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이라떼 Nov 22. 2024

분수는 함께 빵을 나눠먹는 것

놀이인 듯 놀이 아닌 놀이 같은 학습

오늘은 우리 교실에 마트가 운영되는 날.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각종 젤리에 동그란 빵들, 과자를 진열해 놓고 설레는 마음으로 개장시간을 기다린다.




3학년 학생 4명이 오늘의 첫 손님이다. 어서들 오시게나. 나의 마트로.

"우와 선생님 이게 모에요?" 휘둥그레진 눈으로 각종 상품을 재빠르게 스캔하는 아이들에게 아주 상냥한 판매원이 되어 동그란 빵을 권해본다. "배고프지? 우리 빵 먹을까?" 수업은 없다는 말에 환호성을 지르며 무장해제되는 녀석들, 빵 한 개씩을 골라 동그란 빵만큼 둥그렇게 모여 앉는다.


 "자 우리 수업 짼 기념으로 첫 빵은  다 같이 나눠먹자" 빵봉지를 찢으려던 급한 손길을 거두고 마지못해 동의하는 너희들. 준비해 둔 칼로 동그란 빵을 똑같이 4등분한후 아이들에게 한 조각씩 나눠주면 누가 뺏어갈세라 한입에 꿀꺽 삼킨다. "얘들아 빵 1개를 똑같은 크기로 4등분했지? 그중에 1개씩 먹었으니 모두 1/4조각씩 먹은 거네. 우리 이제 각자 빵을 잘라서 친구들한테 한 조각씩 나눠주자. 대신 크기랑 모양 똑같이 잘라야 돼" 친구에게 줄 빵을 최소한으로 줄여보고자 6조각, 8조각, 10조각까지 난도질되어 형체마저 잃어가는 속절없는 빵들. 7/10를 내가 먹고 3/10을 너희가 먹어 합하면 1이 되는 오늘의 마트놀이.


두번째 손님은 오늘의 VIP 천진난만한 2학년 꼬맹이들이다. 맞춤기획상품은 알록달록 젤리들. 마트의 꽃은 단연코 시식코너다. 아이들은 이것저것 맛보며 저마다 좋아하는 색과 맛의 젤리를 픽하시느라 손길이 분주하다. 각자 20개의  젤리를 골라오면 자 이제 수업을 시작해 볼까? 먼저 젤리를 2개씩 10묶음으로 나눈 후  한 묶음은  2, 두 묶음은 2+2=4, 세 묶음은 2+2+2=6. 직접 세어보며 같은 수를 더하면 곱셈이 되는 구구단의 원리를 이해해 본다. 이일은이이는사 이삼은육 기계적인 암기는 이제 그만이다.


마지막 손님은 5학년 어르신들. 최대한 예의를 갖춰 취향에 맞는 곽에 든 과자를 골라오시도록 청해 본다. 과자는 덤, 주인공은 곽상자이다. 조심스레 뜯어 펼쳐보면 짜잔~ 직육면체의 전개도. 마주 보는 면과 맞닿은 선분을 눈으로 손으로 확인하고 하얀 도화지에 또 다른 무수한 전개도를 그려본다. 나만의 정육면체, 원기둥, 삼각뿔을 만들어 내는데 푹 빠진 아이들, 흡사 유네스코에 지정될 건축물을 설계라도 하듯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난다. 이들에게 이것은 놀이일까 학습일까.





혹자는 이 귀한 시간에 왜 공식이라도 하나 더 가르치고 문제라도 하나 더 풀리지 않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맞다. 공식도 문제풀이도 중요하지만 내가 이 놀이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수학은 공식을 암기하는 과목이 아니라 기본원리를 이해하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초등수학의 첫번째 관문인 구구단 수업을 하다 보면  속사포랩처럼 기계적으로 외우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 19단까지 외울 수 있다며 자랑삼아 말하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냥 달달 외워서는 덧셈과 곱셈, 곱셈과 나눗셈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직접 손으로 나눠보고 합쳐가며 스스로 알아보고 깨우치는 시간을 경험시켜주고 싶다.


둘째, 아이들에게 공부의 즐거움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이다. 공부를 시작할 수 없어 못하게 되고 못하니까 안 하게 되는 뫼비우스의 끈 안에 갇힌 아이들에게 작은 숨구멍이나마 되어주고 싶다. 공부도 학교도 선생님과의 시간도 즐거울 수 있음을, 그리하여 까짓 공부라는 거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생각이 들게 다면 눈물 나게 좋을 거 같다.  아직 무언가를 포기하기엔 너무 어린아이들이니까.




오늘 영업도 완판, 매진 행렬이다.

나 이러다 재벌 되는 거 아냐?


다음엔 또 뭘 팔아볼까?

나의 마트놀이는 앞으로도 쭈욱 계속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