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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Jan 30. 2021

삶은 '살아감'이며 또한 '사람'이다.

나의 주짓수 도전기 28.

“합격하셨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9시까지 출근해주세요.”    

 2.5단계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면접을 보게 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주짓수를 계속할 수 있을까?’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마음 한편에서는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주짓수를 하더라도 지금처럼 오전 시간대에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루하루 실로 소중한 주짓수였는데...' 전화를 끊자 1년 동안 도장에서 경험한 여러 일들이 스쳐갔다.

2.5단계로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이 주짓수였다. 봉쇄 조치가 풀리고 나서는 여러 이유로 운동 시간을 오전으로 조정해야만 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에 만났던 좋은 사람들과의 훈련을 못 한다는 아쉬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떠한 계기로 오전 수업의 색다른 즐거움을 찾게 되었는데, 바로 수업이 끝난 후 격일로 하던 턱걸이 운동 때문이었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참석하는 A 군에게 오전 수업이 끝나고 도장에 남아서 턱걸이 운동을 하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 그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관장님께서 자기도 참여 의사를 밝히게 되면서 월, 수, 금요일에 이 운동을 쉼 없이 하게 된 것이었다. 각자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운동을 시작했고 나는 16개 * 8세트를 기준으로 운동을 했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기진맥진하여 나중에는 보조자가 밀어주다시피 하기도 했는데, 그런데도 모든 세트를 다 마치고 나면 결국 해냈다는 성취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또한, 2주일이 지날 무렵에는 체력의 비약적인 상승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통화를 끊고서 동료가 없으면 이루지 못했을 성취의 재미를 더는 못 느낀다고 생각하니, 예감했던 것보다도 아쉬움이 컸다. ‘꽤 오랫동안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았는데, 그리고 그 일들을 통해 제법 만족과 즐거움을 느끼고 살았는데, 이제는 그것을 내려 둘 때가 된 거구나. 나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인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문학적인 글은 써낼 수 있을까? 운동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단 하루도 허투루 살지 않겠다는 다짐과 비록 돈은 많이 벌지 못해도 성취할 수 있는 여러 일이 가득했는데, 취업하고선 지금과 같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 누가 들으면 배부른 소리 같을지도 모르겠지만, 나 자신은 실로 삶에 기쁨이 넘쳤기에 취업을 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내 삶을 돌아보면 실로 즐거웠다. 책에 둘러싸여 누구의 명령도 따르지 않고 쉼 없이 읽었고 운동 속에서 체력의 한계를 시험해보기도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써보기도 하고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계획을 세워 하루를 채워나가기도 했다. 이러한 삶 가운데 전과는 전혀 다른 ‘일’이 포함된 것이다. 자신의 노동 시간을 팔아 자본을 취득하는 삶,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반드시 겪어야만 한다는 그 삶 속에 이제야 본격적으로 편입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 삶 속에서 버텨나갈 수 있을까? 그 삶에서 행복을 찾고 그 안에서 내가 원하는 길을 밟아 나갈 수 있을까? 나는 주짓수를 계속할 수 있을까? 물론 지금처럼은 아니겠지만,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난 지금의 주짓수를 매우 그리워할 것 같다.

실로 지금의 주짓수는 ‘관계의 주짓수’라고 부를 만하다. 처음 그 사람을 통해 주짓수를 접한 지, 딱 1년이 되어가는 지금 이 시기에 나는 새로운 관계를 맺고 그 사람들의 참모습을 알게 됨에 따라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관계였으나, 그 관계 속에서 주짓수 본연의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훈련하는 동료를 얻었고 그들이 숨을 헉헉대면서도 “오쓰!”를 부르짖을 때, 나 역시 그렇게 따라 하고 있었다. 그 사람 덕택에 얼떨결에 시작했던, 나의 주짓수는 1년 동안 그렇게 바뀌었다. 그 사람에 관한 그리움을 비워가는 동안 그 공간에 어느덧 뜨거운 동료애를 담아 두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주짓수를 떠올리면 그 사람보다 나의 도장과 1년 도복을 맞잡은 이 사람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어떤 단어를 생각하면, 특정한 누군가가 떠올라요."

