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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moon song Nov 14. 2024

친애하는 Moon, 너와 네 부모님을 생각한다.

독일할머니와 한국아가씨, 편지로 삶을 주고받다.

사빈에게 나의 여름 프로젝트 -괴산에서 문화예술기획자로 한달살기- 를 소개하고 우리의 두 번째 주제인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질문들을 보냈을 때는 7월 하순, 여름이 절정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질문들을 정리하고 메일을 보내며 사빈의 이전의 답장들처럼 신중하고도 느긋한 답장을 예상하고 괴산으로 내려갔다. 사빈은 정말로 내 예상대로 여름을 보내며 자신의 일상을 충실히 보내고 여름 끝자락에 답장을 보냈다.


친애하는 Moon,  
내 답변을 받았다니 안심이 되는구나. 나는 네가 보낸 마지막 이메일에 답변을 보냈단다. 완전히 새로운 이메일을 직접 작성해서 보내려고 하면 오류 메시지가 나타나는구나. 우리는 아직 이 버그의 해결방법을 발견하지 못했어.
최근에 할 일이 많았단다. 집에 손님도 많이 왔고, 이야기할 것도 많았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감정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도 많았지. 어제부터 '인디언 서머'가 찾아왔어. 내가 일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낮에는 부드러운 공기가, 밤에는 상쾌한 시원함이 정말 환상적이지.   
그런데 지금 내 날씨 앱에서 서울을 열어보았단다. (넌) 정말 힘든 날씨를 보냈겠구나. 그리고 습한 공기. 날씨 데이터를 조회할 때 어느 정도 너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단다.
오늘은 여행의 동반자였던 재봉사와 작별 인사를 했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숙련된 장인이 되기 위해 수년간 여행하는 유럽 전통이지. 그녀는 교환 학생으로 1년 동안 일본에 있었는데, 일본과 한국에서 성과에 대한 압박이 너무 높고 여성의 자녀 수가 적으며 자살률이 매우 높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어. 너도 나에게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했었지. 너무 슬픈 일이구나.
하지만 나는 잘 지내고 있고, 정말 감사한다. 이제 늦여름을 즐기며 지난 며칠 동안 얻은 많은 인상을 (네게 보낼 글에) 정리할 예정이야.
따뜻한 포옹과 인사를 전하며, Sabine.


한낮의 태양도 한풀 꺾이고 이제 막 아침저녁이 선선해졌을 무렵이었다. 답장은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아니라 그녀의 일상과 그 속에서의 단상들이었고 그마저도 신중하고도 느긋한 그래서 어쩌면 더욱 일상을 음미할 수 있는 그녀답다고 생각하며 웃으며 그녀의 글을 읽었다. 독일의 인디언서머, 언젠가는 나도 그 풍경을 맞볼 수 있을까. 상상해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아빠가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간병은 응급실로 위독한 순간들로 그리고 며칠의 밤샘으로 이어졌다. 나는 서둘러 간단히 자를 적어 보내면서도 황망함에 정신이 없었다.

 

Sabine.    
지난주부터 아빠의 상태가 좋지 않아 간병해 왔는데, 이제 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응급실을 방문하여 현재 병원에 입원해 계십니다. 죄송하지만 자세하게 적을 수 없어서 몇 마디만 적습니다. 아빠가 남은 시간을 편안하게 보내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빈은 건강하길 바랍니다.
Moon
아버지께서 몸이 좋지 않으셔서 유감이구나. 아버지가 건강하지 않으시면 너도 건강하지 않겠지.  그냥 마음으로 너를 내 품에 안고 크게 안아줄게. 주변에는 늘 슬픔과 걱정이 있지만 어떻게든 견뎌내야 한단다. 나는 너와 너의 아버지가 너를 보호해 주기를 바란다.
매일 우리의 삶은 갑자기 바뀔 수 있지. 우리는 그걸 알고 있지만, 미리 준비가 되어 있진 않지. 심각한 병은 우리들에게- 당사자, 그 가족 모두-에게 큰 타격을 주지.   
난 괜찮아. 나는 멋진 ‘인디언 서머’의 날씨 속에 며칠 동안 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단다.  어느 날 갑자기 비와 바람이 많이 부는 가을이 찾아왔지. 지금은 슬로바카이 카르파티아 숲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하이킹 투어를 준비하고 있어. 정말 기대하고 있단다. 8일 동안 여러 사람과 함께 산행하는 건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는 일이거든.  이건 나에게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이지. 내가 얼마나 잘 (그 경험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볼까?                                                            
네 글에 내 사진을 사용해 주어 좋았단다. 나도 기뻤어. 소소한 일이지만 그래도 가슴은 행복하게 뛴다. 친애하는 Moon, 행운을 빈다. 그리고 네 아버지가 어디로 가든 평화가 있기를 빌어.
너를 생각하며, Sabine.


