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는 진짜 상극일까?
스물다섯 나이부터 내 옆에는 한 남자밖에 없었기 때문에 썸은 당연하고 소개를 받아본지도 이미 6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사실 아꽁이를 처음 알았던 2015년 크리스마스 바로 전 날에도 나는 소개팅을 했었다. 20대 초, 중반까지는 그냥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정도로 재미 반, 호기심 반이 섞인 소개를 많이 받았다. 나의 마지막 소개였던 2015년 12월 24일, 그날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건 인상깊어서가 아니라 그 다음날 아꽁이를 만났기 때문이다.
‘에이..역시 소개로는 내맘에 드는 사람을 만나기 힘들군. 파스타 얻어먹었으니 디저트나 사고 연락 끊어야지.’
나의 소개팅 패턴은 거의 이랬었다. 어렸을 때라서 친한 친구에게 받는 소개가 거의였는데도 불구하고 첫 만남 이후 관심이 안가면 번호부터 차단했다. 어찌보면 주선자인 친구에게도, 상대방에게도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그 이상의 시간을 내주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주선해주는 친구들에게 미리 얘기했다.
‘나 마음에 안들면 연락 그냥 끊을건데 괜찮으면 해줘~’
이렇게 몇 번의 소개팅을 거치면서 잠깐의 연애도 하고 그러다 망하고를 반복했고, 지금 내 옆에 있는 아꽁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난 나의 첫사랑이다. 여태껏 해보지 못했던 무거운 연애를 처음 해본 사람이기 때문에 난 양심에 손을 올리지 않아도 당당하게 첫사랑이라 할 수 있다.
갑자기 예전 소개팅 때를 회상하는 이유는 이제는 못해서 아쉬워서가 아니다. 최근에 ‘소개팅 단골 대화거리’에 대해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바로 ‘MBTI’가 필수 질문이자 대화거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MBTI에 큰 관심이 없던 나는 그 얘길 듣고 아주 많이 의아했다.
나: MBTI 궁합이 그렇게 중요한가? 맞춰가면 되는거지.
동생: 아니야~ 중요하지! 이왕 만나는거 성향이 잘 맞는 사람이랑 만나면 좋잖아~
겨우 네살 차이나는 내 동생과도 괜히 이런 얘기만 나오면 세대차이가 나는건가 싶다. 그러고는 아꽁이를 만나서 ‘우리 다시 MBTI 테스트 해보자!’ 했다. 우리 둘 다 그런 것에는 큰 관심이 없기때문에 한 번씩 해봤는데도 까먹었다. 그리고 처음에 했을 때 이미 상극의 궁합으로 나온 성향들이여서 부정하고 잊은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잘 맞지 않은 성향이라는 건 이런 테스트가 아니더라도 만나면서 충분히 느꼈지만 이렇게 명확하게 결과로 나오니 우리의 6년이 수포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달까? 괜히 부정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 난 ENFP. 전이랑 똑같이 나온 것 같은데?
아꽁: 오, 나도 전이랑 똑같이 ISFP 나왔어!
나: MBTI 궁합 다시 보자. 상극인데 우리가 여태까지 만났을리가 없잖아.
아꽁: 그래그래 다시 찾아보자!
나, 아꽁: 음… 이거다! … 하하 우린 역시 로또인가봐..!
역시나 만나면 안될 상극으로 나왔다. 우린 요즘 서로의 로또라고 한다. 뭐 하나 맞는 게 없다며. 생각해보면 이런 성향 궁합을 보지 않았어도 우린 어느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서로가 맞지 않다는 건 6년간 충분히 느꼈으리라. 말하는 것부터 데이트, 취미, 텐션의 차이, 표현 등 모든 것이 다르다. 어떤 때는 내가 ‘아’라고 말해도 어떻게 ‘어’라고 알아듣지? 우린 어쩌면 다른 국적을 갖고 있는게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1도 과장 없이.
그렇다면 우리가 한창 MBTI가 트렌드일 때 소개를 받았더라면 서로 만날 일은 없었을까? 상상을 해본다.
아꽁이와의 소개팅(상상)>>>
나: 혹시, MBTI가 뭐예요?
아꽁: ISFP에요. 그쪽은 뭔데요?
나: ENFP요. 와, 우리 완전 상극이네요?
아꽁: 그렇네요.
그리고 나는 돌아오는 길에 번호 차단… 을 했을까?
이미 오랜 연애를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떨지 제대로 상상이 가지 않지만 우린 아마 이 대화 끝에 서로 웃고 장난칠 대화거리가 되지 않았을까 예상해본다. 처음 우리의 모습만 떠올려봐도 아무것도 아닌 것들로 떠들고 웃었기 때문에 겨우 이런 상극의 성향으로 비호감을 표하진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또 한편으로는 이것 하나로 등돌렸을까 겁이 나기도 해서 우리 때에 MBTI가 성행하지 않았다는 게 고맙기도 하다.
6년을 만나면서도 여전히 맞지 않은 우리 모습에 투닥거리기도 하면서 왜 그런 사실이 고마울까 싶겠지만 맞지 않는 성향때문에 가끔은 실망하기도, 가끔은 불안해하기도 하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점점 확실해지는 건 아꽁이처럼 있는 그대로의 나를 흡수시키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거다. 난 아꽁이 앞에서 굳이 꾸밀 필요도, 숨길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오랜 연애를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처음부터 그랬다. 연애를 시작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노메이크업을 보여줬을 때 아꽁이는 너무 자연스럽게 ‘이게 훨씬 예쁘다~’ 라고 해주었다. 물론 그게 진심인지 모르겠지만 난 그 순간의 장소와 아꽁이 표정까지 모두 기억이 난다. 트레이닝복을 입으면 그렇다고, 치마을 입으면 또 그렇다고, 긴 생머리라서 좋다고 하다가도 단발 변신을 했던 날 나를 번쩍 안아 예쁘다며 뱅뱅 돌았다. 그래서 나는 아꽁이 앞에서 모든 행동이 자연스럽고 가장 나답다.
기념일이 마치 365일 있는 사람처럼 매사가 밝고 어느때는 난리 부르스다 할 정도로 높아진 텐션을 주체못하는 나이기 때문에 귀찮음이 많은 아꽁이에게 서운할 때가 많아 아직까지도 티격태격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MBTI 궁합을 보면서 아꽁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을 뿐, 우리의 만남을 다시 생각해본 적도, 찝찝함도 없다. ‘우린 역시 로또야~ 안맞아~’ 이 말로 웃고 넘길 장난거리가 또 하나 생겼다 뿐이다.
20대 초, 중반에 수많은 소개팅을 받아오면서 나와 맞는 MBTI의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만일 그 자리에서 하나하나 물어봤다가 ‘천생연분’ 성향이 나왔다면 그 사람이 달리 보였을까? 갑자기 호감으로 변하고, 모든 게 나와 잘 맞다며 박수쳤을까? 몇 차례의 약속을 반복하면서 다시 무너지고, 또 뒤돌아 서로 웃는 너와 나는 정말 상극일까?
우리가 상극의 성향이라는 걸 알게된 후부터 ‘아 이래서 아꽁이가 이러는건가?’ 하나씩 알게된다. 그러니 실망이 이해로 변하고, 네가 더 좋아지는 난 어쩌면 좋지? 우리 그냥 천생연분 할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