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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보뽈로니오 Aug 26. 2017

그 날, 살바도르에서 벌어진 일 2

네번째 이야기. 살바도르(Salvador) 

 급하고 불안한 내 성격은 여행할 때 가장 심해진다. 나 스스로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하지만 애초에 좀 더 차분해지고 싶다거나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여행을 하는 사람은 아니니 떠나기를 멈출 이유는 없다. 혼자 여행할 땐 다른 사람 앞에서 이런 상태를 어느 정도 숨길 수 있었다. 아예 감추어지지는 않더라도, 의식적으로 불안함을 다 내보이지 말자고 다짐했기에 나와 잠시 동행한 여행자들은 그렇게까지 심한지 몰랐을 것이다. 


  여행에서 나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건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다. 그렇기에 진짜로 위험한 남미에서 나는 가장 불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남미를 가슴에 품고 산다는 것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남미에 혼자 꽤나 오래 있었으니 남미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내게 조언을 구하는 지인이 많다. 대체로 나는 치안에 대해서 “어느 정도 다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칼이나 총강도를 만나도 당황하지 말고 다 준다는 생각으로 다녀야 다치지 않고 돌아올 수 있다” 정도로 말을 해주며 위기 상황에 아주 침착하게 대처하는 사람인 마냥 이야기하고 다녔다. 


  막상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수개월의 여행을 함께 한 남자친구에게 감출 수는 없었다. 오히려 마음 놓고 불안함을 드러내며 여행하는 내내 그를 힘들게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뒤늦게야 든다. 버스를 타거나 길을 걸어갈 때 겉은 웃고 있지만 두 눈의 동공은 늘 사방을 경계하며 흔들리고 있고, 그러다 아주 작은 자극에도 소리를 지르며 도망갈 때도 있었다. 안 좋은 느낌이 들면 바로 자리를 피하자고 한 경우도 많았다. 무서운 도시에서 밤에 잠 들 땐 왠지 이번 여행에선 집에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엄습해 남자친구 품에 얼굴을 파묻기도 했다. 


  가장 신나면서 동시에 가장 무서운 곳에 있을 땐, 내 감정의 모순에 나 스스로도 어쩔 줄을 몰랐다. 살바도르, 이곳에서 밤마다 골목에 춤을 추러 나가, 브라질 사람들처럼 어설프게 엉덩이를 씰룩씰룩 흔들며 삼바에 빠져들고 있는 나와 모두가 신난 이곳에 갑자기 총성이 울릴 것을 예감하는 극도로 예민한 내가 동시에 존재했다. 


  살바도르에서는 그 불안한 예감이 실제로 이어졌다. 용우는 그곳의 신나는 밤 골목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싶어 했고 나를 어두운 공터로 이끌었다, 위협적인 태도의 한 남자가 이때다 싶어 나타나 우리에게 돈을 요구했다. 그 후 잠시 동안 나는 그 남자가 요구한 돈을 용우가 숙소에서 가져오길 기다리며 엉엉 울고 있었다. 로컬 친구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동행인이 나를 위험한 상황에 빠뜨리게 했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나는 늘 불안하다고 느끼고 매 순간 아주 조심하는데, 그런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에, 방해를 받았다는 것에 화가 났다. 늘 내가 의지해온 고마운 남자친구였다는 사실은 그 순간에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주 잠시 증오했다.


  어쩌면 살바도르가 시작이었을까. 때로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폭발하는 내 모습을 남자친구가 처음 보게 된 곳이. 


살바도르 전통 복장을 한 여인의 포즈에 맞춰 함께 사진을 찍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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