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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마카롱 May 25. 2021

안녕, 새콤달콤 레몬!

"유자 마카롱아, 잘 지내니? 올해도 레몬을 주고 싶은데, 고랑이랑 같이 우리 집에 들를 수 있니?
PS. 절대 혼자 오면 안 돼! 레몬이 무척 많아서 너 혼자는 힘들 거야" -A가-

올해도 이 문자가 도착한 것을 보면 벌써 가을의 끝자락에, 한해의 절반 가까이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요즘 집에 들어올 때, 옆집 할머니네 오렌지와 라임이 무럭무럭 자라면서 오렌지가 제법 햇살이 스며들 듯 색을 뿜어내는 모습에 가을이 잘 지나가고 있구나 싶었는데, '벌써 레몬이 도착할 때라니'. A의 문자에 벌써부터 행복한 고민과 입에서 침이 고이기 시작합니다.


바로 A가 직접 정원에서 정성껏 키운 레몬은 제가 태어나서 맛본 레몬들 중에 가장 으뜸이며 레몬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꿨거든요.

안녕, 레몬

 

제가 외출한 사이, 쉬는 날이었던 고랑이가 A네 집에 들러 두 손 가득 레몬을 지고 옵니다.

"자기야, A네 집에 갔더니 레몬나무가 불쌍해 보일 정도로 레몬이 엄청나게 열렸어."


고랑이에게 A의 안부를 물으며 저는 싱크대를 깨끗이 닦은 뒤, 물을 넉넉하게 받으며 베이킹소다를 뜨거운 물에 살짝 풀어서 레몬들이 수영을 시작한 틈으로 부어줍니다. 10분 정도 레몬들이 베이킹소다 수영장에서 여유를 즐기도록 두어봅니다. 집에서 자연적으로 키운 레몬이어서, 늘 조금 못생기고 흙투성이인 레몬들도 있지만 야채 전용 칫솔로 정성껏 하나씩 부드럽게 꼭지 부분부터 잘 닦아줍니다.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서 닦아내고, 타올로 물기를 제거하니 제법 레몬들이 하나하나 다 예뻐 보이는 것 같습니다.


반짝반짝하니 밝은 색의 레몬들을 보니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 얼마 전 모과차를 끓여먹고 텅 빈 식탁의 과일 그릇에 목욕을 마친 레몬들을 하나씩 채워봅니다. 아무리 바빠도 계절이 가는지도 모르고 살고 싶지는 않아서 곁을 준 과일 그릇에 레몬빛깔 계절이 또 차오릅니다. 얼마 전 한인마트에서 사 온 대봉이 홀로 외로이 자리를 지켰던 자리에 새로운 밝고 따뜻한 색의 친구들을 채워줍니다. 이렇게 수북하게 레몬을 채우고도 한 꾸러미가 더 남아서, 주방에 있는 나무 그릇에도 수북하게 올려줍니다. 

첫 번째 레몬은 조금 말랑하면서도 개나리색과 망고 색에 가까운 동그란 레몬을 집어 들어봅니다.

도마에 레몬을 올려두고, 살짝 누르면서 몇 번을 공 굴렸다가 칼로 반을 가르니 레몬 냄새가 터지듯이 번집니다. 저는 찻물을 받아서 레몬 반쪽을 꾹 손으로 눌러서 꿀을 뿌려 제 컵을 준비하고, 고랑이는 얼음 몇 개를 동동 띄워서 레몬과 꿀을 잘 섞어서 마실 준비를 합니다. 


정말 얇은 껍질에 달큼하기 까지 한 노란빛 향, 그리고 꽉 차 있는 레몬즙까지. 정말 그리웠던 레몬이 다시 왔어요. 함께 레몬차를 마시며, 몇 달 전, 장을 보러 갔다가 말도 안 되게 비싸고 껍질이 두껍고 향마저도 약했던 레몬에 저희 두 사람 모두 실망했던 이야기를 해봅니다. 얼마나 감사하게도 올해도 우리 두 사람이 이 레몬을 즐길 수 있는지, 그리고 이 많은 레몬으로 뭘 해먹을지 서로 말해봅니다.

"레몬과 꿀을 듬뿍 넣은 마들렌도 좋고, 싸게 파는 우유가 있으면 이 레몬으로 리코타 치즈도 만들고,

작년에 네가 좋아했던 레몬차도 만들고, 훈제연어 샐러드에 상콤하게 드레싱을 만들고, 상콤하게 입가심할만한 레몬 타르트도 좋을 것 같아. 얼그레이 스콘 반죽을 할 때 레몬 제스트를 넣어도 좋겠고, 작년에 받은 리몬첼로 (이탈리아 레몬 리큐르)에 이 레몬즙을 더해서 칵테일도 만들까? 아, 겉이 바삭하고 레몬이 녹아드는 듯한 레몬 아마레티도 생각도 못했던 레몬 피클도 진짜 맛있었어..."


작년과 똑같이, 저희 둘은 같은 식탁 자리에 앉아서 여전히 끝이 없는 '레몬 요리' 아이디어에 아마도 이 많은 레몬마저도 모자라지 않을까 걱정을 해봅니다. 최고의 레몬이 온 기념으로, 고랑이는 오랜만에 구운 레몬을 먹자며 집에 있던 돼지고기와 야채, 그리고 신선한 레몬을 정성껏 손질해서 오븐에 오랜 시간 구워 저녁을 먹어봅니다. 


처음에는 레몬을 구워 먹는다는 게 신기했는데, 짭조름한 소금 간을 하여 오븐에 향이 가득 퍼진 맛있는 레몬은 지방이 두툼한 돼지고기나 촉촉한 연어와 먹으니 느끼함이 전혀 없이 입이 상쾌해지면서, 달큰함 까지 더해지더라고요. 아, 생각난 김에 전에 이탈리아 친구에게 배운 레몬 파스타도 오랜만에 해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입에 침이 고이다 못해, 머리끝까지 레몬을 느끼는 듯한 레몬파이도 곁들이면 진짜 완벽한 레몬 즐기기 리스트를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폭신한 머랭도 살짝 그을려서 구름처럼 올려도 좋겠고, 플레이팅을 할 때 설탕에 잘 재운 레몬과, 라즈베리, 딸기, 작은 레몬밤 등으로 캔버스에 덧칠하듯 살짝 색을 더해줘도 예쁘겠다... 하며 저는 머릿속으로 또 일을 하고 맙니다.


맛있게 한 상을 차려먹고, 차를 마시며 식탁에 올려진 과일 그릇을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아마 이 그릇들이 비워갈 때쯤이면 정말 한겨울이겠구나...' 하는 생각과, 그래도 요 몇 해는 계절 바뀌는 것은 보고 살고 있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구 온난화로 요즘에는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다고 하지만, 제철에 제철과일을 보고, 제철음식을 먹고사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복인지 새삼 깨달으며, 투덜거렸던 며칠의 마음을 제 앞에 담긴 레몬빛처럼 환하게 칠해봅니다. 아마 제가 이 예쁜 레몬들로 만들어먹는 음식들과 글을 전하는 동안, 독자님들은 아마 시원하고 상큼한 여름의 길목에 한 걸음 더 즐겁게 다가가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이 레몬과 함께 보내봅니다.


**조금씩, 브런치에서 글로 만났던 음식이나 호주의 자연풍경을 영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예쁘게 봐주시면 좋겠어요 :)

https://www.youtube.com/channel/UCXSVLGgssmwMedjmwZHCt6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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