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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ron Jun 04. 2024

다시 시작한 ‘오래오래’ 약속

반려견  마야 & 론다 

‘나야. 날 데려가’ 하는 듯 까만 눈동자를 빛내며 날 보는 것 같았다. 8마리 강아지가 태어났다는 집을 방문했을 때 내 앞으로 아장아장 걸어와 내 얼굴을 빤히 보는 30일 된 강아지를 만났다. 처음 본 사람이라 신기했던 것인지 아니면 진짜 데려가라고 눈빛을 보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와 한참을 마주 본 그 눈빛이 맑아 그 강아지를 두 손에 안아 들고 말했다. 

“그래, 넌 나랑 살자. 행복하게 해줄게.”


그렇게 데려온 강아지 ‘마야’는 짧은 다리로 깡충깡충 뛰다가 몇 개월 만에 훌쩍 커버려 자전거로 따라가야 겨우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로 빨라졌다. 솜털 같은 까만 털로 뒤덮였던 얼굴이 건강하게 윤기 나는 갈색 털로 바뀌었고, 나이가 들어감에 점점 하얗게 변해갔다. 강아지의 시간은 사람보다 훨씬 짧았다. 빠르게 늙어버린 마야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나의 눈을 쳐다보며 “구르륵 구르륵” 힘들게 쉬던 숨을 놓았다. 사람 시간으로 15년이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이별은 각오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쓰다듬던 감촉을 느낄 수 없고, 발바닥에서 나던 둥굴레차처럼 구수한 냄새를 맡을 수 없고, 꽤 컸던 '드르릉드르릉~" 코고는 소리와 "끼웅끼웅~" 거리던 잠꼬대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온몸을 흔들며 꼬리치던 몸짓을 볼 수 없었다. 다시는 품 안에 가득 안아줄 수 없다는 것은 견딜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이 ‘먼저 죽은 반려견이 주인이 죽었을 때 마중을 나온다더라’ 라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티라는 말인데 난 늘 나를 기다리던 마야가 이제는 기다리지 말고 다시 태어나 ‘더 좋은 삶’을 살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깊은 슬픔으로 더 이상 강아지는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상한 믿음이 생겨 ‘마야의 좋은 삶 받기’에 도움이 될까 싶어 마야의 이름으로 유기견보호소에서 봉사와 후원을 시작했다. 보호소엔 버려진 강아지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집에서 키워진 강아지들은 스스로 환경을 꾸릴 수가 없기에 주인이란 사람이 온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곳 강아지들은 믿었던 주인에게 이유 없이 버림받고, 포획되어 안락사의 위기에서 벗어난 후에 보호소란 말로 포장된 공간에서 죽을 때까지 갇혀 있어야 했다. 죽어야 나갈 수 있는 곳. 그곳에서 강아지들은 갑작스러운 환경변화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갔다.     

 

그나마 예쁘고 인기가 좋은 종은 운이 좋으면 또 다른 주인을 만나 입양이 되었다. 봉사자들은 한 마리라도 더 입양을 보내기 위해 국내로 해외로 홍보하고 애썼다. 인기가 없는 잡종이나 말썽꾸러기라 찍힌 강아지들은 관심에서도 멀어지며 점점 깊은 공간에 갇혔다. 하루에 한 번 청소와 밥을 주러 오는 사람을 5분 정도 만나는 시간 외엔 수십 마리가 모여있는 곳에서 다른 강아지의 텃세와 계절이 변하는 것도 못 보며 춥거나 덥거나 그냥 견뎌야 했다.      


어느 날 제일 안쪽 컨테이너에 청소와 밥을 주러 들어간 날이다. 사람이 들어가면 자기를 보아달라 간식을 달라 폴짝폴짝 매달리는 강아지들 뒤로 청소도구 뒤에 바짝 웅크리고 있는 강아지가 눈에 띄었다. 보호소에 들어왔을 때 땅을 파고 철망을 기어 올라가 탈출을 시도하다가 여러 번 잡혀 제일 안쪽 컨테이너에 갇힌 지 일 년이 넘은 잡종 강아지였다.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마르고 털이 까슬까슬했는데 눈곱이 덕지덕지 달린 그 강아지 눈이 ‘난 지쳤어. 그만할래.’ 하고 말하는 듯했다. 


일 년이 훨씬 지나도록 보호소에서 수백수천 마리의 불쌍한 강아지를 보면서도 차갑게 다짐하고 눈을 감았다. 정이 생기면 안될것만 같았다. 하지만 밥과 물을 끊고 구석으로 들어간 그 강아지의 눈빛이 얼마 전 마야를 보낸 후의 내 눈빛 같았다. ‘너도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구나.’ 간식을 줘도 슬쩍 올려다볼 뿐 고개를 돌리는 그 강아지에게 왜인지 마음속이 술렁거렸다.


데려온다면 또 겪어야 할 그 과정에 겁이 났다. 그럼에도 아슬아슬한 그 눈빛이 잊혀지지 않았다. 강아지의 시간이 나의 고민 속에 계속 흘렀다. 그 강아지에게도 좋은 삶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나의 바람이 결국 용기를 내어 우선 임보 신청서를 냈다.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던 심사가 통과되었다는 소식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오랜 고민이 무색할 만큼 재빠르게 집안 가구 배치를 바꾸고, 강아지 방석을 다시 사고, 맛있다는 사료도 준비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간 보호소 앞에서 그 강아지를 마주했다. 얼마 만에 바깥에 나왔는지 겁이 잔뜩 들었음에도 나의 미소를 보았는지 설마설마 반짝이는 눈빛을 보내는 그 강아지를 두 손으로 안아 들며 말했다.

“자! 나랑 집에 가자! 내가 너 지켜줄게”     


새 세상을 만나 1초도 가만히 있지 않고 촐랑거리는 나의 두 번째 강아지의 이름은 잘~논다의 ‘론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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