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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가루의 정체는 뭘까요? 마셔봐야 압니다.

세컨하우스, 5도2촌, 러스틱라이프의 비애.

보통 잔디가 균일한 높이로 자라는 줄 알지만, 실제로 보면 저마다 키가 달라 아주 들쑥날쑥 합니다. 그래서 잔디의 생육기인 5월부터 10월 초까지 주기적으로 깎아 주지 않으면 미친X 머리처럼 엄청 지저분해 보이지요. 


집이 아무리 멀쩡해도 잔디가 그렇게 산발이 되도록 놔두면 공포영화에 나오는 폐허처럼 보여서 2주에 한 번, 늦어도 3주에 한 번 꼴로 꼭 이발을 해줘야 해요. 

제 경우 1년에 보통 8번은 잔디 깎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근데 충격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집 잔디밭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지뢰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죠.

동네 개들이 큰 똥, 작은 똥, 노란 똥, 하얀 똥, 똥이란 똥은 다 싸고 가는데, 사람이 주말에만 보이다 보니 나머지 5일은 자기들의 변소로 삼은 것입니다.

아무튼, 개나 지네나 사람이 없으면 모두 자기들 구역이란 거죠.     


“인간들아! 여긴 내가 더 오래 머물고 있으니 모두 내 구역이니라~”     


똥의 종류만 봐도 한두 놈들이 아니에요. 덩치가 산만한 녀석들은 지들 덩치 믿고 까부는지 사람이 와도 태연히 똥을 싸고 사라집니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죠.      

그래서 매번 잔디 깎는 작업을 할 때면, 똥 치우는 작업을 먼저 하고 있는데, 정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번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똥이 나타납니다.


뭐, 발견하지 못한 똥은 그대로 잔디 깎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갈리는 거죠.     


그러면 두 가지 사태가 벌어집니다.


아직 덜 마른 몽실몽실한 똥을 밀어버리면 살짝 무거운 느낌이 들면서 갑자기 개똥 냄새가 주위에 진동을 하는데,     


“이놈의 개XX들이 시골인데 채식을 할 것이지, 육식을 얼마나 했길래 이리 냄새가 지독해?”     


이런 고약한 냄새를 맡자마자 더 기분이 나쁜 것은 소중한 제 잔디 깎기 속은 지금 엄청난 똥 테러를 당했다는 점입니다. 

끈끈한 똥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는 생각을 하면 비눗물로 씻어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근데 더 심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미 바싹 마른 똥을 밀어 버릴 때입니다.


이렇게 바싹 마른 똥을 잔디 깎기로 밀어버리면, 여지없이 하얀 가루가 확 올라오는데, 문제는 이런 하얀 가루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매번 코로 들이마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똥 가루인지 아닌지는 마셔보면 압니다. 


무언가 살면서 처음 맡아보는 느끼한 향과 개똥 특유의 비릿한 향이 나는데, 코 안의 점막에 가루가 부딪쳐 이질적인 촉감마저 나죠. 

그러면 제가 아주 킁킁 대며 경기를 일으킵니다.

어떻게든 코로 다시 빼 내려고 계속 킁킁 대는 거죠. 

입으로 들어갔으면 차라리 침을 뱉으면 되지만 코로 들어가면 정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개누무스끼들이! 아오~! 정말 아주 보이기만 하면 몽둥이로 패버릴 거야!”     


하지만 매번 화만 내지 방법이 딱히 있을 리가 없죠. 내버려 두는 수밖에...     




근데 이렇게 몇 년 똥을 치우고, 냄새를 맡고, 가루를 마시다가 어느 날 똥을 치우려고 보니까 웬일로 큰 똥이 보이지 않네요?     


“어라? 그 덩치 큰 백구가 똥을 왜 싸지 않았지?”     


이후에도 백구 특유의 큰 똥은 보이지가 않더군요. 뭔가 슬픈 예감이 듭니다.


‘그동안 똥 뒷바라지 하느라 나름 정이 들었는데... 에휴...’


한두 해가 아닌 여러 해를 이렇게 밀당을 하다 보니 이 녀석들에게도 정이 들었나 봅니다.

‘그녀석에게 좀 더 잘해줄 걸...’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다른 녀석들이 있기에 똥은 지금도 늘 있습니다. 아마 놈들이 자손 대대로 번성하는 한, 제 평생 계속해서 똥 가루를 들이키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뭐, 좋은 점도 있습니다. 

녀석들이 똥을 싼 자리는 잔디가 웃자라더군요. 잔디는 똥을 반기나 봅니다.     

네 맞습니다. 우리 집 잔디밭이 유난히 들쑥날쑥 했던 이유는 바로 동네 개들의 변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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