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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Oct 30. 2019

[D+180] 워킹홀리데이 새내기와 헌내기

이제 갓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한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다

몇 달 전, 고등학교 동창이 호주로 워홀을 올 거라며 연락을 해왔다. 그 친구의 연락을 받았을 즈음 나는 호주 생활에 퍽 신이 나 있던 지라 그 친구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많이 해주었고, 몇 달 후 그 친구가 호주에 도착했다며 연락을 해온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몇 년 만에 처음, 그것도 낯선 외국에서 조우하였고 여전히 낯선 이곳에서 그나마 나에게 낯익은 장소이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인 서큘러퀘이로 친구를 안내했다.


사실 그 친구와 내가 단둘이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외국에서 만났다는 이유로 우리는 어색함 없이 수다를 떨 수 있었다. 그 친구는 오페라하우스를 처음 본다며 그 앞에서 연신 사진을 찍었고, 아직은 얼떨떨하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호주에 워홀로 온 것인지, 여행으로 온 것인지 크게 실감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친구는 웨이트리스와 영어를 주고받는 그 짧은 시간에도 자신의 영어실력에 대해 꽤 고심하는 듯 보였고 그러한 친구의 모습을 보자니 이곳으로 갓 도착했을 때가 떠올랐다.

Customs House
Munich Brauhaus The Rocks

우리 집으로 누군가 인스펙션을 올 때면, 집을 살펴보는 그 사람의 태도만 보아도 그가 이곳에 갓 도착한 워홀 새내기인지, 이미 시드니가 익숙해진 헌 내기인지를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집 안을 살펴보는 행동 만으로도 눈이 반짝임과 동시에 설렘이 어려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뭐랄까, ‘외국에서의 자취생활’이 처음인 사람만이 갖고 있는 기대와 설렘이 나에게도 온통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나 역시 그들처럼 사소한 생활 하나에도 두 눈을 반짝였을 테지.


익숙한 것들이 싫어 떠나온 6개월이 지나 익숙한 것을 놓치기 싫어 망설이는 7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라며 새로운 도전정신에 잔뜩 가슴이 부풀어 오르다가도 다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새로운 일자리를 얻을 생각을 하니 한숨을 쉬고 지레 뒤로 물러나게 된다.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 중 새로운 것을 택해야 하는 것임을 스스로가 아주 잘 알고 있음에도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대개 노동자들이 그러하듯 이 곳에서 일상적인 노동과 잠깐의 휴식으로 반년을 보냈다. 그 사이 누군가에게 나는 여전히 이곳에 대해 잘 모르는 새내기이자 ‘그래도 겪어본 자’에 속하는 경험자일 것이다. 처음 시드니 공항에 발을 딛고 기대와 두려움으로 가슴이 콩닥거리던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무엇을 고치고 싶을까. 막연히 생각해오던 ‘외국인들과의 일’을 위하여 몇 개월의 백수생활을 자처할 것인가 혹은 계획에도 없던 어학원을 다니며 경험에 조금 더 집중해 볼 것인가. 어쩌면, 지금 얻은 좋은 사람들이 있기에 이러한 고민 역시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6개월을 이곳에서 살아본 내가, 한 번도 이곳에서 살아보지 않은 나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정해진 답도 없고 쉬운 길도 없는 이 질문이 나의 남은 6개월을 조금은 윤택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여전히 나는 답을 내리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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