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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Oct 28. 2019

[D+171] Watsons Bay / 남과 산다는 것

룸메이트 줄리언니와 왓슨스베이 여행을 다녀오다

줄리언니가 우리 집에 온 것은 불과 몇 달 전이었다. 유키가 떠난 후 새 룸메이트인 그녀는 함께 지나는 동안 내게 이런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아플 때면 약을 챙겨주는 등 나를 친동생처럼 잘 대해주었다. 임산부인 언니의 배가 점점 불러져가는 것을 보며 나 역시 신기하였고, 내년에나 태어날 아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호주에서 조카가 생긴 것처럼 퍽 행복해졌다. 우리는 줄곧 주말에 놀러 가자며 이야기를 나눴고, 두 달이 지난 후에야 시간을 맞춰 함께 바다로 향했다.


우리가 선택한 왓슨스베이는 호주에 막 도착했을 때부터 혼자서라도 가고픈 여행지 중 하나였는데, 이유는 시티에서 1시간 거리밖에 되지 않는 이동거리와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햇살마저 따듯했던 당일, 언니와 함께 집을 나서며 연신 오늘 날씨가 화창한 것에 감탄하였고 우리는 날이 좋은 날 여행을 간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윽고 왓슨스베이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고, 버스에서 시드니의 풍경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렇게 바다로 향했다.

왓슨스베이 (Watsons Bay)

상쾌하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우리를 먼저 맞았고 뒤이어 조우한 왓슨스베이의 첫인상은 흡사 제주도와도 같았다. 그만큼 왓슨스베이는 한국에서 볼 수 있는 해안절벽과 그 모양새가 몹시 유사하였는데, 실제로 나는 절벽 상부 쪽으로 올라가며 쉼 없이 한국어를 들었던 터라 이곳에 호주인지, 한국의 또 다른 관광지인지 점점 헷갈릴 정도였다. 왓슨스베이는 정면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상부로 올라가 내려다볼 때의 그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데 덥지도 춥지도 않았던 날씨와 푸른 바다, 그리고 들이키는 것만으로도 상쾌했던 바닷바람과 쉼 없이 부서지는 파도소리 등. 그 모든 것들이 나를 행복케 했다.

그 이후로 줄리언니와 나는 혼비 등대로 가는 길을 몰라 두 시간 동안을 헤매었는데, 줄리언니의 기억력 덕에 우리는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혼비 등대로 향하는 길에 보았던 작은 해변가는 자연이 만들어놓은 간이 수영장과도 같았고, 햇볕이 내리쬐는 시간에 이곳을 찾았다면 당장이라도 그 위에 누워 여유를 부리고 싶을 정도였다. 바다는 어느새 노을빛으로 가득하였고, 날씨는 쌀쌀했음에도 불구하고 주황빛으로 물드는 바다에 괜스레 온몸이 따듯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노을은 마치, 난로에서 일렁이는 불빛과도 같았다. 

생각보다 아담하였던 혼비 등대 밑으로는 발을 잘못 헛디뎠다간 금방이라도 바다에 빠져버릴 것 같은 바위들이 있었다. 어느덧 어두워진 하늘과 거센 바닷바람이 저절로 몸을 움츠러들게 했고, 한낮에 왔다면 더욱 이뻤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주황색으로 물든 바다를 보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낭만적인 일이었고, 해변가로 내려오며 바라본 야경 역시 아름다웠다. 주위엔 바다밖에 없던지라 온통 까맣던 곳에서 해변가에 위치한 식당들이 뽐내는 불빛이 더욱 반짝였던 탓일까. 이토록 아름다운 야경을 보고도 채 다 담아내지 못하는 카메라가 괜스레 야속했다.

Doyles on the beach

사실 왓슨스베이를 오기 전부터 찾아보았던 글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해변가에 위치한 Doyles 식당이었다. 바다를 등지고 즐기는 맥주와 피시 앤 칩스라니. 다소 피곤해 보였던 언니를 이끌고 굳이 그 식당을 고집한 것 역시 그 이유였다. 나 역시 앞서 다녀온 사람들처럼 코앞에서 바다 냄새를 맡으며 입으로는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고 싶었다. Doyles는 생각보다 훨씬 바다 앞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정말이지 내가 상상했던 식당의 분위기 그 자체였다. 생각보다 높은 가격에 다소 놀라기는 하였지만, 나는 시드니에서 결코 노동자로서만 살아가는 것이 싫기에 선뜻 직원에게 추천받은 맥주와 피시 앤 칩스를 주문하였다.


이미 밤에 가까울 정도로 해는 모두 져버렸고, 우리는 다소 쌀쌀한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꽤 오래 머물렀다. 긴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루 종일 지친 몸을 이끌고 두어 시간을 걷고 심지어는 버스만 약 40분을 기다릴 정도에 고생이었지만, 우리는 그곳에 다녀오길 정말 잘했다며 서로 찍은 사진들을 전송하였다. 그리고 나는 언니와 함께한 이번 여행을 복기하며 룸메이트로 그녀를 만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를 생각했다. 혼비 등대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며 언니가 털어놓았던 그녀만의 이야기, 그리고 내가 자신에게는 호주에서 만난 또 다른 동생이라는 언니의 말. 비록 인종, 문화, 언어 그 모든 것이 달랐지만 우리는 함께 집과 추억을 공유하며 어느새 서로에게 또 다른 가족이 된 것이다.


호주로 출국하기 전날, 나는 엄마 옆에서 누워 세상 어느 곳보다 편한 우리 집에서 문득 시드니에서 살면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동거해야 한다는 사실에 퍽 두려워졌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나는 우리 집처럼 널브러져 있어도 전혀 개의치 않은 공간에서, 어느덧 익숙해진 사람들과 함께 동거하고 있다. 서로 의지할 곳 없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연락을 주고받고, 작은 감기몸살에도 약을 챙겨주며 신경 쓸 수 있는 사이. 사적인 공간을 공유하다 어느새 서로의 생활을 공유하게 된 그들과 오늘도 나는 함께 밥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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