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ianist Garam Cho Dec 12. 2019

‘겨울愛리스트’

[Pianist 조가람의 Classic Essay]


“리스트의 사랑”



헤르만 헤세가 말했다.

“지난 세월이여, 너희는 우리 시인들에겐 위로와 양식이니. 그 환기 喚起와 보전이 바로 시인의 사명이다"



과연, 프란츠 리스트.

콘서트 피아니스트의 전신이자 아이돌에 필적하는 인기를 누리고, 뛰어난 문필가 개척자이자 작곡자이며 숱한 여인들과 염문을 뿌리고, 때로 그들과 사랑을 넘어 선 우정을 삶으로 귀히 지켜내고, 그 말년에는 어릴 적 꿈이었던 수도자로 20년의 세월을 보내며 마치 괴테의 [파우스트]와 같은 삶을 산, 이 남자는, “환기하고 보전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장르와 악기 편성을 가리지 않고 아름다운 것들, 의미 있는 것들을 찾아 피아노 음악으로 편곡하여, 한 명의 인간이 모든 감정을 형상화할 수 있는 온전한 피아노 독주곡으로 만들어 환기하고 새로이 보전했다. 불멸의 찬사를 받아 마땅한 이 비범한 음악가가, 본인이 즐기려 만들었을지도 모를 그 음악적 쾌락의 자산에 나와 같은 평범한 음악가는 얼른 편승하여 몇 조각 훔쳐본다. 그리고 내가 훔친 그가 주목한 “사랑의 노래”를 당신에게도 슬쩍 건네 본다.




Liebestraum [사랑의 꿈]

(F.Liszt Nocturne in A flat Major, Liebestraum, S.541 No.3)


그대, 프란츠 리스트가 쓴 글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언젠가 리스트가 프레데릭 쇼팽에 대하여 쓴 글을 읽은 바 있다. 핀셋으로 집어내는 듯한 기민한 분석력과 인간과 시대에 대한 통찰력, 날 선 지성과 바위도 파고들 법한 물줄기 같은 세심하고 곧은 감정선과 무릎을 치는 찬탄이 절로 나오는 정확하게 아름다운 메타포, 놀라운 양의 어휘력을 지닌 이 사람은 누구인가! 때로 음악계에서 “나르시시스트”로 단칼에 확언되는 그 남자가 맞단 말인가.


그와 마주하는 순간을 상상한다. 그런 그가 눈앞에 있다면 한마디 말이라도 할 수 있을까. 지성과 재능, 체력과 미모, 장악력과 심지어 인간애까지 지닌, 좋은 것은 모조리 ‘몰빵’ 받은 그를 보며 신에게 애 먼 질투 어린 소리나 내뱉으려나. 혹, 그의 연주를 보던 귀부인들처럼 혼절해버릴지도 모를 노릇이다. 그런데 인간애는 있으나 인간미는 없어 보일 정도의 완벽한 이 남자도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하긴, 사랑 앞에 장사 없는 법이지.


프란츠 리스트의 초상화


리스트의 마음을 사로잡은 공작부인 비트켄슈타인
사랑이라는 환희와 행복 위에 폭풍우가 쏟아져 아름다운 환상과 희망의 제단이 파괴당하지 않을 사람이 있으리오


라 말한 바 있는 이 남자, 만 37살 되던 해에 러시아 출신의 문인, 공작부인 그리고 유부녀였던 비트겐슈타인과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

장미꽃 같던 전 연인 다오 부인과는 달리 이지적 매력의 소유자였던 비트겐슈타인과의 사랑은 이후 우정으로 변모하여 둘은 여생 동안 약 40년간의 정서적 교류를 하게 된다. 이 매혹적인 남자를 사로잡고, 일생을 지적/정서적 교류를 나눈 여자는 어떠했을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결말을 예상하고도, 걷잡을 수 없이 시작되었던 이 사랑에 리스트는 사랑의 헌사를 바친다. 프란츠 리스트를 몰라도 들어봤음직 한 이 곡은 프라일리히라트의 시에 선율을 더하고, 이후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되었다.


제목은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오! 사랑하라, 그대가 사랑할 수 있는 한! / 시간이 오리니, 그대가 무덤가에 서서 슬퍼할 시간이.”

아스라이 나타나 심장을 파고들어 존재를 뒤흔들고, 도무지 그 사랑을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생을 남기고 꿈처럼 아스러지는 그런, 너도나도 겪어 봤을 사랑.

그 평범한 사랑 앞에 비범한 청년도 꼭 그 사랑과 닮은 노래를 만들어 바치고,

우리는 이백 년에 이르도록 나의 이야기처럼 이 노래를 듣는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우승자, 이 시대의 마지막 순정 Nobuyuki Tsujii의 연주를 추천한다.






Liebestod [사랑의 죽음]

(F.Liszt Tristan und Isolde “Liebestod”, S.447)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제3막 이졸데의 아리아 “Liebestod(사랑의 죽음)”


오페라의 줄거리를 잠시 말하자면 이렇다.

