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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인테리어 1: 가장 어렵고 힘든 욕실 리모델링부터

엄마 아빠가 살던 구옥을 리모델링하다

by 문성 moon song

1. 엄마아빠를 떠올리며, 가장 어렵고 힘든 욕실 리모델링부터

리모델링을 끝낸 집에서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침실에 딸린 욕실이었다. 업체와는 최소한만 작업을 해둔 상태였다. 욕실 인테리어는 시공도 까다롭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그대로 지내고 싶었지만 이미 문제가 많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 욕실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올라오는지 알 수 없는 하수구 냄새가 너무 심해서 들어가는 것조차 꺼려지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엄마와 아빠는 오랫동안 이 욕실을 거의 쓰지 않고 퀸사이즈 침대를 문 앞까지 두고 사용하셨다.

아빠는 엄마가 본격적으로 아프고 나서 가까운 곳에 있는 이 욕실을 사용하지 않는 게 아깝다고 느끼셨던 것 같다. 그때쯤 아빠도 심장수술로 종아리에 있던 혈관을 이식한 뒤로 다리에 힘이 가지 않는다고 하소연하셨고 욕실에는 미끄럼방지발판과 샤워용의자 등 간병보조용품들이 하나씩 들어갔다. 하지만 엄마는 본인에게 익숙한 거실욕실을 주로 쓰셨고 어느새 욕실은 아빠의 물건들로 가득 찼다. 아빠는 무릎이 아프다면서도 입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욕실을 옛날 주택의 개수대처럼 좌식으로 쓰셨다. 세면대 없이 낮게 달린 수도꼭지 앞에 큰 대야를 두고 대중목욕탕에서 쓰는 욕실의자에 앉아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하셨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정신없이 장례식을 마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욕실문을 열었을 때, 아빠답다고 생각했다. 겨울과 욕실장, 플라스틱수납장에 욕실용품들까지 작은 욕실에 빼곡하게 늘어서 있던 물건들은 고스란히 아빠를 보여주는 듯했다. 무엇 하나 함부로 버리지 않고 모아두던 검소함, 본인만의 규칙과 질서로 정리해 둔 것이 흐트러지는 걸 용납하지 못하던 고집스러운 깔끔함, 하지만 취향이나 개성은 찾기 어려운 선물과 사은품, 증정품 혹은 낡거나 닳은 혹은 망가진 오래된 물건들. 깨진 타일과 낡은 거울, 욕실장으로 꽉 찬 욕실에 서서 여전히 올라오는 하수구 냄새 속에 서 있던 순간이 떠오른다.

유품을 정리하며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며 지나온 2년의 시간은 적지 않게 도움이 되었다. 욕실의 물건들을 정리하는 일이 아빠도 아빠와의 기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지난 2년의 정리를 통해서 알게 되었기에. 나는 차근차근 마음을 담아 물건들을 떠나보낼 수 있었다. 빈 욕실만 남았을 때, 엄마와 아빠가 어떤 걸 불편해했는지 떠올리며 리모델링의 방향을 잡았다. 곰팡이 핀 천장 그리고 성인에게 맞지 않는 작은 변기와 쪼그려 앉아야만 씻을 수 있는 수전을 교체하고 세면대와 투명한 유리파티션을 추가해 습기를 최소화하고 볼일을 보거나 세수하고 이를 닦거나 샤워하는 각 활동이 서로 방해가 되지 않도록 동선을 정리했다.


그리고 업체와의 작업이 끝났으니 이제 남은 건 내 몫이었다. 이미 첫 자취집의 인테리어를 손수 바꾸며 욕실리모델링, 특히 타일작업이 가장 어렵고도 힘든 일이지만 동시에 작업을 하고 나면 가장 드라마틱하게 바뀐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 건들고 싶지 않았지만 이사 오고 며칠도 되지 않아 타일이 갈라지고 깨지며 떨어지고 있다는 게 보였다. 세면대를 쓰건 샤워기를 쓰건 물을 쓰고 습기가 차며 균열이 더욱 심해지리라는 건 뻔한 일이었다. 어차피 언젠가 해야 한다면 가장 먼저 해치우는 게 이후 인테리어 작업을 진행하는 데에도 부담을 덜게 될 터였다.

