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크리스 님. 요즘 많이 바쁘신가요?”
“무슨 일 있으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지난번에 제가 뒤풀이 자리에서 라인 많이 외우신 거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같이 연습할래요?’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나서요. 그래서 같이 라인 연습하고 수업시간에 배운 것도 연습하면서 서로 피드백을 주면서 스터디처럼 연습하면 어떨까 싶어서요. 우리는 피드백에 목마른 사람들이니까?”
“좋죠. 그런데, 지금 제가 무릎이 안 좋아져서 매일 연습하던 걸 쉬고 있습니다.”
“제가 밤에 일하는 사람이라 혹시 심야 연습 10~12시 정도도 가능하신지 여쭤보고자 메시지 드립니다. 매일 하지 말고 일주일에 한 번만 하면 안 될까요?”
그렇게 수요 정모를 마치고 우리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나 역시 거의 일하는 시간대가 밤인지라, 연습하고 싶어도 하기가 어려웠는데, 생각지도 않게 먼저 10시~12시를 제안해 주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더구나 나보다 훨씬 더 오래된 경력에, 여러 장르의 댄스를 섭렵하고 있는 분이 먼저 함께하자고 말을 해주다니!
수정이 끝날 무렵, 넬리님이 찾아왔다. 기본적으로는 라인 모임이었기에, 마마스튜와 Nitty Gritty 라는 라인을 연습했다. 이와 더불어 넬리님은 상체의 아이솔레이션과 활용을 위한 워밍업으로 Bus Stop 이라는 음악에 맞춘 연습 영상을 가져오셨다.
외우기도 쉽지 않지만, 그 이상으로 그루브한 움직임을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목마르면 스스로 물을 찾는다고 했던가?’ 상체의 움직임이나 그루브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기에, 이 동작들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스윙 음악이 아니었기에 리듬감이 좀 다르긴 했지만, 그래도 아무렴 어떠랴? 음악의 리듬감을 몸, 특히 상체의 움직임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대략 8개월 전쯤에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단조로움’이었다. 매일 스텝과 바운스를 반복하면서 나름 자신감이 생겼지만, 문제는 음악을 듣고 표현할 때, 다양한 음악의 흐름에 따라 리듬을 달리해야 하는데, 나는 거의 일정한 리듬감으로만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때와 8개월 정도가 지난 지금은 조금은 달라졌을 것 같긴 하지만, 그때 그 분으로부터 들었던 충고 중에는 “우리가 보이는 것의 상당 부분은 상체”라는 말이었다. 이어서 그는 아이솔레이션이나 거울 앞에서 상체를 이리저리 움직여보는 등의 연습을 해보라고 조언을 했었다. 그런 말들 때문에, 음악에 맞춰 워밍업으로 꾸준히 연습할 수 있는 루틴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지금 넬리님이 알려주시는 리드미컬한 동작들이 어쩌면 윤활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연습이 끝날 무렵, 우리는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다시 연습했다. 특히, 지난번에 넬리님은 내게 4 카운트 동작 이후, 오른손이 프레임을 잡지 못하고 흘러내린다고 피드백을 주었기에 그 점에 신경을 써서 연습했다.
“계속 흘러내려요. 손가락을 넓게 잡아보겠어요?”
그에 맞춰 다시 연습.
“조금 나아졌는데, 이제는 팔에 힘이 들어가네요.”
계속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습을 거듭했다.
“보통은 횡격막을 중심으로 3cm 위 정도에 무게 중심이 있거든요. 그러면 저는 여기쯤 일 거에요.”
넬리님은 직접 횡격막에 근처에 손을 짚어가며 설명했다.
“무게 중심을 잡으면 이동이나 고정하기가 편해요. 거기를 짚고 스윙아웃을 해보겠어요?”
그녀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스윙아웃을 했다. 확실히 손가락과 손바닥이 등에 쫙 붙은 느낌이 들면서 상대를 좀 더 편하게 이끌 수 있었다.
“정말 그런데요? 모르고 있었어요!”
“예전 중급 수업시간에 말한 적이 있는데, 기억 안 나요?”
무게 중심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은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무게 중심에 대해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내가 지면을 밟고 있을 때 나의 무게 중심을 인식하고 상대에게 스윙아웃 등의 동작을 하라는 식으로 이해를 했지, 팔뤄의 무게 중심을 잡고 팔뤄에게 리딩하라는 의미로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정말 좋은데요?”
확실히 팔뤄를 잡은 프레임이 단단히 잡히는 느낌이었고, 어떤 동작을 해도 편하게 팔뤄를 이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생각해보니, 나와 키가 비슷하거나 작은 상대들은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아도 상대의 횡격막 위의 무게 중심을 자연스럽게 잡을 수 있었던 반면, 지금 내 눈앞의 상대는 그만큼 키와 무게감이 있어서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개념을 깨닫고 나니 어떤 동작으로든 상대를 리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러한 연습을 하면서 춤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상, 들은 것이 더 많았다. 특히 넬리님의 춤에 대한 관점은 많은 생각을 자아냈다. 예를 들면, 춤을 춘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것이었다. 이야기의 발단은 “넬리님은 대회 생각은 없으세요?” 였다. 그 대화에서 내가 느낀 바로는, 대회의 특성상 특정 기술을 선보여야 하는 압박감이 있으며, 춤을 춘다는 것의 의미로 기술을 선보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춤은 기예여야만 하는가? 또, 기술로써의 춤과 음악의 리듬에 맞춘 자연스러운 표현으로서의 춤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나는 이 춤을 나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그리고 지루함을 극복하고 재미있기 위해서라도 춤을 분명 기예로 여기고 있다. 동시에 음악의 리듬에 맞춘 자연스러운 표현을 팔뤄와 함께 하고 싶다. 이 두 가지는 조화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 춤의 기술적인 부분만을 추구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문득, 어느 날 내가 적은 동호회 카페에 남긴 글에 한 형님의 남긴 댓글이 문득 생각났다.
난 네가 화려한 기술을 구사하는 리더보다 팔뤄를 잘 이해하는 맞춰주는 리더였으면 좋겠어.
‘난 그런 사람인가? 나는 팔뤄에게 진정 좋은 사람일까?’
아직, 잘 모르겠다. 아니, 지금으로서 바라는 건, 적어도 무례한 사람만큼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아니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