그녀의 편지를 번역하며, 다시 읽고 문장을 다듬으며 나중에야 깨달은 걱정과 격려를 가득 담은 그녀의 메시지를 받았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정신이 없었다. 아빠는 채 일주일도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고 그 순간을 소화하기도 전에 언니들과 함께 장례절차를 밟아나가는 데에 그리고 그 절차에 필요한 서류와 계약과 사인과 연락 돌리기에 숨 돌릴 틈도 없는 채였다. 그래도 상황을 알리기는 해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 건 이틀을 보내고 아침 발인 후 화장터로 떠나기 직전 문상객이 없는 텅 빈 장례식장에서 버스를 멍하니 기다리는 순간이 되어서였다.


안녕하세요. Sabine.    
이틀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오늘은 장례식의 마지막 날이에요. 한국에서는 장례식이 3일 동안 이어집니다. 마지막 날, 이제 우리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화장을 마친 아버지의 유골을 모시고 어머니가 쉬고 계신 나무 아래로 갑니다. 걱정하고 안부를 물어주어 감사드립니다. 다만 아버지가 편안하시길 바랄 뿐이에요.  
매일매일 하이킹을 즐기시기 바라요. 늘 건강하기를.
Moon.
아, 친애하는 Moon.  
어제 나는 잠시 너희 두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아마도 그것은 예감이었을 거야. 하늘과 땅 사이에는 우리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단다.  아버님께서 오랫동안 고생하지 않으시고 편히 가실 수 있었다면 좋겠다. 나무 아래에 있는 어머니에게 모시고 가면 거기서 그들은 함께 쉴 수 있겠지. 나무 아래는 좋은 곳이지.   
그리고 Moon, 슬픔에 잠길 시간을 가지렴. 너는 이제 부모가 없구나. 많은 생각, 감정, 그리고 새로운 책임도 네 주변에 있겠지. 나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직후에 슬픔에 더 많은 공간과 시간을 할애하기보다는 더 많은 일을 해야 했었다. 하지만 지금도 생각과 기억은 여전히 그때로 되돌아간단다. 그리고 때로는 이제 부모님과의 행동, 대화, 여타의 것들을 10년 전과 다르게 판단할 때도 있어. 확실히 더 많은 온화함과 이해심이 생겼지.
내 가장 친한 친구도 숲 묘지의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단다. 거기 가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가족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하고 우리가 공유한 과거의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단다. 나는 이것이 우리(가 사랑했던) 죽은 이들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살아있게 한다고 생각해.
너도 부모님을 잃은 것을 이겨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찾길 바란다. 넌 이제 (그들의) 삶의 반대편에 있지. 친애하는 Moon, 네게 깊은 애도를 표하며 너와 네 부모님을 생각한다. 나는 너를 내 품에 안고 네가 원할 때마다 네 말을 들어주려 한단다.
너의 Sabine.


사빈의 답장을 읽은 것은 장례식이 끝나고도 한참이 지나고 난 뒤였다. 사빈이 말한 것처럼 아빠가 돌아가신 직후에도 아니 아마도 돌아가신 직후라 많은 일을 해야 했다. 장례식과 관련된 절차를 마무리하고 가족들이 모여 아빠가 남긴 것들 그리고 법적으로 정리해야 할 것들을 논의하고 났을 때, 나는 그 어떤 것에도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의 말대로 나는 계속해서 아빠 집의 향방을 논의하고 결정해야 했고 내가 가장 곁에서 엄마와 아빠를 지켜왔기에 결국 아빠가 남긴 엄마와 아빠의 모든 물건들을 정리해야 했다. 급박하게 응급실로 떠나던 그 순간 그대로 남아있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아빠의 그리고 엄마의 흔적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생각을 잇지 못하고 다른 일들을 미루고 아팠다.

그리고 정리를 마무리할 즈음이 되어서야 다시 내 일거리를 떠올리고 작업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러 나섰고, 사빈의 답장들을 다시 천천히 읽을 수 있었다. 그녀의 문장들을 번역하고 다듬으며 울었다. 그제야 나는 편지의 행간을, 그녀의 탄식에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부모님을 잃었던 순간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조심스러운 위로를, 사랑하는 이들을 보내고 또 살아가는 순간에 함께하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보라는 따뜻한 격려를 읽고 있었다. 나를 품에 안고 내가 원할 때마다 내 말을 들어주겠다는 그 문장이 이미 나를 안아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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