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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보뽈로니오 Sep 18. 2017

기억되기, 기억하기

여섯 번째 이야기. 차파다 지아만치나(Chapada Diamantina)

 

 이전부터 짝꿍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혼자 여행하며 만났던 어떤 연인(혹은 친구사이라도), 그 둘의 모습이 내 눈에 너무나 예쁘면 나는 그들을 함께 기억했다. 스치며 만난 여행하는 여러 쌍의 연인 혹은 친구사이마다 내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꼭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가, 일상에서 차오르는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그들을 꺼내본다. 내가 누군가를 상상하며 뿌듯함을 느낄 때 그들은 대부분 한 쌍이다. 한 명은 어딘가 허전하다. 그리고 그들을 기억하며 자꾸 누군가와 한 쌍으로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서 커져왔었다.


 용우를 만나고 나서는 우리를 하나의 덩어리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의 여행이 길어질수록 그 사실이 내심 뿌듯했다. 반대로, 여행에서 돌아온 우리는, 여행 중에 만났던 사람들을 같이 꺼내보고 기억한다. 용우와 여행한 후 분명히 더 좋다고 느끼는 점인데, 혼자 여행한 후 친구들을 떠올리면 어딘가 괴로운 감정이 동반됐기 때문이다. 좋은 곳에서 좋은 시간만 보냈던 사람들, 더 솔직히 말해 좋아했던 남자들은 더 그리워지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 용우를 만났고 더 이상 그들을 그리워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용우와 함께 만난 이들은 둘이서 마음껏 그리워할 수 있다. 얼마든지 우리의 대화에 그들을 끼울 수 있다. 함께 그들과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기억은 더 강렬해진다.



 몇 달 이상의 장기여행을 할 땐 늘 팀을 꾸려 떠나는 며칠간의 트래킹을 한다. 오래 두고 그리워할 사람들을 만나기에 가장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산도 좋아하지만 더 솔직하게는 트래킹의 팀원들과 짧은 시간 동안 진한 육체적 노동을 함께한다는 사실이 훨씬 좋다. 그 사이에서 나눠먹은 음식, 그 사이에서 대화했던 것들은 그 어디에서보다 더 기억에 남고 좋다. 그룹 트래킹에는 그런 엄청난 매력이 있다.     


 브라질 바이아 주의 국립공원 Chapada Diamantina(차파다 지아만치나) 트래킹. 다섯 명의 멤버 나, 용우, 호주에서 온 D형제(데이비드, 덜못), 그리고 가이드 루아까지 우리는 모두 90년대 초반 생이었다. D형제는 차분하고 다정한, 참 배울 점이 많은 형제였다. 트래킹에 일인 당 적지 않은 돈을 냈지만 산 중턱 롯지에서 차려주는 식사를 마친 그들의 그릇은 늘 잔반이 남지 않게 싹 비워져 있었고, 식사를 제공해주신 분이 그릇을 치우러 오기 전에 재빨리 자기들이 먹은 그릇을 손으로 박박 닦아가며 설거지하던 그들이었다. 무엇보다 많이 걸으며 대화했던 그들은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자기들이 처한 현실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볼 줄 아는 겸손한 친구들이었다.      


 92년생 초보 가이드 루아도 우리가 참 좋아했다. 날로 먹는 것 같아도(이 점을 호주 형제는 조금 탐탁지 않아했지만) 비슷한 나이의 이런 사람을 처음 보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고마웠다. 늘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으니까. 타잔이라고 설명하면 거의 비슷하게 설명이 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서울에 강제로 한주 동안 있게 하면 시름시름 앓다가 죽을병을 앓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자연, 그리고 레게 음악과 불같이 연애하는 친구였다. 음악이라곤 레게밖에 알지 못하고 산에선 늘 메디테이션을 외치는, 자기에게 꼭 어울리는 드레드 머리를 한 루아는 그렇게 험한 산을 2박 3일 동안 하바이아나스 쪼리 하나만 신고 뛰어다녔다. 걱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태도로 메디테이션을 외치던 그는 물도 필요 없다 했다. 그러다 더워서 죽을 것 같다며 중간에 우리 물을 가로채 한 입씩 마시곤 하던, 뻔뻔한 점도 매력 있는 친구였다.      

 혼자 일하는 루아는 이번엔 운이 좋게도 참 고분고분하고 착한 클라이언트들을 만난 게 확실했다.       


 그렇게 우리 둘은 이들과 꼬박 3일을 함께 보냈다. 우리는 우리 다섯 명을 기억한다. 또 우리를 뺀 세 명을 기억한다. 호주의 D형제를 기억한다. 브라질의 루아와 산을 함께 기억한다. 그리고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았을 우리 둘의 모습을 기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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