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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반딧불이인걸 알고싶지 않아

황가람의 <나는 반딧불>을 듣고서

by 사서 유

별안간 엄마가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황가람의 <나는 반딧불>을 들으시고는 이 노래를 찾아달라고 하셨다. 당시에는 가사가 조금 특이하네 정도였는데, 방문 넘어로 들어오는 노래는 쉬이 무시할 수 없는 곡이였다. 철학적이면서도 쉬운 문장으로 쓰여진 노랫말, 호소 짙은 가수의 목소리. 유퀴즈 숏츠영상으로 우연히 이 노래의 원곡자는 따로있고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41살이며 꽤 긴 무명생활을 견뎠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41살에 자신의 목소리가 심심치않게 들리는 꿈을 현실로 맞이한 이의 기분은 어떠할까. 아마도 단순한 환희보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오묘하고도 벅찬 감정은 아닐까.


노래가삿말과는 정반대로 나는 노래 속 반딧불이가 자신이 벌레임을 깨달았다는 것이 필사적으로 내가 무시하고 있는 나의 미래와도 같아보였다. 아직 임용고시 공부도 내가 제대로 하지 않아서이고, 작가로서의 꿈도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고 내 자신을 연신 다독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곡 속의 화자와는 달리 어릴 때부터 나는 줄곧 내가 별이 아니라 벌레임을 의심하며 살아왔다. 애매한 재능은 주변의 칭찬을 받는 정도이지만 그 이상의, 이를테면 공모전에 당선되는 등의 일은 여간 쉬운 것이 아니었다. 내가 꿈꾸는 30대의 모습은 20대엔 생각조차 못했다. 다만 지금보다는 상황이 나아지기를 바라며 늘 뒤돌면 벼랑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재계약 신세를 면하게되면서 조금은 생활의 안정이 찾아왔고, 이제야 40대의 내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곡의 화자인 반딧불이도 자신이 벌레임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모르길 바래왔는지도 모른다. 애써 별이라 믿으며 하늘을 아둥바둥 날아오던 반딧불이는 밤 하늘의 눈부신 별에 결코 닿을 수 없자, 자신이 하늘에 떠있는 것이 아닌 애써 날고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예전부터 알았다고하면 너무 내 자신이 아프다보니, 나는 몰랐다며 애써 되뇌이는 것이다.


벌레여도 여전히 눈부신 반딧불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며 말한다. 빛나는 속성은 하늘의 별이건, 자신의 몸뚱아리던 변함이 없기에. 빛을 내는 주체는 그저 대상일 뿐 중요한 것은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난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벌레라는 것을 끝내 모르고 살고싶으면서도, 노랫속 화자처럼 알았다 할지어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기를 바라본다. 그리하여 내가 벌레이던 별이던 전등이던간에 빛이 난다는 그 사실하나만으로 나를 어여삐 여기기를 바라본다. 댓글로 누군가 명곡은 사연을 남긴다고 하였다. 나도 그런 글을 쓰는 사람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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