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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Nov 01. 2019

[D+192] 책을 좋아하고 글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란

최근 유명한 하명희작가님의 드라마 ‘사랑의 온도’ 원작 소설을 멀리 한국에서부터 주문해 읽었다. 극 중 주인공은 드라마작가 지망생이었고, 심지어 그녀는 나처럼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고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서 드라마작가 과정을 수료 후 공모전에 당선되기 위하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에 투자 중이었다. 이름 좋게 말하면 작가지망생이였고 현실적으로 보자면 백수인 그녀의 상태. 나는 그녀의 상황에 2년 전 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소설 속 그녀처럼 직장을 그만두고 드라마작가 되기 위하여 공부한 적이 있었다. 표지에 내 이름이 버젓이 들어간 70분짜리 단막극 대본도 있으며 집에서 상장처럼 모셔두고 있는 수료증 역시 가지고 있다. 소설을 읽다 나는 문득 1년 동안 함께 공부했던 선아언니가 생각나 그녀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고, 1시간 동안이나 우리가 작가가 되기 위하여 열정이 부족했던 점을 이야기하며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서로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를 말했다. 우리 통화의 결과는 ‘우리는 작가라기 보다도 작가를 꿈꾸는 나’가 좋다는 것이었다.


사실 고하자면 나는 책을 좋아하는 내가 좋고 글을 사랑하는 내가 좋다. 누군가 ‘그건 너의 허영심이야’라고 지적한다면 그게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라도. 선아언니와 대화 후 도출해낸 결과처럼, 나는 글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심지어 쓰기까지 하는 내가 좋고 그것과 같은 맥락으로 사서라 소개할 수 있는 내가 좋다. 그러나 문제는 직업적으로 접근하여 보자니 스스로 그 깊이가 참으로 얕아 보여 때때로 내 직업을 먼저 소개하기가 부끄럽다는 것이다.


최근에, 내가 얼마나 얕고 알량한 자존심을 지녔는지 몸소 실감했던 적이 있었다. 시드니에서 유일하게 책에 대해 소통할 수 있는 D와 이야기를 하던 중 D는 이번에 발표된 노벨문학상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몰랐으며, D와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D가 지닌 나쁜 독서습관(소설만 읽는 편독)에 대해 지적하였고, D는 이에 ‘나는 책을 재미로 읽는 거야’라고 답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사서로 재직 시절 그토록 입에 닳도록 말한 ‘독서습관이 형성되지 않는 아이들 혹은 청소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흥미를 먼저 일깨워주는 거예요’란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각종 문화공연을 진행할 때면 종종 받는 흔한 질문에 전문가랍시고 기계처럼 말했던 그 대답을, 실제로 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입을 통해 듣자 저절로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마치, 일주일간 시드니를 여행하고 돌아와 그곳에 사는 현지인 앞에서 ‘시드니는 말이야’라며 허세를 늘어놓다 들킨 기분이었다.


한국에서도 그래 왔고, 호주에서도 종종 그러하듯 나는 사서라며 나의 직업을 소개할 때마다 내심 자랑스러운 마음에 우쭐하였다. 그러니까 나는 ‘사서로서의 직업의식 혹은 자격’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은 채 ‘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나, 심지어 직업마저 사서인 나’에 대한 허세가 있던 것이다. 그 허세는 오히려 도서관 속 세상을 벗어나면서 깨지게 되었고, 우습게도 5년 차가 접어들며 죽어가던 직업의식은 먼 호주 땅을 밟으니 생기가 돌았다. 물론 스티븐 킹과 헤밍웨이를 좋아하고 독서가 취미인 사람의 밑에서 반년 가까이 일하며 받은 충격이 한몫했을 테지만.

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에 차이를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성립된다면 그것은 사랑이라 말했다. 한국에서 나는 내 직업을 그저 좋아하였기에 ‘급여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처우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식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등등의 수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들 앞에서 좌절하여 결국 애정에서 애증으로 변하고 말았고, 때때로 싫어하기까지 하며 내 직업을 스스로 폄하하기에 이렀다.


한국에서 사서로 일하는 것이 권태롭고 지겨워 호주로 떠나왔는데, 요즈음 부쩍 도서관이 그립다. 주방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육체노동이 적다는 이유도 아니고, 새로운 분야에 비해 재취업이 수월하다는 이유 역시 아니다. 고요하고 적막한 도서관의 공기가 그립고, 인쇄된 책에서만 맡을 수 있는 책 냄새가 그립고, 무엇보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그 공간이 그립다. 물론 다시 맞닥뜨릴 수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에 대해 여전히 의문스럽다. 한국으로 돌아가 사서로서 다시 일을 시작한다면 이번에는 좋아하는 것을 넘어, 사랑할 수 있을까. 어릴 때엔 오로지 남녀관계에서만 성립되던 호감과 사랑의 차이는 커갈수록 그 범위가 넓어져 문득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툭하고 튀어나와 나를 고민에 빠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에야말로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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