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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보뽈로니오 Aug 16. 2017

네가 춤을 추는 게 좋아

세번째 이야기. 살바도르(Salvador) 

남자친구의 첫인상은 묵직하고 둔탁했다. 낙성대역 앞 점심약속이었다. 옷을 두껍게 입어 더욱 그래보였나. (나중에 들은 이야기론) 전날에 술을 많이 마셔 얼굴이 부었던 걸까. 처음 만났을 때 내게 힙합을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용우가 그루브를 타며 춤을 추는 모습은 머릿속에 도무지 그려지질 않았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 살바도르에서 남자친구가 춤을 꽤나 잘 추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여기, 모두가 훌륭한 춤꾼인 브라질의 도시 살바도르에서 용우는 잘난 체 한번 안하고 자연스럽게 나를 춤으로 깔보았다. ‘아.. 나도 딱 저만큼만 추고 싶다.’ 그의 그루비한 몸짓 앞에서 내 기는 이미 눌려버렸다. 하지만 묘한 열등감과 동시에 나는 살바도르와 그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느끼곤 내심 뿌듯했다. 자신이 서울에서 자취를 하기에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이해하며 살고 싶다고 말하던, 늘 조금은 외롭다는 용우와 배를 타고 살바도르로 실려온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들 사이의 접점은 딱히 없을지라도, 당시 노예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후손들의 춤을 그는 나보다는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살바도르의 삼바가 이렇게 어울릴 줄이야. 가자마자 광장에서 만난 현지인에게 곧잘 스텝을 배운 이후로 2주 가까이 되는 날들 동안 용우는 그렇게 매일, 살바도르 뻴로링요(pelourinho) 구역 여기저기에서 새벽 늦은 시간까지 춤을 췄다. 삼바와 힙합의 느낌이 적절히 섞인 몸짓으로. 골목에서 밤마다 활동하는 타악 밴드(bloco)가 소리를 리드하면 주민들이 그들의 뒤를 따라 같은 안무를 춘다. 모두가 흥에 겨운 가운데, 용우도 행렬에 끼어 자기만의 스타일로 삼바힙합을 완성했다. 살바도르에 어울리는 해방적인 몸짓을 자연스레 체화한 느낌이다!     

어쩌면 남자친구 때문에 나는 살바도르에서 춤을 잘 출 수가 없었다. 도저히 그 만큼은 잘 출 자신이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둘이 함께 춤을 출 일이 있으면 춤보다는 그의 비디오그래퍼를 자처한다. 살바도르 이후로는 용우가 춤을 추는 걸 보는 게 좋다. 그래서 종종 클럽에 가자고 조른다. 매년 음악 페스티벌을 가자고 한다. 집에서도 둘이 있을 때면 자꾸 춤을 춰보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다시 용우가 브라질의 도시 살바도르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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