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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Sep 20. 2017

청년시인 윤동주!『별을 스치는 바람』

이정명 장편소설(2012)

  Intro     
이제 나는 안다.
세상이 얼마나 잔인하고 인간이 얼마나 망가지기 쉬운지.
그럼에도 인간의 영혼이 얼마나 아름답게 빛날 수 있는지.
나는 당신이 내게 악마가 있느냐고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분명히 대답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나는 악마를 보았고 심지어 당신에게 보여 줄 수 있기까지 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당신이 내게 희망이 있느냐고 물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희망의 얼굴을 보았고 그것을 당신에게 보여줄 수도 있다.   

       

별을 스치는 바람     


죄수번호 645번, 일본 이름 히라누마 도주, 조선 청년 윤. 동. 주.     

그리고 그의 시(詩).     


이 소설은 시(詩)가 인간의 생각과 영혼의 자유를 표현하는 강력한 수단임을,      


특히 전쟁이라는 고난과 절망의 시대에 시(詩)는 사람을 살게 하는 원동력, 생명력이 될 수 있음을 청년시인 윤동주의 삶을 통해 아프고 절절하면서도 담담하고 강단 있게 보여주고 있다.     

별을 스치는 바람 1, 2_이정명 장편소설 (사진출처@나농쩜넷)

그 시대, 잃어버린 언어     


소설 속에서 언급했듯이, 한 인간의 언어는 그의 지문과 같아서 그의 출생과 성장, 기억과 과거를 모두 간직하고 있다. 즉, 한 나라의 언어가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한 민족의 역사를 담은 존재의 헌장이며 한 인간의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기에,  


읽는다는 것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는 것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감각이며, 한 줄의 문장을,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한 인간을, 혹은 그의 세계를 읽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한 자의 시어에서 시인의 냄새를 맡고, 한 줄의 글에서 그의 생각을 읽으며, 한 단락의 표현으로 그의 삶을 짐작’ 하듯이, 시는 영혼을 비추는 우물이기에, 우리는 어두운 영혼의 우물 속으로 두레박을 던져 진실을 길어 올리고, 시로부터 위로받고 시로부터 배우며 시를 통해 구원받는다.     


그 시대, 잃어버린 이름     


소설 속 그가 말했듯, 하나의 단어가 수많은 느낌을 담고, 한 줄의 문장이 헤아릴 수 없는 의미를 담는 것처럼 이름은 한 존재의 모든 것을 담은 상징이기에, 한 사람의 얼굴과 눈빛과 몸집과 행동뿐 아니라 그의 기억과 꿈과 그리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히라누마 도주'가 아니라 '윤동주'에게 “시를 포기하지는 마. 더 이상 너 자신을 망가뜨리지 마라”면서, 가난한 청년의 시가 오래 살아남아 더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다독이길 바라는 이의 숨겨진 마음이 드러나는 장면에서, 나 또한 툭! 하고 터져 나오는 울컥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내가 그 시에서 위안받았으니 모두가 위안받을 수 있을 것이며, 한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시라면 모든 사람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 마음에 충분히 공감하면서.    

 

소설에 대하여     


사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윤동주가 아니다. 하지만 '화자'의 눈과 입을 프리즘 삼아 우리는 윤동주와 그의 삶을 조망하고, 그의 감성이 오롯이 묻어나는 시를 통해 그가 느낀 아픔과 절망과 두려움, 자기성찰과 희망을 더 세밀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다.     


이정명 작가 특유의 감성적 필체, 흡입력 강한 스토리텔링, 손에 잡히고 눈에 그려지는 탁월한 묘사로 인해,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한순간도 다른 곳으로 눈 돌릴 수 없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낀 깊은 몰입감이 소설의 감동과 함께 뿌듯함으로 다가와, 다 읽은 책을 가슴에 품고 힘껏 한번 안아주었다.  


   감옥에서     
“탈출하고 싶었어요. 글 속으로, 수많은 잠언과 아름다운 문장들 속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가 목표였다.     


따라서 동주는, 결핍은 고통스럽지만 때로 인간의 영혼을 정화하고 고양시키며, 감옥은 살기엔 고통스러웠지만 꿈꾸기에 좋은 곳이었다고 말한다. 그곳엔 자유가 없었기에 자유를 꿈꿀 수 있었고, 희망이 사라졌기에 희망을 꿈꿀 수 있었다고.    

“찾아도 없으면 우리가 만들어야 하겠지. 희망, 행복, 꿈같은 것들과 멋진 시를 말이야. 우리가 바라는 시는 종이 위가 아니라 모든 곳에 있어. 좁은 감방 안에, 굵은 철장 속에 말이야. 나를 가둔 철창 덕분에 난 더 절실한 시를 쓸 수 있게 된 거야”     

소설 속 묘사 그대로, 그는 차가운 감방 안에서 명주실을 자아내는 누에였다. 부서진 뼈와 망가진 육신으로 뽑아낸 반짝이는 언어들. 노역의 진창 속에서 건져 낸 낱말들. 간수들의 욕지거리와 몽둥이질 속에서 길어 올린 문장들.


그는 종이 위에 펜으로 시를 쓴 게 아니라 영혼에 시를 새겼던 것이다.

               

하늘, 바람, 별, 시


모든 것이 불타버린 후에도 남아있을 마지막 불씨.

윤. 동. 주.라는 '존재의 뼈.'    


그의 어휘들은 별이 되었고 문장들은 바람이 되었다.  

   

소설 속 윤동주의 시를 읽고, 그와 그의 삶을 읽어내며,

그들처럼, 내 가슴에도 낱말과 구두점 하나하나가 물방울처럼 맺히고,

그들처럼, 바람 속에서 서로의 영혼이 같은 '결과 무늬'를 간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삭바삭한 가을바람이 부는 저녁,

오늘도 별은 뜨고

시인은 시를 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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