역시 최소한의 작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바닥타일은 시멘트에 그대로 부착해서인지 깨진 것이 없었기에 그대로 두고 벽면만 타일 위에 새 타일을 덧바르는 덧방을 하기로 했다. 벽면 타일 아래쪽에는 아빠가 이미 덧방 해둔 타일이 한 줄 둘러져있었기에 그것과 같은 타일을 구매해서 이어서 천장에 닿는 면까지만 덧방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적는 건 간단했지만 이미 경험해 본 바로는 혼자서는 그리고 작업도구 없이는 불가능했다. 우선 작업을 할 수 있는 도구도 가지고 있고 작업도 나보다 능숙한 지인에게 도움부터 청했다. 당연히 작업은 지인의 스케줄에 맞춰 진행해야 했기에 그 앞뒤로 필요한 자재와 도구들을 준비하기로 했다.


2.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동네 타일가게에서 아빠가 썼던 것과 같은 타일을 주문했다. 욕실리모델링을 해본 덕분에 타일을 구매하는 것도 공정을 준비하는 것도 헤맬 필요가 없었다. 타일은 무게로 인한 배송비 탓에 온라인에서 특별한 무늬의 타일을 고른다거나 할인폭이 큰 경우가 아니라면 가까운 곳에서 주문하는 것이 더욱 저렴했다. 아빠가 쓴 타일은 늘 재고가 있는 기본적인 화이트유광 대형타일이었기에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 화장실 각 벽면의 가로세로 치수를 재고 문의하면 타일가게 사장님이 여유분까지 계산해서 주시기에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타일 작업은 지인과 함께 프라이머를 바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보통 곧바로 타일접착제를 바른 타일을 붙이는 경우가 많지만 계속 갈라지고 깨지는 벽면을 고려해 접착력과 방수력을 더하기로 했다. 다음으론 기존에 있던 한 줄의 타일에 맞춰 타일을 붙여나가기 시작했다. 워낙 작은 욕실에 문과 도기 위치는 제외하기로 했기에 금방 마무리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타일이 큰 탓에 코너 작업을 위해서는 타일을 잘라야 했고 치수를 확인하고 타일커팅기로 타일을 자르고 타일접착제를 발라 붙여나가느라 작업이 한없이 더뎌지고 있었다.

우리는 전문작업자가 아니니 당연히 타일커팅기도 타일접착제를 개어 타일뒷면에 바르는 것도 타일을 열과 행에 맞춰 벽면에 부착하는 것도 하나하나 조심스러웠다. 한낮에 시작한 작업이 밤 열두 시를 넘길 무렵 지인도 나도 피곤에 지쳐 작업 속도는 더욱 느려졌다. 작업이 늦어질수록 미안해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좁은 욕실 탓에 욕실 문 앞에서 타일커팅기로 타일을 자르다 타일가루에 손이 배인 걸 보고 더욱 미안해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결국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잠시 작업을 멈추고 타일조각들을 정리하고 가루를 청소했다. 한숨을 돌리고 파티션은 분리해서 타일작업을 하고 도기 주변도 창틀 주변도 메지로 정리하자고 설득하며 작업을 어떻게든 줄여보려 애썼다.

결국 새벽 세시가 넘어서야 작업을 끝냈다. 온몸이 욱신거리는 와중에 이전 집 욕실리모델링을 하며 힘들었던 순간이 겹쳐졌다.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 이래서 전문가들에게 작업을 맡기는 거지. 되뇌었는데 이걸 다시 반복하고 있다니. 쓴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예산을 줄이려면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수밖에. 공간을 바꾸는 과정은 힘들지만 바꾸고 나면 매일을 불쾌한 공간에서 불편을 견딜 필요가 없었다. 엄마아빠는 그걸 몰랐던 걸까 알면서도 할 수 없었던 걸까. 쾌적하지 못한 것도 불편도 그대로 견디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답 없는 질문을 미처 이어가지도 못한 채 지쳐 잠들었다.



