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같이 일했던 동료들과 조만간 모임을 가지기로 합니다. 제가 집에서 만든 한국 음식 사진을 종종 인터넷으로 올리는 것을 보기도 하고, 가끔 넉넉하게 제가 전이나 만두를 만들어오면 일터에서 나눠 먹었던 터라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먹고 싶다는 동료들은 만장일치로 다음에 만나면 한국음식점에 가기로 결정합니다.
유자마카롱: 한국음식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동료 A :나는 그 생일국 빼면 다 괜찮을 것 같아. 다 좋아 매운 것도 좋고. 볶음국수 같은 거(잡채) 도 좋고.
동료 B: 나도 그 생일에 먹는다는 한국 수프만 아니면 괜찮을 것 같아.
동료 C : 난, 한국 치킨 먹고 싶어! 맛있었어! 진짜!
호주에서 다양한 나라 사람들과 만나다 보니, 미역국이 생각보다 외국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어려운 음식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미역의 식감이나 참기름 냄새, 그리고 외형적으로 색이 예쁜 음식이 아니기에 처음 보자마자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닙니다. 심지어 저는 예전에 몇몇 친구들 중에서는 김 냄새도 낯설어하는 경우도 보았던 터라, 당연히 쉽게 손이 가는 음식은 아니겠거니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낯선 외국음식은 여전히 많으니까요.
미역국
결국, 모두의 의견을 모아 김치전과 비빔밥, 한국식 치킨을 먹자고 메뉴를 정한 뒤 대화창을 닫았는데, 갑자기 오랜만에 미역국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 급식에서 먹었던 미역이 잘게 둥둥 떠다니는 밍밍한 미역국 말고, 엄마가 커다란 빨간 냄비에 가득 끓였던 대합 미역국부터, 냉동실에 둔 북어를 한 움큼 가득 넉넉하게 넣어 뒤끝이 시원한 북어 미역국, 끓일수록 진득한 맛이 일품인 육수의 들깨 미역국, 그리고 제주여행에서 먹은 고소한 성게 미역국 ,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소고기 국물이 진하게 우러나와 입가를 잔잔히 맴도는 소고기 미역국까지. 온갖 상상을 하다가, 쌀을 불려두고 장바구니를 들고 소고기를 사러 나갔다 옵니다.
얼마 뒤 집으로 돌아와, 밥물을 앉히고 마른미역의 봉지를 윗부분을 가위로 쓱 잘라, 미역을 조심스레 꺼내 손으로 살짝 눌러주면서 부스러기가 너무 나오지 않게 미역을 쪼개 줍니다. 물을 미역 위에 부어 미역을 잘 불려준 뒤, 마늘을 적당히 다져서 준비해주고, 소고기를 살짝 도톰하지만 너무 두껍지 않게 고기 결을 보아가며 한입 크기로 넉넉하게 잘라둡니다. 기름 부분은 따로 모아서 팬에 살짝 볶아놓은 뒤, 냉동실에 두었다가 다음에 다른 음식을 할 때 육수를 낼 때 또 쓸 수 있도록 준비해줍니다. 다진 마늘과 소금, 후추, 맛술을 소고기에 살짝 뿌려 손으로 조물조물 무치듯이 밑간을 해서 냉장고에 30분 정도 둡니다.
그동안 잘 불려진 미역은 먹기 좋은 크기로 넉넉하게 가위로 몇 번 잘라준 뒤, 두어 번 더 깨끗하게 씻어냅니다. 이제 냄비 바닥을 적당히 달군 뒤, 참기름을 넉넉하게 부어주고 다진 마늘을 잘 노릇하게 볶아주며 기름을 우려냅니다. 마늘과 참기름이 섞인 고소한 냄새가 나면, 밑간을 해 둔 국거리용 고기를 넣고 자박자박하게 담긴 마늘 기름에 잘 지지듯이 노릇노릇 소고기의 육즙이 가득 나오도록 볶아줍니다. 냉동실에 육수용 무가 남은 게 있으면 더 좋겠지만, 오늘은 생략합니다.
어느 정도 고기의 겉면이 잘 익으면, 잘 씻은 미역을 넣은 뒤, 미역의 색이 검은빛에서 바다에서 보는 미역 색 같은 초록, 푸른빛이 올라올 정도로만 볶아 준 뒤 , 물이나 육수를 부어주고 천천히 끓여줍니다. 제법 황금빛인 듯, 바다의 초록빛인듯한 미역국 색에 기름이 자잘하지만 한 방울 한 방울에 무게가 실린 듯이 보글보글 가볍지만은 않은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참치액과 간장으로 번갈아 간을 하고 마무리를 짓습니다.
오! 미역국입니다!
바로 먹어도 맛있지만, 두어 시간 정도 식혔다가 또 한소끔 더 끓여서 한국자씩 넉넉하게 미역과 소고기가 큼직하게 보이도록 국그릇에 담아봅니다. 퇴근하고 좀 전에 차를 대고 집안으로 들어온 고랑이는 킁킁거리더니 식탁에 있는 미역국을 보며 환하게 웃습니다.
"오! 미역국입니다! "
손을 씻고 식탁 앞에 앉은 고랑이는 미역국 국물 한 술을 뜨더니 '맛있다'를 연발합니다. 돼지국밥, 감자탕, 청국장에 묵은지 김치찜 까지 못 먹는 게 없는 한국음식 만렙 고랑이에게도 연애 초기에 사실 이 음식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음식이었는데, 이제는 가끔 이 미역국이 먹고 싶다는 요청을 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새, 미역국 세 그릇째를 끝낸 고랑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미역국은 사랑이 없으면 만들 수 없는 음식 같아. 왜 한국 엄마들이 미역국을 생일날 끓여주는지 알 것 같아.
근데 생일이 아니어도 늘 맛있다! "
그렇죠. 생일이 아니어도, 언제 먹어도 맛있는 게 바로 미역국 이겠구나 생각합니다.
저도 이젠 부모가 되어 아이에게 미역국을 끓여주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생일이 아니어도 늘 미역국은 먹고 싶은 마음은,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이 그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