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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수 Apr 18. 2016

금빛 화살,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유럽피언 컵 5년 연속 우승을 이끈 그를 기억하다

길고 긴 축구 역사에는 수많은 레전드가 있다. 아직도 축구의 아이콘이라 칭송받는 펠레를 비롯해 그의 라이벌 디에고 마라도나, 드리블의 귀재 가린샤, 득점력만큼은 그 누구보다 꾸준했던 게르트 뮐러 같은 선수들이 각 시대를 대표해 가공할 만한 활약을 펼쳤다. 그러다 보니 역대 베스트 일레븐을 선정하기란 쉽지 않다. 유명 언론사나 잡지가 선정하면 논란이 뒤따르고, 친구들끼리 장난으로 선정해도 말다툼이 일어나기 일쑤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선정하는 역대 최고의 선수 다섯 명은 항상 똑같거나 비슷하다. 유럽 출신 전문가이든 남미 출신 전문가이든 펠레, 마라도나, 베켄바워, 크루이프, 그리고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의 이름은 반드시 거론한다. 


그런데 축구를 최근에서야 좋아하기 시작했다면 디 스테파노라는 이름이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축구팬이 "금빛 화살" ("Saeta Rubia")이라는 별명으로 레알 마드리드의 유러피언 컵(챔피언스리그 전신) 5회 연속 우승을 이끈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를 모르는 것에는 변명거리가 없다. 아무리 최근에 축구를 좋아하기 시작했어도 말이다.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레알 마드리드가 첫 번째 유러피언 컵 트로피를 들어 올린 1955/1956 시즌부터 열 번째 트로피에 키스한 2013/2014 시즌까지 약 60년이라는 시간이 걸렀다. 그동안 위대한 선수들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하고 역사에 남을 회장들과 감독들이 클럽을 지휘했다. 그러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만들어낸 꾸준함과 임팩트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다. 라울 곤살레스, 호나우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모두 한 수, 혹은 두 수 아래다. 


1953년부터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기 시작한 디 스테파노는 리그에서 11년 연속으로 두 자릿수 골을 넣었다. 호날두와 메시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다소 부족한 기록일 수도 있으나 당시에는 믿을 수 없는 기록이라고 불렸다. 그렇게 그는 꾸준함과 파괴력을 동시에 갖춘 선수였다.


우승 경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섯 번의 유러피안 컵 우승과 여덟 번의 리그 우승. 이 우승 경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다: 독일 최고의 명문 클럽 바이에른 뮌헨이 디 스테파노와 똑같은 다섯 번의 유러피언 컵/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 바이언의 창단 연도는 1900년이다. 잉글랜드 역대 최고의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디 스테파노보다 적은 세 번의 유러피언 컵/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 리버풀은 디 스테파노 똑같은 다섯 번이다.


호날두? 라울? 호나우두? 그 어떤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도 디 스테파노는 범접할 수 없다.


디 스테파노의 동상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 

어느 소년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이 동상의 사람은 위대한 축구 선수였나요?"
아버지가 대답했다: "아니, 이 선수는 팀 그 자체였어."


차원이 다른 선수였다



디 스테파노는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선수였다. 현재 리오넬 메시와 과거 디에고 마라도나가 그랬던 것처럼 디 스테파노만 있으면 레알 마드리드가 이긴다는 확신이 들었다. 축구 역사에 남은 위대한 선수들은 많지만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선수는 펠레, 요한 크루이프, 디에고 마라도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정도밖에 없었다.


경기의 흐름을 바꾼다. 말로는 쉬워 보이지만 정말 극소수의 선수들만 가진 능력이다.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것은 팀이 지고 있을 때 결정적인 골을 넣거나 상대 수비를 허물어 팀 공격을 이끄는 것을 의미한다. 전자가 아니라면 헌신적인 플레이를 펼쳐 팀 전체를 동기 부여시키거나 팬들의 응원을 유도해 경기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 것이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는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선수였다.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었던 디 스테파노는 완벽했다. 그가 뛰었던 시대는 토털 풋볼이 생기기 전이었지만 경기장 전체를 누비며 다른 선수들에 비해 차원이 다른 활동량을 가져갔다. 주로 공격수로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비 지역, 중원, 공격 지역을 오갔고, 수비 가담도 적극적으로 했으며, 상대 수비를 파괴하며 골도 퍼부었다. 비록 경기당 득점 수가 1.0이 넘는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비교를 하자면 AT 마드리드 선수들의 활동량과 전성기 첼시 선수들의 수비력, 그리고 현재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공격력을 자랑했다 -- 혹은 그 이상이었을 수도 있다. 


"디 스테파노가 뛰는 순간, 그 팀에 22명의 선수가 뛰는 것을 의미한다." - 미겔 무뇨스


개인 수상 경력은 디 스테파노의 능력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레알 마드리드 선수가 되자마자 피치치(스페인 1부 리그 득점왕)를 수상한 그는 1956년, 1957년, 1958년, 1959년에도 어김없이 리그 득점왕 자리를 차지했다. 발롱도르 또한 1957년과 1959년에 수상하며 총 두 번을 수상했고, [월드 사커] 선정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도 다섯 번이나 이름을 올렸으며, 스페인 올해의 운동선수 상도 네 번이나 받았다.


겸손함은 보너스였다. 자신과 종종 비교되던 디에고 마라도나를 "천재"라고 설명한 것도 모자라 고향 아르헨티나의 문제점을 시원하게 지적해 자국의 축구 발전에 힘을 보탰다: "가난이 심각하다." "한 아이는 클럽의 제의를 받는다. 그리고 그 클럽은 아이의 부모에게도 직업을 찾아준다. 그 아이가 가정의 운명을 바꾸는 것이다. 만약 그 아이가 독일로 간다고 치자. 그러면 그 아이는 독일 국가대표로 데뷔하게 된다. 독일 대표팀 선수들의 성 중 페레즈와 고메즈가 있다. 고향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이고." 


지금의 레알 마드리드를 만든 그



레알 마드리드는 유러피안 컵/챔피언스리그를 총 10회 우승했다. 또, 1부 리그는 총 32회 우승했다 -- 레알 마드리드는 이견없이 유럽에서 가장 성공적인 클럽이다.


만약 디 스테파노가 없었다면 어떨까. 디 스테파노는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다섯 번의 유러피안 컵 우승과 여덟 번의 리그 우승을 맛보았다. 디 스테파노 혼자 각종 리그와 대회 우승을 이끈 것은 아니지만 그가 팀의 핵심적인 에이스였던 것을 고려하면 레알 마드리드에게 그렇게 많은 우승과 큰 영광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뛰어나다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레알 마드리드에서 고작 한 번의 리그 우승과 한 번의 챔피언스리그 밖에 우승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선수들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했지만 디 스테파노의 기여도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다. 그가 곧 레알 마드리드였고, 현재의 레알 마드리드이며, 미래의 레알 마드리드일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b8-Vem_3BhI


FIFA: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골잡이 중 하나였다는 점은 통계로 볼 수 있지만, 기본적인 사실들은 이야기의 일부만 알려줄 뿐이다."
플로렌티노 페레즈: "그가 곧 레알 마드리드였다. 우리는 디 스테파노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제프 블래터: "내가 본 선수 중 가장 완벽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였다."
미셸 플라티니: "그는 공격하고 수비하고 패스하고 전투하듯 플레이했다. 그리고 그런 플레이를 20년 동안 펼쳤다. 그는 모든 것을 가진 선수였다."




글: 프리사이스 패스

http://blog.naver.com/kunnom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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