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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짓(유튜브)을 4년째 할 수 있었던 비결

유튜브 천태만상 제 7화 : 유튜브 하기 싫어 미칠 때 쓰는 방법

유튜버들에겐 영상제작이 아무리 자기만족, 취미생활이라 스스로 위안을 해도, 결국 구독자 수가 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회의감이 들게 마련이다.


내가 이 짓을 계속 해야하나?


하는 현실 자각타임, 현타가 정말 한번 오기 시작하면 먹고 쌀 때 빼고 계속 밀려온다.

초반의 의욕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억지로 영상을 찍어 올리다보니 영상도 대충대충, 만사가 대충대충일 때가 있다.       

그래서 이렇게 성장이 더딜 때마다 유튜버들에겐 영상을 만들 동인(driving force)이 필요하다.

나에게도 그러한 동인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공모전"이었다.      


때는 2017년 7월, 어쩌다 우연히 던진 통발 영상 하나가 빵 터져 구독자 100여명을 끌어 모으고,

전략적으로 2차, 3차 통발 영상을 만들었더니 드디어 반년만에 구독자 수가 300이 넘어섰다.      

그리고 어디선가 영상 제작지원 공모전 소식이 들렸다.

제작 지원금은 무려 500만원.

무조건 최소 주 1회 업로드, 총 20회 이상 업로드가 의무이며, 회당 50만원을 지원해 주는 공모전이었다.

“땡큐우~” 하고 정성스레 지원을 했고 “어메이징~” 하며 합격했다.

(축하 파티로 이미 100만원은 쓰고 시작했다.)      


사실 이 때만 해도 지원자가 거의 없어 신청하면 무조건 합격하는 시기였다.


암튼, 내가 지금까지 4년째 이 짓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이 공모전 때문이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모전의 "지원금"이 아니라 "강제성" 때문이었다.     


1주일에 1개씩 의무적으로 올려야 하는데 평일엔 일하고 주말에만 활동하는 나에게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지원금은 쓰지 않으면 무조건 반납이다.

최소 주 1회 무조건 올려야 하고, 무조건 돈을 써야 한다.

돈을 쓰지 않으면 반납해야 한다.

게다가, 교육도 참여해야한다. 출석률이 점수에 포함된다.     

이 시기 정말 힘들었다. 말이 20회지, 매주 주어지는 예산을 쓰며 늦지 않게 영상을 만드는 일은 고역이었다.

낙오란 단어는 내 인생에 없기에 어떻게든 빠지지 않고 일정에 맞춰 영상을 올렸다.


하지만 고진감래라.

그전까지 구독자 수가 늘지 않아 슬럼프에 빠졌었는데, 영상제작 의무를 빠지지 않고 준수하다보니 슬럼프가 언제 왔지 하며 지나갔다.


내게 슬럼프가 왔었나?


같은 공모전 합격자들끼리 네트워킹하는 자리도 참석하고, 교육도 참석하다보면 채널 운영에 대한 인사이트도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4개월 동안 20개가 넘는 영상을 제작하고 나니, (예산을 다 쓰려다보니 25갠가... 만들어 올렸다.) 나도 모르게 채널은 성장해 있었고, 구독자 수도 어마무시 하게 늘어났다.     

이때 이런 강제성이 없었다면 대충하다가 어영부영 말았을 것이다.


이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지원 자격이 되는 공모전만 보이면 꾸준히 지원하였고, 운 좋게 매년 합격하여 지금 글을 쓰는 이 시간도 공모전에 의무 제출할 영상에 대한 고민을 머릿속 한 켠에 무겁게 지고 있다.

찾아보면 영상 제작비를 지원해주는 공모전이 참 많다. 오히려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일단 보이면 신청해야한다. (그런데 이젠 구독자 수가 조금 늘었다고 신청 자격이 안되는 공모전이 많아졌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심신이 지쳐 만사 귀찮은 크리에이터가 있다면, 어서 강제로 목줄을 채워 끌고가줄 공모전을 찾길 바란다.

(참고로 대부분의 공모전은 상반기에 개최된다. 수 개월짜리 프로젝트라 보통 상반기에 뽑아서 연말까지 끌고 가기 때문이다.)

 

공모전에 대한 후일담 하나를 들춰 보자면,

첫 번째 공모전 숙제에 허덕이던 2017년 그해 11월 첫째 주인가... 그랬다.

어느덧 기한은 막바지에 이르렀고, 아직 의무적으로 올려야 하는 영상이 마지막 1개가 남았을 때였다.

이미 날씨는 쌀쌀해졌고 전원생활 컨텐츠도 단물 쪽쪽 빼먹어서 딱히 할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주 빠지지 않고 편도 두 시간 거리의 서천(바닷가 전원주택)에 가다 보니 더 이상 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냥 만사가 너무 귀찮았다.     

그때 문득 들었던 생각이, 그냥 서천 가지 말고 지금 여기 집에서 찍자~! 였다.

X파일 시리즈 탄생의 순간이었다.

크로마키 천을 사고 자료를 모아 스크립트를 짰다.


X파일 시리즈의 첫 번째 주제는, 건축비의 진실!


국내 최초, 건축주가 까발리는 건축비의 진실을 다루었다.(당시는 이런 컨텐츠가 처음이었다.)

하루종일 스크립트를 다듬고 영상을 찍었다.

여기서 비밀 한 가지 공개하자면, 당시 영상에서 선글라스를 낀 이유는 스크립트를 읽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은 내가 대본 없이 아무것도 안 보고 그냥 말하는 줄 알 테지만, 사실 내 앞에는 노트북이 있었고 내 오른손은 화면 아래로 내려 마우스를 조종하고 있었다.

그리고 눈동자의 움직임을 가리기 위해 선글라스를 꼈다.

(댓글로 정말 많은 분들이 말을 참 잘 한다고 칭찬해 주어서 으쓱한 기분에 도취되어 밝히지 못했다. 이 자리를 빌려 밝히니 부디 너그러운 양해를.)      


결과적으로 영상을 올리고 한 일주일간 잠을 못 잤다.     

핸드폰으로 댓글을 확인하기가 너무 무서웠고 긴장되었다.

전국의 건축업자들에게 욕이란 욕은 다 먹은 듯.(누가 악플도 관심이래? 신경쇠약에 걸려 밥보다 술을 더 많이 마셨다.)      


엄청난 악플에 시달렸지만 폭발적인 성장을 맛보았다.


불과 열흘 만에 구독자 수는 1천에서 1만 가까이 상승했고 공모전이 끝나 이어서 전략적으로 만든 2차, 3차, X파일 시리즈는 그 겨울 내 용돈을 배로 늘려 주었다. (사실 지금도 이때 만든 영상으로 들어오는 광고비로 연명하고 있다.)      

그렇게 되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스파르타식 공모전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발악적으로 만든 영상이 정말 운 좋게 "빵" 터진 것이었다.

그러니 다들 스파르타식으로 빡씨게 굴리는 공모전을 잘 찾아보길.


이 글을 보고 계신 공모전 담당자님! 스파르타~~~! 빡씨게 굴려주세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하다보면 어느 날 뭐 하나 걸리는 날이 있다.

하다보면 소 뒷걸음치다 쥐를 잡는 법.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평일엔 도시에서 일하고, 주말엔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합니다.
유튜브 바닷가 전원주택 채널을 운영중입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712zdYmemTs4XPa4fRan9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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