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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예지 Aug 20. 2019

노래의 시작

2.

동아리에 들어간 나는 처음으로 무대란 곳에 서볼 수 있었다. 그전까지 나에게 무대란 기껏해야 교실 장기자랑 시간 혹은 친구들과 가는 노래방이 전부였다.


역사적인 첫 경험은 교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의 축하무대였던 것 같다. 동아리 사람들과 우루루 몰려 올라가는 무대였으므로 책임감이 분산된 덕에, 다시 말해 나 하나쯤 실수해도 큰일이 나지 않는 무대였기에 마냥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학교 밖에서의 첫 무대는 당시 홍대에 있던 힙합 클럽 중의 하나인 '슬러거'란 곳이었다.


지금이야 힙합이 K-Pop의 주류를 차지하는 장르가 되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힙합 뮤지션들은 언더그라운드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우중충하고 음산한 분위기의, 지하실 냄새와 담배 냄새가 적절히 배합되어 가본 적도 없는 할렘의 향기를 풍기던 그곳에서 지금도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여러 힙합 뮤지션들을 만났었다. 내 기억에 공연을 하고 돈을 받지는 않았던 것 같고, 그저 무대에 한번 섰다는 게 신기하고 자랑스러울 따름이었던 시절이었다.


그 뒤로도 학교 정기공연이며, 대학힙합연합에서 주최하는 외부 공연 등에 참여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생활의 중심이 음악 쪽으로 많이 이동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음악을 하고 살 것이란 것은 전혀 모르던 시절이었다. 실은 내가 빼도 박도 못하게 이제 뮤지션이란 이름으로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후의 일이었다.


아무튼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이 하나둘씩 휴학을 하기 시작한다. 일단은 남학우들의 군입대로 인해 학교 생활이 조금 시들해졌다. 그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실제 악기들과 공연을 하는 느낌은 어떨까. 그도 그럴 것이 동아리의 공연은 MR이라고 부르는 반주 음원에 노래를 하거나 랩을 하는 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악기 반주에 노래를 부를 일은, 아주 가끔 다른 동아리와의 연합공연이 아니고서야 이루어지기가 힘들었다.


그 때 하필 대학로에 있는 서울 재즈아카데미란 곳의 신문 광고가 어떻게 내 눈에 띄었을까.  

무작정 그곳에 입학 오디션을 치르러 갔다.


처음엔 피아노를 배울 심산이었다. 그래야 다른 악기들과 함께 공연을 하는 것이 수월할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어릴 적 엄마에게 떠밀려 체르니 30번까지 겨우 쳐놓은 피아노 실력을 믿어보기로 하고 오디션에 임한다. 당시 활발히 활동하던 재즈 피아니스트 양준호 선생님(그때는 당연히 누군지도 몰랐다. 재즈의 '재'자도 몰랐으니.)이 심사를 하셨던 오디션에서, 나는 피아노 명곡집에서 가장 치기 쉬운 곡을 골라 갔음에도 불구하고 천근만근이나 되는 것 같은 피아노 건반을 겨우겨우 누르며 연주, 아니 고문했다. 나의 엄청난 고문 퍼포먼스가 끝난 뒤, 양준호 선생님은 한숨을 푹 내쉬시며 "넌...대체 왜 피아노를 배우려고 하니?"라고 딱 한마디를 하셨으며, 난 그길로 전공을 보컬로 바꿔 서울재즈아카데미에 입학한다.


그로부터 한참 뒤, 수원여대에 출강하며 선생님을 뵈었을 때, 선생님 때문에 보컬이 되었다며 이 이야기를 해드리니 내가 그랬냐며 껄껄 웃으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네, 선생님 때문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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