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이야기. 멘도사(Mendoza)
우리는 연애사를 공유하며 서로에 대한 감정을 키웠다. 각자의 마음을 흔들었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는 얼마나 큰 마음으로 어떤 연애를 해왔는지 숱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우리가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많이들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감정이 발전해 연인관계가 된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우리는 불필요할 정도로 솔직했다.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아마도 서로의 모든 야시시한 일은 다 알고 만나기 시작한 것이다.
산티아고에 있던 우리는 아르헨티나의 멘도사로 넘어가기로 했다. 안데스 산맥의 큰 줄기를 넘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남미 대륙에서 내게 그 어디보다 익숙한 멘도사를 용우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멘도사에서는 내가 한때 마음을 다해 좋아했던 사람과 함께 몇 달을 살다가 힘든 헤어짐을 겪은 전력이 있다. 하지만 뭐 그런 게 대수인가 싶었다. 그런 걸 따지다 보면 용우랑 나는 서울 하늘 아래 어디에도 함께 못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그 사람은 더 이상 멘도사에 살지도 않는다.
뭐 그런 게 대수라고 생각하기엔, 용우와 사귀기 전 멘도사에서의 연애 이야기를 너무 자세히 말해줬던 게 아차 싶었다. 얼마나 내가 당시에 그와 헤어지며 힘들고 슬펐다고 감정을 실어 얘기해줬었는지. 왜 그렇게 용우에게 그 이야기를 할 때 아직도 슬프다는 듯 오버액션을 했을까. 그것 또한 용우의 동정심을 유발해 마음을 얻어내기 위한 본능이었던 것일까. 참 수가 낮고 주책이었다.
멘도사로 가는 버스 안에선 여러 불안한 감정이 공존했다. 괜히 용우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기도 했고, 용우의 마음을 멋대로 추측하고는 내심 억울해했다. 마치 지난 연애의 잔상이 깊어 마음 한 켠에서는 아직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데 본인이 옆에 있기 때문에 내가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는 것 같이 보이면 어쩌나 싶었다. 나는 정말 그런 게 아닌데. 그런 게 아닌데도 용우는 조금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왜 그렇게 꼭 용우와 함께 멘도사에 가려고 했을까. 그곳을 전 애인과의 특별한 추억이 있는 나만의 은밀한 여행지로만 남겨두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용우에게 과장되게 내보이고 싶었다. 당당하게 함께 이 곳을 다시 방문해 내가 여기를 너와의 추억으로 새로이 덮으려고 한다는 사실을 은근히 어필하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렇게 하면 용우도 나도 편할 줄 알았던 것이다. 급하게 일 처리하고 모른 체하듯 마음속의 짐을 덜어내려던 얕은 마음이었다. 참 내 멋대로인 마음이었다.
그 해 3월 이후로 다시 간 멘도사엔 애매하게 발자국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