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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윤씨 Jun 19. 2020

싸우지 않고 안 해본 일을 함께 해보는 게 가능할까?

인생서점 나비루의 탄생 과정 이야기(4)


함께 꾸리는 일의 수고와 즐거움(2)






여러모로 말리고 싶다. 누군가가 다른 이들과 함께 공간을 꾸미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고독한 바닥 청소. 그 누구도 말걸어 주지 않는다. 오로지 작업자와 작업대상만 있을 뿐이다. 




이 이야기의 부제를 "함께 꾸리는 일의 수고와 즐거움"이라고 썼지만, 반쯤은 구라다. 일단 말이 안 된다. 수고와 즐거움이라는 단어가 '와'라는 접속사를 가운데 두고 서로 저렇게 친한 적 붙어 있는 것도 그렇고, 함께 무언가를 꾸리는 일이 즐거움을 동반한다는 뉘앙스도 약간은 사기치는 느낌이다.



십 년쯤 전에 있었던 일이 문뜩 생각난다. 아내랑 나는 신혼집을 직접 꾸미고 있었다. 세들어 사는 집이니 많은 걸 손댈 수는 없었다. 방문하고 베란다 천정에 페인트 칠을 새로 하는 수고로움 정도만 감당하기로 했다.



나는 혈액형이 과학적이라고 믿는 사람이 절대로 아니다. 그래도 나는 O형이고 아내는 A형이라 서로가 너무 잘맞는다고 연애때부터 지금까지 나 스스로 그렇게 믿고(믿기로 하고?) 주변에도 자주 이야기 한다.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 같은 걸 의도하는 걸까. 아무튼 나랑 아내는 왠만하면 싸울 일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은 분위기가 험악했다. 일단 나는 이런 일에는 똥손이다. 성격도 좋은게 좋은거지 이데올로기를 추구하는 편이다. 그런 내가 깔끔하고 정확하며 섬세함을 추구하는 아내가 원하는데로 페인트 칠을 할리가 없지 않은가. 아내는 계속 지적을 했고, 나는 계속 툴툴 거렸다. 잔잔한 잽이라도 쌓이면 크게 적중한 어퍼컷 보다 데미지가 훨씬 크다. 아침에 시작한 노동이 해가 질 즈음에도 끝나지 않자 우리는 대판 싸웠다.



그때 알았다. 아, 페인트 칠 같은 거는 정말 위험한 일이구나. 함부로 하는 거 아니구나. 특히 관계를 깨고 싶지 않은 사람하고는.








우리 서점을 함께 시작하는 7명의 참여원들을  '나루'라고 부르기로 했다. 서점을 찾아오는 이들은 '나비'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런 낭만적인 호칭에 해서는 다른 글 '나비루를 소개합니다'(https://brunch.co.kr/@nabinaru/14)를 참조하기를.



아무튼 나루는 7명인데 모두가 함께, 서로서로, 힘을 합하여, 공간을 꾸미기로 했다. 우와 멋진 걸! 더군다나 직접, 업자를 부르지 않고, 우리 힘으로만, 말이다. 우와 대단한데!



이렇게 우리는 여전히 동화적인 순수한 마음과 철딱서니 없음 사이, 그 어딘가에 자리잡은 길을 걷고 있었다. 이제 마음에 일어난 일을 헤아리기 전에 공간에 일어난 일을 순서대로 정리해보자. 생각이 잘 나려나.







공간을 꾸밀 때 뭐 부터 했더라...

아,  천정을 먼저 뜯었었다.


: 첫 작업은 천정의 석고보드를 제거하는 일이었다. 기존 천정이 넘 낮아보여서 조금이라도 시원한 느낌을 주고 싶어서 이 작업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 중 누구도 이런일을 해보지 않았다. 사람부를까 했더니 백만원에서 백오십은 달란다. 고민 좀 하다가 그 돈으로 우리끼리 맛있는거 사먹기로 결정. 일단 한 번 해보자 정신으로 천정에 석고보드를 한 장 뜯어 보았다.






앗, 잠깐! 이런 식으로는 이야기가 끝이 나지 않을 듯 하다. 일단 대략적인 것만 적어놓고 자세한 건 나중에 적자.


공간 꾸미는 일을 대략적인 순서만 보면 이러하다.


