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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라비다바다 Oct 22. 2023

한번 들르면 인생이 바뀔지도 모르는, 인생 카페

세상 끝의 카페


8년 연속 유럽 베스트셀러 1위에다가 21세기의 <연금술사>라는 평을 받는 책이라니 눈길이 갔다. 또 '세상 끝의 카페'라는 책 제목이 뭔가 환상적으로 다가왔으며, 소설 형식의 자기계발서라는 것도 처음 들어본지라 궁금해서 안읽어볼 수 없었다. 


그런데 처음에 일반적인 소설이 갖고 있는 핍진성과 개연성을 기대하며 읽었더니, 초반부의 내용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여행길에 도로가 꽉 막히자 주인공은 화가 나서 차를 돌려 그저 다른 길로 막 달리다가 그 어떤 사람의 흔적도 없는 먼 곳까지 가게 된다. 해는 지고 연료도 부족해서 막막해하던 참에 우연히 한 카페를 발견해 들어가니, 카페 직원들은 갑자기 삶의 존재의 이유(ex.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를 물어보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초반엔 책에 큰 흥미가 생기지 않아, 책을 덮고 다른 책을 집어들었다. 김시선의 <오늘의 시선>이란 책이었다. 그런데 소름돋게 그 책도, 저자가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라는 삶의 존재 이유를 고민하게 됐고 퇴사 후 유튜버를 하게 됐다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었다. <세상 끝의 이야기>와 내용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책을 덮고 다른 책으로 눈길을 돌렸는데 같은 내용이 연속적으로 나오다니, 마치 원래 읽던 책을 마저 다 읽고 오라는 신의 계시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책을 다시 펼쳐 들었고, 어느새 등장인물들의 진지한 대화에 흠뻑 빠져들어 버렸다. 나도 그 자리에 있는 것 마냥, 그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고민하며 읽었다. 카페 직원들은 주인공에게 크게 세 가지를 묻는다.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죽음이 두렵습니까? 충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열띤 논의를 이어간다.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카페 직원은 말한다. 본인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고, 그걸 충족시키기 위한 일들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예를 들어, 내 존재의 이유가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라면, 어떤 식으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좋을지(의사가 돼서 사람들을 치료해줄지, 건축가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줄지 등) 스스로 판단하고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존재 목적을 찾고 그 목적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 행복할 수 있다. 덜 행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 이유와 무관한 일들을 한다. 

"자기가 이곳에 있는 이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그리고 사는 이유를 깨달으면 깨달은 대로 살고 싶어져요"

그렇다면 존재의 이유, 그리고 그걸 충족하는 일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 안에 갇혀 있기에 수많은 일을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수밖에 없다. 요즘은 그 어느때보다도 갖가지 정보, 여러 분야의 사람들,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시대인만큼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새로운 시도 자체를 거부하는 게 문제일 뿐인거다. 이 대목에 너무 공감이 갔다. 나 역시 얼마든지 내 관심분야의 동호회에 들어갈수도,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다양한 루트로 세상의 어떠한 지식도 배울 수 있을 테다. 다만 내 마음 속 두려움이 그렇게 못하도록 날 막고 있었으니, 두려움을 떨쳐내고 일단 시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카페 직원들은 주인공에게 여러 일화를 들려주며 메시지를 전한다. 한 직원이 말하길, 바다거북이가 헤엄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굉장히 빨랐다고 한다. 관찰해보니 그 비결은 물의 흐름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는 거다. 파도가 다가올땐 그냥 떠 있기만 하다, 파도가 먼 바다 쪽으로 쏠려갈 때 열심히 파닥거리는 식으로 말이다. 한편 본인은 파도의 흐름과 상관없이 계속 파닥거리느라 정작 파도를 타야할 때 남아있는 에너지가 없었다고 고백한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헛된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면 나중에 진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때가 왔을 때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내 인생의 진정한 목적과는 무관한 사람, 일 등에는 에너지를 쏟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겪는 악순환에 대해 설명해주는데, 현대사회 직장인들의 악순환을 정확히 묘사한 것만 같아 놀라웠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만족이라는 것이 물질에서 온다고 하는 광고를 많이 보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죠?" 

"광고에서 떠드는 대로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물건을 사고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광고에서 본 것을 구매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돈을 벌기 위해선 일을 해야 하죠. 정말 하고 싶었던 이상적인 일자리가 아니라도, 귀중한 내 인생을 투자하고 싶은 그런 일이 아니라도, 내가 사들인 물건값을 지불하기 위해 그 일을 그냥 하는 거예요. 그리고 스스로는 '한동안만 이러고 사는거야'라고 주문을 거는겁니다. '잠깐만 이거 해서 돈 벌고, 그 다음에는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거야'라고요. 그런데 문제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데도 그런 일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살기 때문에, 우리는 점점 더 인생에서 중요한 무언가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된다는 사실입니다...(생략)...바라는 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상받기 위해 물건을 사댑니다. 그렇게 광고에서 보았던 메시지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이죠. 물건을 사면서 일상적인 직장생활에서는 얻을 수 없는 만족을 얻길 기대하면서요. 하지만 불행히도 물건을 많이 사들이면 사들일수록 청구서는 산처럼 쌓이고, 그러면 불어나는 대금을 치르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고 말아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진정 원하고 좋아서 하는 일도 아닌데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인생에 불만은 더욱 커지고, 결국에는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할 시간은 더욱 줄어들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은 오랫동안 존재 목적과는 상관없는 일을 하게 되고, 그렇게 살면서 싫어하는 일은 더 이상 안해도 되는 미래,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미래에 대해 꿈만 꾼다는 말이지요."