아일랜드의 왕녀 이졸데는 콘월 왕과의 정략결혼을 위해 탄 배 안에서 왕의 기사 트리스탄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지고 만다. 트리스탄을 비난하며 왕의 신하 메로트는 그를 칼로 찌르고 그는 저항하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죽어가는 트리스탄에게 달려온 이졸데는 그를 안고, “사랑의 죽음”을 부르며 그를 따라서 죽음을 택한다.


정략결혼이 많던 당대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진부해 보이는 셰익스피어식 비극적 사랑 이야기는 극화된 유행이라기보다 시대상의 현현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이 가는 대로 사랑하는 이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행운은 상상하기 힘들었던 그 시대, 그래서 더욱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인한 절망은 깊어지고 이루고 싶은 사랑에 대한 갈망이 강해지는 그 시대는, 죽음으로만 그 만남을 이룩할 수 있다는 철학에 당위성마저 실어주었다.


 바그너가 죽음으로써 사랑이 완성된다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견해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선택적 죽음”-자발적 죽음과의 차이는 작지 않다-은 사와 생의 대비라기보다는, 페노메논(현상)으로부터 누메논(이데아)로의 영혼의 공간적 이주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죽음이라 불리는 영혼의 이주를 통해 연인과 재회하고 사랑을 완성하고자 도박을 걸어보는 소망적 모험.

” 결기”라 불려 마땅한 그 사랑을 통주저음, 대위법, 화성학에 통달한 작곡기법 같은 각진 틀에 담아낼 수는 없는 법이다.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을 담아내려 음악적 언어로도 부족하여, ‘언어적 음악’을 창조했다. 음악 자체가 언어이고 언어가 음악화되어 그의 화성은 그 진행의 구성 방식 본연의 문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 이는 어쩌면 가히 하나의 독립된 ‘언어’라 하겠다. 그리하여 트리스탄 코드가 탄생했다.

[트리스탄 코드]

 F-B-D#-G#으로 이루어진 첫 시작의 이 음군은 불협화음으로, 이는 협화음으로 해결되지 않은 채 다음 불협화음으로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계류음들의 연쇄는 해결을 지연하고 욕망의 해소를 유보함으로써, 해결에 대한 갈망과 마침내 결정적 순간의 해결에 이르렀을 때 해방감을 극대화시킨다. 페노메논(현상)으로 보이는 이 세상에서 이룩할 수 없는 안타까운 연인의 결연한 사랑은 불협화음으로 진행된다.


이들에게 죽음이라는 미지의 영역은 기만적인 표상으로부터 벗어난 실존 일터,

존재의 상실과 소멸이 아닌, 어쩌면 땅에 발을 붙이고 산소를 마셔야 사는 우리는 알 수 없는 유토피아라는 환희의 세계일지 모른다.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무려 7분여 이어지던 불협화음은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죽음’ 혹은 다른 곳으로의 이주, 에 도착한 장면에 이르러서야 협화음으로 해결된다.





프란츠 리스트는 훗날 사위가 될 바그너의 이 아리아를 걸작이라 칭하며 피아노곡으로 옮겼다.

다른 제목으로 “그의 미소는 어찌나 부드럽고 고요한지”라 불리는 이 곡을 감상하는 방법으로 피아노 편곡에 앞서 오페라 아리아를 들어보길 권유한다.

Herbert von Karajan의 지휘로  Wiener Philharmoniker와 Jessie Norman이 연주한 환상적인 아리아를-몇 천 개의 촛불이 아른거리는 무대 연출 역시 일품이다- 동영상으로 감상해보길.


jessy Norman


그리고, 이 가사를 음미해보라.


부드럽고 조용하게 그가 미소 지으며/ 다정한 눈길을 보내는 것이/당신들에겐 보이지 않나요/
그의 가슴은 지혜와 고귀함으로 가득하고/그의 입술엔 향기와 포근한 입김이/조용하고 평화롭게 오가는데/...
오로지 그 기쁨을 전하고 모든 것을 속삭이며 다정하게 위로하는 듯, /울려 퍼지며 내 안으로 들어와/부드러운 음색으로 속삭입니다./...
파도치는 물결 속에, 바다의 소리 속에/세계가 숨 쉬는 그 맥박 속에 빠져들어/나를 잊어버리려 합니다/오! 다시없는 이 기쁨이여..


그리고 이어 눈을 감고, 가사와 아리아를 가슴에 품고, 피아노의 밀도 높은 울림으로 [Liebestod], 사랑의 죽음으로 불리지만, 실은 죽음 너머의 사랑에 가까운 이 곡을  들어보기를 청한다.

이것이 참예술이고 우리네가 한 번씩 겪는 사랑 아니겠는가. 감상하는 가운데, 당신의 삶에 헤르만 헤세가 ‘사랑’이라 이름 붙인 이 시와 같이, 사랑의 의미가 되살아나길 바란다.


“말없이 웃으며, 도취되어 눈물지으며, 오직 당신뿐, 오직 나와 당신뿐, 깊은 우주 속에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아, 그 속에서 길을 잃고, 죽어서 다시 태어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