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신의 필요성을 증명해야 하는 직업

도서관에는 관심이 많으면서 사서에 대해선 관심이 없는 사회

by 사서 유

전공서적을 보다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도서관의 위상 정립', '사서의 전문성 인식', '도서관 인식 변화' 등. 이걸 특징 중 하나라고 본다면 별다를게 없겠으나, 텍스트 내 숨겨진 이 말의 뜻이 얼마나 애잔한 말인지를 사서들은 알 것이다. 자신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고, 전문가임에도 내가 전문가라고 밝혀야 하며, 인식은 좋은 건 단순히 보이는 이미지일 뿐 실은 사서의 능력에는 무관심한 사회. 20대에 내가 이민을 떠나고 싶던 가장 큰 이유이자 직업적 회의감을 느끼던 이유였다.


사서의 이미지는 사서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와 드라마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사서가 직업인 역할을 맡은 배우는 유진, 신민아, 한지민인데 이 세 배우의 공통점은 쉽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사서를 직업적으로 그려낸 것은 유진과 이동욱이 주연을 맡은 영화 <그 남자의 책 198쪽>이다. 도서관에서 옛 애인의 흔적을 찾는 남자와 그런 남자가 궁금해진 도서관 사서인 여자. 이 얼마나 로맨틱한 설정이던가. 해외에서는 주로 사서는 하이틴무비에서는 씨끄러운 주연들을 주의주는 역할이라던가, 어딘지 모르게 고지식하고 딱딱한 이미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청순한 배우들을 캐스팅한 한국이던, 고지식한 이미지를 그리는 외국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두 이미지에는 '주체성' '활발함' 등의 활동성은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내가 모든 사서의 대표도 아니거니와, 내가 겪은 경험은 개인적이므로 쉽게 일반화하면 곤란하다. 다만 내가 10년 넘게 일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사서에 대한 인식은 좋으면서도 필요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이 기묘한 현상이 얼마나 심하면 우리의 인식을 드높여야하고, 전문성을 알려야 한다며 전공서적에서 외치느냔 말이다. 앞서 말한 활동성이 배제된 이미지와, 지금 말하고 있는 필요성을 인식시켜야 한다는 이야기의 공통점은 '사서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에서 기인한다. 그렇기에 '도서관에 가면 언제나 자리에 앉아 바코드를 찍어주는 사람'이라는 인식은 꽤나 억울하다. 바코드를 찍어주는 건 맞는데, '바코드만 찍어주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은 사서로부터 나온다. 도서관 서가에 꽂힌 수많은 책들은 사서들이 적합한 기준에 의거하여 고르고 골라 선정된 것들이며, 도서관에서 개최하는 문화행사나 프로그램들 역시 사서의 머릿속에서 나온다. 그러나 내가 느낀 한국사회는 도서관과 책에 대하여 연신 필요하다 외치지만 그 중심에서 이용자를 이어주고 도서관의 두뇌역할을 하는 사서들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정보사회에 대해선 끊임없이 이야기가 논의되는데, 정작 그 정보를 다루고 접근하는 사서들에 대한 이야기는 흔히 거론되지 않는다. 전공자 입장에서, 현직자 입장에서, 그리고 10년 넘게 이 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답답하기 그지없다.


자신의 필요성을 증명해야 하는 직업이 몇이나 될까. 오히려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 사회에서 정보전문가인 사서들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가운데, 왜 여전히 책을 빌려주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이야기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 것을 사서들의 탓으로 돌린다면 몹시 억울하다. 오래전부터 외치고 외쳐서 그나마 지금에 도달한 것이라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직업적 보람과 회의감은 마치 한 끗차이 같아서, 직업인으로서 언제나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더 이상 외로운 직업이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일반화의 무서움을 무릅쓰고 사서선생님들께 죄송한 마음을 가지며, 오늘도 글을 적어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