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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가 다른 음악과 비교해 특별한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즉흥성’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재즈를 듣는 것이 어렵다면, 혹은 그게 아니라 재즈를 듣는 것이 너무나 즐겁다 해도 이는 모두 재즈의 즉흥성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는 음악을 들을 때, 흔히 ‘예측해서 듣기’를 합니다. 이는 비단 음악을 들을 때만 나타나는 현상을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얻은 모든 정보들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마치 잘 정돈된 서랍 속처럼 분류가 되어 있습니다.
그 분류체계를 인지심리학에서는 스키마 혹은 쉐마(schema)라고 하는데, 우리의 인지가 마지 하나의 도식처럼 되어있어, 새로운 자극이 들어오면 이미 존재하는 도식에 의해 자동적으로 해석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컴퓨터가 어떤 정보를 처리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가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인상이나 옷차림에 따라 그 사람을 판단하려 하는 선입견 혹은 고정관념 또한 이런 스키마의 일종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스키마를 통해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안정감을 형성합니다.
우리는 낯선 자극을 맞닥뜨리면 불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밤에 자려고 누워 있는데 누군가가 문을 세게 두드립니다. 귀가할 가족도 없는데 말이지요. 그러면 일단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누구지? 도둑인가?
인터폰을 들어 카메라로 현관을 봤으나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불안감은 더 고조됩니다. 이후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두 가지입니다.
계속 불안에 떨며 밤을 새든지, 아니면 이전의 경험을 돌이키며 아마도 술에 취한 윗집 아저씨가 집을 잘못 찾아왔을 거야! 라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드는 것입니다.
전자는 내가 가진 도식으로 현재 나에게 일어난 낯선 자극을 해석하지 못해 불안감이 해소되지 못한 상황이고, 후자는 적절히 해석을 하여 안정감을 찾은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스키마가 음악을 듣는데 있어서도 작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처음 들어보는 노래인데도 몇 소절 듣다보면 따라 부를 수 있게 되는 노래가 있습니다. 동요나 민요, 찬송가처럼 비교적 선율이 단순한 노래들이 그런 경우가 많은데요, 이는 비슷한 선율진행을 이미 경험해봤기 때문에 현재 부르고 있는 음 다음에 어떤 음이 나올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많이 들어서 익숙한 곡을 들을 때, 우리는 어떤 선율이, 혹은 어떤 악기가 나올 것인지를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가 있습니다. 긴장하거나 과도하게 집중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재즈는 어떨까요?
재즈를 제대로 감상하는 것은 한 마디로 ‘불편’한 일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재즈의 즉흥연주는 결코 우리가 ‘알던 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주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서양 고전음악, 즉 클래식 음악 연주자들의 목표는 악보를 단서로 하여 작곡가의 음악적 의도를 그대로 재현해내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악보는 최대한 지켜져야 하는 하나의 규범입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다니던 피아노 학원의 기억을 떠올려볼까요?
악보의 음표와 쉼표들은 생김새에 따라 그 길이가 다르고 악상기호에 따라 건반을 세게 누르기도 하고 약하게 누르기도 해야 합니다. 내가 악보를 최대한 정확히 읽어낼수록 선생님은 만족도도 높아집니다. 결국 저는 주어진 악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연주하고 나서야 귀가가 허락됩니다.
호기심 많고 한시도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던 어린 시절의 저는, 그 인고의 시간을 버텨내지 못하고, 제 클래식 피아노 학습은 체르니 30번에서 막을 내립니다.
이후 성인이 되어 재즈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학원을 찾았을 때는, 어린 시절 클래식 피아노의 악보와는 조금 다른 의미의 악보를 만납니다. 악보를 ‘그대로’ 연주해서는 그다지 멋진 사운드를 낼 수 없었던 것이지요.
악보에는 분명히 8분음표로 표기되어 있지만 그 길이를 명확히 세어서는 ‘스윙필(swing feel)’이라는 것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악보에는 분명히 3화음의 화성이 적혀있었지만 7음이나 9음을 추가하지 않고서는 선생님처럼 멋진 소리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재즈에서의 악보는 그야말로 음악이 만들어지기 위한 최소한의 ‘뼈대’의 역할 밖에는 없었던 것이지요. 멋진 음악을 만들어내기 위해 ‘뼈대’에 ‘살’을 붙이는 것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바로 이 ‘살’ 덕분에 재즈는 예측해서 듣기가 힘든 음악이 됩니다. 그래서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지요.
앞에서 언급했듯이 클래식 음악은 같은 악보를 보고 연주한 곡이라면 연주 자체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악보에 최대한 많은 단서가 제시되어 있고, 연주자들은 단서를 해석하는데 있어 대부분 규범을 지키는 방식으로 연주를 합니다. 한 마디로 ‘아는 곡’은 ‘알던대로’ 연주됩니다.
그러나 재즈는 악보에 최소한의 단서만이 제시되어 있고, 그 단서를 가지고 얼마나 멋진 음악을 연주해 낼 수 있는지는 연주자에게 전적으로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재즈곡은 동일한 곡이라도 연주자에 따라 모두 다른 느낌의 음악이 되는 것이지요. 아는 곡도 어떻게 연주될 지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특성 때문에 재즈 연주는 그 곡을 연주하고 있는 연주자도, 그 곡을 감상하고 있는 관객도 쉽사리 예측하여 들을 수 없는 음악이 됩니다. 즉흥적으로 살을 붙여 연주하기 때문이지요.
어떤 연주도 ‘생각대로’ 진행될 수 없기 때문에, 연주자도 관객도 오늘은 어떤 음악이 만들어질지를 늘 기대하게 된다는 것이 재즈의 특별한 매력인 것 같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모든 것이 ‘생각대로’만 일어난다면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