관장님은 마카롱을 떠올리면 관원으로 있는 한 어린 친구가 떠오른다고 했다. 스무 살의 그 친구가 마카롱을 도장에 가져오거나 그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반복적인 계기 맞물려 그녀의 인상은 마카롱이라는 단어와 중첩되었다. 관장님은 때로는 싫어하지 않을 별명으로 친한 관원들을 부르곤 했는데, 그것이 그가 우리를 기억하는 한 가지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도장 위에 있는 이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성실, 꾸준히, 열심히'와 같은 단어를 생각할 때, 나를 떠올려 주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전화통화가 끝나고 다음 날 오전 시간에 A 군과 함께 기술 연습을 하다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나 없어도 계속 남아서 운동을 할 거죠?"

"형님! 형님 안 계시면 저도 안 할 겁니다."

A 군은 마치 내가 농담이라도 한 것처럼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의 의미는 ‘비록 우리가 모두 지쳐도, 당신이 결코 먼저 이 훈련을 그만두지 않을 걸 압니다.’였다. 그 말에 그의 미소를 따라 함께 웃었지만, 동시에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뒤따랐다.

"실은 갑작스럽게 취업을 해서 당분간은 나오지 못할 것 같아요."

그에게만 들리도록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축하한다고 내 손을 꼭 붙잡았다. "형님, 취업이 중요하죠. 그렇게 가시는 거면 괜찮습니다!"

"그래도 회사가 이 근처이니 일이 적응되면 저녁에 봐요. 나 없더라도 꼭 계속 이 보충 운동은 계속하고요!"

매번 힘들게 훈련을 하고 나서 그가 보여주던 그 희열에 찬 모습이 떠올라 손을 맞잡고 다짐이라도 시키는 듯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취업하셨다고요? 축하합니다!"

수업이 끝나고 화장실에 다녀오자 A 군이 이미 말을 전한 듯, 관장님은 내게로 와서 손을 맞잡았다. 맞잡은 손에도 감정이 있고 또한 많은 것을 말한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니,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수많은 의미가 손을 통해 전해졌다. 축하 속에 아쉬움 같은 감정들. 함께 했던 시간의 기억들이 굳은살 속에서 피어올랐다. 긴말이 필요 없는 남자들의 대화였다.

"그래도 마지막 턱걸이는 해야죠?"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다른 긴말이 필요 없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주짓수는 나에게 어떤 의미이며 앞으로는 또한 어떤 의미로 남을까? "좋은 취미가 될 거예요." 그 사람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성이 '주-' 씨인 '-지수'를 여자 친구 삼으려고요."라는 농담에 관장님은 징그럽다며 그저 취미로 하시면 좋겠다고 1년 전의 그 사람과 같은 말을 했다.

그래, 취미다. 그러나 의미가 있던 일 년간의 고통스러운 취미였다. 실로 열심히 한 취미였고 매일 성취감을 느끼던 취미였다. 매일 하루 일부를 차지하고 의미가 되던 삶,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던 그런 삶, 그리고 그런 내 삶의 일부에 들어와 있던 사람들. 아! 삶은 '살아감'이며 또한 '사람'이구나! 나는 이렇게 살고 있고 이런 사람들을 만나고 있구나!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

철봉 아래에 있는 이들은 가까스로 올라가는 나를 뒤에서 살짝 밀어주는 동료들, 할 수 있다며 응원하는 동료들이었다. 도장 밖에서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 관계의 주짓수의 세상 속의 그들은 내가 포기하지 않도록 밀어주고 있었다. 그래서 이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고맙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난, 그 길 위에 다시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늘 그래 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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