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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영 Mar 01. 2018

겨울날의 숲


편백나무숲으로 가기 위해서는 길게 놓인 다리를 건너야 했다. 바람이 거센 날은 잘게 제 몸을 흔드는 출렁다리. 제 몸 위로 건너가는 사람들의 무게에도 조금씩 흔들리는 제법 긴 다리를 건너가다, 이 다리의 끝이 어디를 향하는가를 생각했다. 그리운 이름에게로 곧장 걸어갈 수 있는 다리가 있다면, 우리들은 이렇게 헤매이지 않아도 좋을 텐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이렇게 일직선의 곧은 다리가 왜 쉽게 보이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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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끝에 다다른 시간, 이 마지막 겨울의 숲에서는 누구라도 길을 잃어도 좋았다.


서로의 시간들이 겹쳐져 있는 편백나무 숲에서는 곧게 뻗어나간 나무들이, 겨울날에도 빛을 잃지 않는 침엽수의 잎사귀들이, 나무와 나뭇가지 사이 비쳐 드는 조각난 하늘들이, 짙게 퍼져나가는 대기가 오롯이 내려앉는, 이 겨울의 숲에서는 누구라도 길을 잃어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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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 사이 가벼이 걸었던 나무 계단을 지나, 경사지로 오를수록 숨결은 가파르다. 산다는 게 어찌 양지바른 고운 비단길이기만 하겠는가. 얘야, 젖은 길로는 발을 내딛지 말아라, 산의 깊디깊은 그늘- 햇살 한 줌 들지 않는 곳에 쌓인 젖은 낙엽은 미끄럽고, 또한 우리로 하여금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미끄러지게 한단다. 어머니는 늘 내게 말씀하시곤 했다. 그러나 살아가다 보면, 알면서도 이 젖고 음습한 땅을 밟아야 할 순간이 있다. 서슬 퍼런 외줄 위에서도 걸어가야 할 때가 왜 없겠는가. 꼿꼿하게 고개를 들다가도 한순간에 미끄러지는 게 인생이기도 했다. 세상 속에서 부대끼며 상처받는 일들이 많아질수록 내 가슴팍에도 위태로운 비탈길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높은 바위 위 난간에 몸을 기댄다. <난간>이란, 저곳은 위험하다는 표시. 더는 넘어서지 말라는 경고. 또는 경계선. 나는 그 난간 위로 아슬아슬하게 몸을 기댄다. 항상 불안하기만 했던 순간들이 잠시 숨을 고른다. 그리고 고요가 이 편백나무숲 사이로 내린다. 바람도 잠시 머리칼을 흔들다 깊은 소나무 가지 사이로 몸을 숨긴다. 빛나는 것은 오로지, 은빛으로 부서지는 계곡의 물결 위에 내리는 투명한 햇살뿐. 사금파리처럼 아프게 빛나는 저 햇살을 바라보다, 당신 또한 삶의 굴곡 위에서 많이 아팠으리라 생각했다. 내 가슴팍에 뿌리를 내려가는 비탈길이, 왜 당신이라고 없었겠는가. 부모와의 갈등으로 세상을 향해 독을 품고 걸어가야 했던 당신의 가슴에는 또 무엇이 살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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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곳에서는 나와 당신의 어깨가 굳이 나란하지 않아도 좋았다. 나는 당신의 한 발짝 뒤에서, 혹은 당신의 앞에서 걸어도 무방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것, 그 걸음이 빠르든 느리든, 오랜 세월 앞에 선 우리의 사랑이 가난하든, 혹은 퇴색해가든 그것은 상관없었다. 우리의 상처들이 서로 맞닿아져 있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언제든지, 얼마든지 당신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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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디흰 자작나무숲이었으면 했다. 매서운 북쪽으로 갈수록, 산맥이 험준할수록, 더욱 빛나던, 수직의 삶을 살고 있는, 야위고 올곧은 그 나무들이었으면 했다. 그러했다면, 나는 보다 빛날 수 있었을까.


지폐 다발처럼 구겨진 우울들을 몸속 어딘가로 구겨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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