또 다른 손님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데,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고민하면서, 일에 대한 보상을 더 이상 쇼핑으로 받지 않고, 대신 본인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상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렇게 본인이 원하는 일에 몰입하게 됐고, 결국 본인의 존재 이유를 충족시켜주는 일들을 하며 살게 됐다고 한다.


죽음이 두렵습니까?

저 질문이 문장 그대로 죽음을 두려워하냐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가 평소 죽음 자체에 대해 생각하고 두려워하진 않으니 말이다. 저 질문이 나온 맥락은,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내가 정녕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드는 것을 인식하고, 그렇게 영영 못하다가 죽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돌아보니 나 역시 두려워했다. '언젠가는 퇴사하고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테야'라고 생각하는데, 한해 한해 시간이 지날수록 그럴 기회가 줄어드는 것 같아서, 그렇게 영영 지금 직장에 남을 것만 같은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시간의 빠름에 대해서만 야속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이미 하고 있었더라면, 시간이 아무리 빨리 간들 두렵게 느끼지 않았겠구나 깨달았다. 


충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할수도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도 알아냈고, 그 존재이유를 충족시켜줄 일이 무엇인지도 알았는데,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면? 이에 대해 카페 직원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충족시켜줄 일을 하고 있다면 원래만큼 돈이란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을 거라고 답한다. 윗 이야기의 연장선이었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으면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돈을 많이 쓰게 되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면 탈출구라는 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으니, 내게 필요한 돈도 이전만큼 많지 않을거란 얘기다. 그런 관점에서도 생각할 수 있구나 놀라웠으며, 그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이 됐다. 


그리고 여기에 내 의견 한 스푼 덧붙이자면, 나는 요즘 시대엔 무슨 일이든 본인이 잘하고 좋아한다면 저절로 돈으로 연결지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요즘은 그림이든 성대모사 줄넘기든... 그 어떤 특이하고 특별한 재능이든 유튜브를 통해 대중들에게 보이고 돈을 벌 수 있는 시대니 말이다. 그래서 더더욱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모든 깨우침을 얻고 대화를 마무리하면서 카페 직원에게 물어본다. 당신은 어떻게 이런 걸 깨달았는지, 또 어떻게 이런 외진 데 카페를 차려가면서 사람들에게 그 메세지를 전달해주고 있는지. 그러자 직원은 코스타리카를 여행하며 황홀한 풍경들을 보면서 깨달았다고 아래와 같이 답한다.

"거기 앉아서 그토록 황홀하게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나 자신이 엄청나게 큰 존재의 극히 작은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내가 왜 여기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어요.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사실은 중요한 게 아니라면,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것은 대체 무엇일까? 내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왜 여기 있는 것일까?" 

코스타리카에 한달 동안 머무른 경험이 있는 나는 이 대목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나도 코스타리카에 있는 동안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풍경들을 보며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그저 '우리가 속해있는 조직이란 건 사실 엄청 조그만한 것인데 그게 세상의 전부인 것 마냥 사는 게 안타깝다' 정도에서 생각이 머물렀다면, 카페 주인은, 아니 카페 주인을 통해 자신의 말을 하고 있는 작가는 더 큰 깨달음을 느꼈던 것이다. 


책 속에서는 반복해서 말한다. '당신은 여기 왜 있습니까?' 그리고 이 질문을 본 순간 계속해서 질문이 맴돌 거라고 말한다. 왜 그렇게 독자들에게 주문을 걸었는지 알겠다. 작가는 독자가 이 책을 그저 한번 쑥 보고 넘기기보단, 그 질문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고 또 행동하길 바랐을 것이다. 그래야 진정 이 책을 읽은 의미가 있는 거니깐. 


"당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라, 그리고 그 이유를 충족시킬 일들을 해라."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딱 이 한줄로 정리된다. 작가가 그것을 굳이 돌려 돌려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체로 녹인 이유는, 독자들이 카페에 들어온 손님의 입장으로서 이 대화에 깊숙이 참여하길 바랐기 때문이었을거다. 나는 카페를 잘 다녀왔으니 이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행동으로 옮기는 일만 남았다. 


나의 카페 방문 리뷰를 읽으시는 여러분들도 얼른 이 카페에 찾아가 보길 바란다. 커피 맛도, 뷰도 모르지만 5점 만점에 5점 주고픈 카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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