애들을 보며 왜 저럴까 싶은 생각을 하며 묵묵히 신경치료를 받고 금니를 씌웠다. 눈을 가리면 딱히 뭘하는지 감도 오지 않고 어차피 썩은 이는 치료해야 한다는 걸 일찌감치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했다. 치료가 끝난 날은 한 쪽으로만 씹어야 하는 불편함이 가끔 있기도 했지만 아주 드문 일이었고 나는 그 모든 과정을 잘 참아내는 편이었다.

 그러나 다 큰 어른이 된 지금은 치과에 가는 20분동안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제 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이를 안닦고 물로만 대충 헹궜던 기억, 최근에 김장김치를 10포기쯤 먹어서 이 사이사이마다 고춧가루가 잔뜩 끼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커피를 즐기는 습관, 치실을 피가 날 정도로 세게 했던 날 등등 치아에 좋지 않았던 모든 습관과 행동들이 생각이 났다. 덤으로 충치가 발견되어 치료라도 받게 되면 얼마나 아플까보다는 얼마나 비쌀까, 치료비가 또 몇 십 만원이 깨질까를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치과에 도착해서 키오스크로 접수를 하고 멍한 표정으로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치과는 평일 낮인데도 불구하고 들니며 임플란트, 사랑니 발치를 위해 방문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다들 치과에 큰 돈 들이러 오는구나 싶기도 하면서 거기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다시금 생각났다. 제발, 제발 충치만 없게 해주소서 기도를 하며 대기실에서 시간을 보냈고 5분쯤 지났을 때 진료실로 입장할 수 있었다.


 원래 치아 길이가 좀 짧고 치아가 약하게 타고난 편이니 정기검진을 자주 받으러 오라던 의사 선생님의 말. 그 순간에 하필이면 생각나서 나를 이렇게 후회하게 만드나 싶다가도, 어릴 때처럼 치과 의자에 누워 초록 천으로 눈을 가리고 나니 다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충치가 있으면 치료하면 되지 뭐, 치료비는 카드 할부로 하지 뭐, 하는 생각을 하니 긴장이 조금은 풀어졌다. 그렇게 아무 생각도 없이 입을 벌리고 의사 선생님께 입 안을 보여드렸다. 충치 없지요, 깨진 곳도, 금이 간 곳도 없지요, 제가 치실은 원래 꼬박꼬박하는 편입니다,를 속으로 되뇌면서.


 다행히 돈 들일 곳은 없었다. 3개월 전에 치료받은 자리도 깨끗하게 잘 아물고 있고 다만 잇몸이 좀 부은 곳이 있으니 치실을 세게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살았다.. 충치 없는 걸로도 성공한 인생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오늘 좀 성공한 사람이다. 진료가 아니라 검진을 했으니 진료비도 나오지 않았다. 만만세.

 이 나이가 되고보니 걱정해야 할 게 참 많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도 치아가 시리면 걱정을 해야하고, 또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부모님, 조부모님의 건강도 한번씩 걱정을 해야하고. 치과를 무서워하는 어른. 건강이 최고라는 말을 실감하면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초코파이를 하나 먹는 어른. 아직 좀 더 자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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