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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보뽈로니오 Aug 03. 2017

너 말고는 날 건드릴 수 없어

두번째 이야기. 주앙 페소아(João Pessoa) 

들어본 적 없던 브라질 북부 대도시에 또 한 번 불시착했다. 프라야 두 피파(Praia do Pipa)에서 만난 니콜라스의 차를 얻어 타고 우리의 여행 방향 선상에 있는 이곳 주앙 페소아(João Pessoa)로. 다음 도시로 떠나기 전까지 자신의 집에 며칠 묵어도 된다는 그의 호의를 주저하지 않고 받았다.     


만20살, 혼자 세계일주를 할 때 여자로서 느끼는 신변에 대한 두려움, 그게 엄청나게 컸다. 혼자 이동해 중남미의 무시무시한 도시 어딘가에 도착하는 게 본능적으로 너무 무서웠고 현지인 친구들에 많이 의지했다. 여행이 길어지면서 도시마다 한번쯤 여행에서 스쳐간 친구들이 있었고 그들은 연락하면 대부분 자기 집에서 묵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 집이 혼자 사는 남자의 집이라면 상황이 달라지기도 했다. 두려움을 피하려다 또 다른 종류의 두려움을 맞았다.     


한 번은 그런 일이 있었다. 멕시코에서 혼자 사는 한 친구의 집에 한 달 정도 머물렀을 때였다. 이전에 페루에서 일주일 정도 한 그룹에서 같이 트래킹을 한 적도 있었고 친절한 친구였다. 친구는 좋은 사람이었다. 주변 친구, 사촌들까지 동원해 매일 나를 심심하지 않게 멕시코 시티의 맛집, 박물관, 놀이공원 등 좋은 곳에 데리고 다녀주고, 그들과 주말마다 멕시코 시티의 근교로 여행을 함께 했다. 친구 집에 침실은 하나였고, 친구는 나를 배려해 혼자 방을 쓰게 했다. 친구는 거의 한 달 째 나 때문에 거실 소파를 침대로 삼고 있었다. 그날도 실컷 놀다 친구와 둘이 집에 들어왔다. 친구가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침대도 엄청나게 큰데 그동안 나 혼자 편하게 잔 게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어 친구에게 오늘 각자 침대 끝에서 편하게 자자고,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잠에 든 지 몇 시간이 지났나, 분명 침대 저 쪽 끝에 있던 친구의 손이 내 배에서 살살 움직이고 있는 게 느껴졌고, 나는 친구가 깨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등을 홱 돌렸다. 이후로 나는 친구를 괜히 무시했고, 퉁명스럽게 대했다. 아직도 속상한 건 그 때 혼자 당장 떠날 용기가 없어 화를 내지 못했다는 것.     


이 비슷한 일이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있었다. 그 다음번에는 다른 친구의 집이었고 그땐 친구한테 곧장 화를 내며 밤에 무작정 배낭을 메고 거리로 나섰다. 혼자 거리에 나온 게 또 무서워 친구에게 화를 내지 말 걸, 말도 안 되는 후회를 하기도 했다. 원치 않는 일들이 발생하려고 할 때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밀쳐 내야만 했다.      

다시 온 남미, 용우와 함께 현지인의 초대를 받으니 마음이 참 편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도시에서 한 남자의 집에 마음 편히 묵을 수 있다는 게 혼자라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안다. 적어도 용우가 옆에 있는 한, 이 친절한 남자가 내가 방에 들어가려고 하기 직전에 갑자기 키스를 시도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애인이 함께 있으니 이렇게나 좋아 스스로 한번 물어본다. 혼자 있었으면 같은 상황에 어땠을까 하고. 혼자 여행을 했어도 여러 이유들(안정감, 숙박비, 현지인과의 교류)로 인해 니콜라스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친구가 남자라는 점과 단둘이 집에 있게 됐다는 점이 매우 불안했을 것이다. 그 불안한 밤에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얼른 방에 들어가 문을 꼭 닫고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었겠지. 분명 편하게 잠에 들 수 없었을 거다.


용우와 니콜라스. 니콜라스가 밤에 데려가 줬던 주앙 페소아(Joao Pessoa)의 리오 자카레(Rio Jacare).


니콜라스가 사는 아파트의 옥상. 아르헨티나 출신 답게 치킨 아사도를 솜씨 있게 요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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