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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Dec 24. 2023

주짓수를 시작한 계기와 한 사람에 관한 추억 하나

노트북에 있던 여러 파일들을 정리하다가 지금으로부터 1년 전에 쓰다가, 마무리하지도 못하고 남겨두었던 글을 하나 발견했다. 블루벨트를 받고 나서 그 동안 걸어온 길을 떠올리다가, 어떤 길을 계기로 시작했는지 주저리 주저리 써 내려갔던 글이었다.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아마 이 뒷부분에 관한 것도 어딘가에 적어두었던 것 같은데, 그건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 뒷부분은 고마움에 관한 글이었던 것 같다.

이제 추억이라 말하기에 적당한 시간이 흘러 그 사람에 대한 기억도, 서글펐던 나의 지난 날도, 거대한 인생의 한 페이지 이상을 차지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보면서 아득해진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을 아리게 만드는 건 왜일까?

지우지 않고 남겨둔 이 글을 보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때가 다시금 선명해진다. 그저 추억이라고 하기에는 몹시 서글펐던, 그러나 소중했던 그 때의 기억이 나는 이따금 그립고 또 고맙다.


완성되지 않은 채로, 그 때 적었던 글을 그냥 올린다. 완성되지 않았기에 나는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이 글을 쓰던 1년 전도 떠올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 글을 통해 완전하지 않은 것도 그 자체로 좋을 수 있다는 걸 느낀다.




오랜만에 올리는 주짓수와 관련된 글이다. 아마 마지막 글이 새롭게 일을 시작하면서 주짓수도 잠시 쉬게 된 글이 아니었던가 싶다. 뭐, 여하튼 결론부터 말하면 난 아직도 주짓수를 계속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약 6개월 간의 공백이 있었지만, 결국 일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그만둔 뒤, 다시 주짓수를 하고 있다. 물론 전보다 수입은 적어졌지만 그래도 비교적 만족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찾아 하게 된 것도 복이라면 복이었다. 결론은 그렇게 다시 돌아와 등록을 하고 약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는 사이에 흰띠 2그랄이었던 나는 어느덧 4그랄이 되고 이번주가 지나면 아마 띠 색깔이 바뀌지 않을까 싶다.(현재는 바뀜) 참 꾸준히 운동했다. 특별한 경우나 부상이 아니면 매일 나가 운동을 했고 배운 걸 소화할 수 있도록 꾸준히 연습했다. 다시 돌아온 뒤 이런 저런 부상을 입고 나서는 운동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무엇보다 평일에는 롤링을 참고 기술이나 체력 단련에 대체로 매진하되 롤링 데이 때에는 쉬지 않고 누구보다 격정적으로 하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또 하나는 드릴 및 체력단련을 계속하다보니 나만의 체계나 시스템이 생겼다는 건데, 이를테면 단순히 근력 운동에만 촛점을 맞춘 게 아니라 어느날은 운동성이나 민첩성 강화, 또 어느날은 안정성 강화, 유연성 훈련 등으로 구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나름의 체계를 세우고 꾸준히 하니 롤링을 안하면서 자칫 잃어갈 수 있던 운동의 재미를 다른 방식으로 채울 수 있었다.

“좋은 취미가 될 거에요.” 라고 말해줬던 그 날, 내게 처음 매트 위에서 스파이더 가드라는 라는 걸 보여줬던 그 날, 혹은 어느날 저녁 우연히 마주치고 내게 눈물을 보였던 그 날, 실은 나는 그 사람의 주변에서 떠날 준비를 이미 하고 있었다. 좀 더 가까이 하면 내 자존감이 무너져 버릴 것 같은 마음에 실은 안해도 될 고백을 하고 그 사람의 거절을 받아들이고 연락을 끊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제까지 변두리에서 머물다가 이따금 큰 조언이라도 해줄 수 있는 사람인 것 마냥 태도를 보여야 할 것만 같았고 그러다가는 언제라도 내 심장이 고장나 버릴 것 같은 마음이 있던지라, 나는 이미 답이 정해진 대답을 듣고선 단념을 할 수 있었다. 이제와 말하면, 나는 그런 거절의 응답을 받기 바로 전 날, 결말이 다른 2개의 편지를 동시에 썼다. 하나는 오로지 고백만을 담은 편지, 다른 하나는 고백과 함께 이루어질 것을 미리 암시하며 이별을 고하는 편지. 결국 둘 중에 첫 번째 편지를 보냈다. 사랑에 눈이 멀 때에는 아주 실낫같은 헛된 희망을 안고 있게 되는 법이며, 나 역시 정신이 약간 돌아 한편으로는 그 바늘 구멍 같은 희망을 걸어보았으며, 다른 이유로는 ‘무엇을 보냈어도 이별을 할 터인데, 굳이 아예 희망도 없는 편지를 보낼 필요가 있겠는가?’하는 생각이었다. 또한 이별을 먼저 고해서 그 사람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다는 어리석은 생각이 섞여 자기 합리화로 귀결된 까닭이었다.

나의 주짓수는 결국 그런 이별로 시작된 일이었다. 그렇게 거절을 당하고 아예 그 사람의 연락처마저 지워버렸지만, 홀가분하게 털고 일어설 수가 없었다. 공허함은 한달 이상 계속되고 자존감은 바닥을 뚫고 들어가 손목이라도 긋고 싶었다. 보고 싶고 연락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지만, 이를 악물고 가까스로 참아냈다. ‘참아내야 한다. 결국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이고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 간신히 올 사소한 답장 하나에 꼬리를 흔들다가 이내 실망하고 자신에게 화를 내고 슬퍼할 것이다.’

우울의 깊이를 알 수 없을 무렵, 순간 순간 떠오르는 그녀의 잔상에는 언제나 주짓수가 있었고 내가 지나는 길목에 있던 도장 옆을 지나갈 때마다 지우고 싶은 그녀를 다시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추운 그해 2월, 벗어날 수 없는 길목 위에 있는 그 도장을 결국 방문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의 주짓수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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