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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보뽈로니오 Sep 07. 2017

Villa Luka

다섯 번째 이야기. 모로 지 상파울루(Morro de São Paulo)

요즘도 루카가 잘 크고 있는지 궁금할 때면 괜히 booking.com에 들어가 morro de sao paulo 섬의 Pousada Villa Luka 예약 페이지를 들여다본다.(브라질에서 Pousada는 민박 개념이다.) ‘이곳은 여전히 할인된 가격으로 손님을 받고 있구나.’ 다른 곳들과 시설은 비슷하지만 닿기 불편한 숲 속 한 중턱에 위치해 있으니 주인아저씨로서는 저렴한 가격에 방을 내놓을 수밖에 없겠다 싶어 안타깝다. 리뷰 페이지에 이유 없이 안 좋은 후기가 남겨져 있으면 내가 나서서 변명해주고 싶다. 그 밑에 아저씨의 서툰 영어 답변이 달려 있는 걸 보고 있자면 혼자 억울해하며 열심히 타자를 쳤을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저씨는 브라질 살바도르 출신의 여자와 결혼한 남부 이탈리아인이다. 만으로 두 살 정도 난 아들의 이름인 루카로 민박 이름을 짓고 이제 막 아름답고 작은 섬 모로 지 상파울루에서 숙박객을 받기 시작하는 참이었다. 마침 우리가 얼마 전까지 이탈리아에서 6개월 동안 살다가 여행을 떠나온 것이라고 이탈리아어로 이야기하니 아저씨는 자기도 얼마 전에 고향에 다녀왔다며 우리를 정말 반가워했다. 평생 살던 곳과는 완전히 떨어진 브라질의 외딴섬, 그 안에서도 고립된 외딴 숲 속에서 아저씨는 홀로 새로 지은 집과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집에 관련된 문제들이 하나하나 기다렸다는 듯 차례로 터지면 아저씨는 그 모든 걸 혼자 손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가 그곳에서 묵은 첫날엔 집 전체에 단수가 됐다. 따뜻하게 샤워를 하다가 물이 갑자기 끊겼고, 우리는 결국 묵었던 3일 내내 받아놓은 수영장 물로 간신히 씻고 그 물을 끓여 뭔가를 해 먹고, 설거지도 했다. 아저씨는 미안해하며 거의 숙박비를 받지 않았다. 우리는 아저씨가 계속 혼자 힘들게 잘못된 것을 고치려 애쓰는 모습에 차마 불평을 할 수 없었다.     


하루 종일 해변가에 있다가 저녁에 들어와 방에 있는데 아저씨와 부인이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랐지만 그들은 이 외로운 섬에서 얼마든지 외로울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우리는 지금 이곳의 열악한 환경이 이 상황을 만드는 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두 살배기 루카는 앞으로 쭉 이곳에서 커가게 될까. 모로 지 상파울루가 정말 아름다운 섬인 것은 틀림없지만 학교며 병원이며 한 가족이 살아가기엔 시설이 충분치 않아 보였다. 집도 숲 속 한가운데에 있는지라 딱히 그 나이 또래의 친구도 없는 것 같았다. 처음 본 우리한테 루카는 자기가 지금 자는 중이라며 눈을 감고 우리의 말을 아예 듣지 않는 이상한 장난을 계속 쳤다. 그래도 조금 아이와 가까워졌다고 느끼고 루카에게 다시 한번 다가가면 루카는 도망을 가며 우리로부터 멀어졌다.      


빌라 루카에서 있었던 3일의 시간. 정말로 우리가 함께 종종 꿈꿔왔던 대로, 내가 살던 곳을 호기롭게 떠나게 된다면 우린 어떤 걸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유력한 예상 답안 중 하나가 현실적으로 다가왔던 순간이었다. 모든 이민자들이 느낄 수 있는 불안함과 외로움이 이곳 외딴섬의 외딴 숲에서 내게도 갑작스레 다가왔다. 그리고 자꾸 루카의 가족에 마음이 쓰였다. 아저씨도 처음에는 누구보다 자유로운 꿈을 꿨겠지, 그 꿈은 지금 아저씨 마음속에 얼마나 자리하고 있을까. 빌라 루카에서 나는 자꾸 평범한 길에서 이탈하고 싶은 내 마음이 발전되어 자라나면 닥쳐올 쉽지 만은 안은 상황들을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밖에 우리를 모르는 곳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함께라면 조금 나을까? 아니, 앞으로 우리는 계속 함께하게 될까?

섬 morro de sao paulo의 지도. Mapa da alegria(Map of happiness).
수심이 얕고 물이 따뜻해 놀기 좋은 섬 morro de sao paulo 의 바닷가. 하루종일 시간을 보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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