3. 다급하게 마무리하기보다는 차근차근 이어나가는

며칠을 앓고 일어나서도 욕실은 그대로 두었다. 타일접착제가 마르고 단단히 고정되기를 기다려야 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너무 힘들었던 터라 엄두가 나지 않기도 했다. 살림살이를 정리하며 미루어두었다가 몇 주가 지나서야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욕실용 유성 방수페인트를 주문해서 타일 붙이기를 포기한 창틀 옆면에 여러 차례 발라주었다. 타일커팅을 하며 고생한 탓에 헤라와 스펀지, 메지를 섞을 통, 장갑까지 철저히 준비하고 메지작업을 시작했다. 물과 섞어 뻑뻑해질 때까지 개어두었다가 타일사이를 메꾸어나가기 시작하자 깨지고 갈라졌던 타일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바닥의 푸른 타일과 갈색 알루미늄 새시만이 예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할 뿐이었다.

역시 다른 일들을 하며 몇 주가 지나도록 그대로 두었다. 메지가 완전히 마르고 나서도 지인과 스케줄을 맞춰 시간을 잡느라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그래도 다급하게 작업을 하는 것보다는 차근차근해나가는 게 백번 낫다는 걸 경험 속에서 알고 있었기에 불편을 감수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드디어 시간을 낸 지인과 함께 실리콘으로 문과 천장, 도기와 닿는 부분을 마감하고 비데와 세면대에 누수를 막아줄 케이블을 연결해 달았다. 그러고도 며칠이 지나고 실리콘이 완전히 마르고 나서야 비로소 욕실 세면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생활해 보며 필요한 것들을 추가할 차례였다. 이를 닦고 세수를 하며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며 무엇이 불편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확인했다. 우선은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생활해 보고 그래도 불편하게 여겨지면 불편한 까닭과 필요한 것을 적어보았다. 화장품과 함께 두었던 욕실용품들을 넣을 수납장, 얼굴을 확인할 거울, 휴지걸이, 세면대 물때를 줄일 칫솔과 치약, 비누거치대, 계속해서 올라오는 냄새를 차단할 수 있는 배수구, 좁은 욕실 사방으로 물이 튀지 않도록 샤워커튼봉과 샤워커튼, 샤워기를 고정할 수 있는 샤워기거치대.

그렇게 작성한 목록으로 검색을 해보면 무수히 많은 제품들이 나왔다. 유품을 정리하며 이사를 하며 물건을 사는 것보다 정리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섣불리 살 수 없었다. 그 제품들 중에서 아무거나 고르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내 생활에 가장 적합한 것을 찾아보았다. 무엇보다도 목적에 맞는 성능에 적당한 가격대인 것, 다음으론 좁은 욕실의 공간을 잡아먹지 않는 콤팩트한 크기와 단순한 디자인, 화이트톤으로 욕실에 들어왔을 때 시선에 거슬리거나 산만하지 않은 것을 골랐다. 역시나 다급히 주문하기보다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하나씩 기준에 맞는 것들을 골라두었다가 주문을 하며 천천히 추가해 나갔다.



여름을 맞을 무렵 수세미 거치대를 주문한 것이 구매목록의 마지막이었다. 세면대를 매일 쓰며 틈틈이 닦아주는 편이 청소주기를 늘려준다는 것을 깨닫고 세면대 청소용 수세미를 둘 거치대를 세면대 다리에 부착했다. 완연한 가을이 된 지금까지, 아직은 더 필요한 것이 없다. 하지만 욕실 인테리어가 끝났다기보다는 생활에 따라 달라지는 과정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 아빠가 그랬듯 나 역시 나이를 먹고 생활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게 더는 필요 없는 것을 정리하거나 필요한 것을 더해나가야 할 것이다. 엄마아빠를 보며 안타까워했던 마음은 내 안에서 자기 배려가 되어 나 자신을 돌보고 나의 생활을 단정히 하게 하는 것이다. 이제 나에게 인테리어는 완료형이 아니라 과정형의 무엇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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