천정 석고보드 제거, 천정 쇠프레임 철거, 벽지제거, 초배지 제거, 창고 나무선반 프레임 철거, 페인트 칠, 바닥청소, 전기공사, 천정노출배관 가림막 설치, 조명설치, 가구구입, 오디오 설치, 냉장고 구입, 화장실 문 제작, 화장실 수전 교체, 선반설치, 싱크대 구입, 주방용 수도꼭지 설치, 블라인드 설치, 책장및 책 구입 등등


아, 지금 대충 목록을 정리한 것 만으로도 정말 엄청나다. 나루 7명 중에 저 중에 하나라도 제대로 해본 사람이 없다. 물건을 구입하는 행위 말고는 익숙한 것이 전혀 없었다. 그마저도 물건 하나하나 살 때마다 우리 공간에 어울리는지 다같이 회의하고 결정했기에 마냥 쉬운일은 아니었다.


긴장이 없지 않았다. 의자하나 고른다고 수백개의 카톡메시지를 주고받고, 며칠씩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하지만 카톡에서 혹은, 직접 만나서 의견을 잘 주고 받아도 어려운 건 어려운 거다. 언제나 균열은 거창한 문제가 아닌 사소한 것들에서 시작된다.


나는 노란색 의자가 좋은데 다른 누군가는 붉은 색을 좋다고 하면? 나는 우리 서점을 드러내는 색이 진한 파랑색이길 바라는데 다른 이들은 화사한 분홍색이기를 바란다면? 페인트 칠 같이 힘든 작업을 할 때 오기로 한 사람이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못 온다면? 시작할 때는 너무 좋았는데 이 일 신경쓰느라 감기몸살도 걸리고 갑자기 모든 게 귀찮아졌다면?(지금 이 글을 쓰는 내가 그렇다. 몇 달 째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내가 왜 이런 걸 맡았지? 제기랄!)








11월 중순부터 인테리어 공사(라고 하기엔 조촐하지만)가 들어갔다. 2월쯤 마무리 됐으니, 한창 추울 때 작업을 한 셈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읽으시는 분들은 환경과 조건이 좋지 않았다는 걸 내가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만 알아주기를 바란다. 한 겨울에, 조도가 형편없는 전구 한 개 켜놓고 새벽까지 바닥을 벅벅 문지르면서 청소하고 있으면, 내가 지금 왜 이 일을 하고 있지, 같이 하기로 한 그 놈은 왜 안오는 거야, 이런 생각이 마구마구 쏟아 오른다. 괜히 했나,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추운 겨울 날의 작업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우리의 도요토미(아니 우리끼리는 이순신이라고 부르기로 한) 난로.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만 그런가? 집이 수도권이라 오는데만 한시간 반이 넘게 걸리는 친구, 연말이라 회사일이 미친듯이 바쁠텐데 저녁마다 와서 청소하는 친구, 애가 다섯이라 어디 움직이기가 거의 불가능한데 어떻게 하든 짬을 내서 잠깐이라도 돕고 가는 친구, 재수도 좋게(?) 거의 땅끝에 위치한 공기좋고, 인심좋고, 음식좋은 지방 도시로 발령받아서 KTX를 타도 오는 데만 3-4시간 걸리는 친구 등등. 생각해 보면 모두가 적당히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응? 오타 아니냐고? 아니다. 나는 지금 '적당히'와 '최선'을 강조하는 중이다. 




작업할 때 달아 놓았던 침침한 등. 아직도 나비루에 달려있다. 귀찮아서 적당히 넘어가련다.  




중간에 별일이 많았지만 아직까지 우리 모임이 깨지지 않은 이유는 '적당히 최선'을 다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나온 경영서적 같은 방식으로 이런 식의 조언을 하거나 교훈을 만드는 걸 굉장히 싫어하지만, 나는 이 일을 통해 여럿이 함께 성공적으로 어떤 일을 해내려면 반드시 익혀야 하는 몇가지를 배우게 되었다. 





'적당히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이란 어떤 것일까? 


1. 너무 대충은 곤란하다. 져야만 하는 짐을 다른 이에게 떠넘기게 되기 때문이다. 


2. 너무 목숨거는 것도 위험하다. 그 일 때문에 못 쫓아오는 사람을 비난하거나 정죄하기 쉽기 때문이다.


3. 상대에게는 대충 적당히 하라고 하자. 그리고 나는 나름 최선을 다하자.


4. 해보는데까지 하다가 안되면 그만이지 뭐, 이런 정신을 가지자. 


5.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하는 사람이 함께 이루려하는 일보다 우선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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