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ianist Garam Cho Mar 17. 2020

아빠의 뒷모습, 야상곡

[피아니스트의 일기]

https://youtu.be/23GEa3AcU5Q



 어릴 적 아파트 5층, 피아노를 등지고 창밖을 내려다보면 '모자상'이라 불리던 작은 아가를 두 팔로 감싸 앉고 얼굴을 맞댄, 엄마의 동상이 있었다. 그 동상 주변에는 버드나무가 드리 운 정자가 있었다.

점심 때면 찬거리 장 봐오던 동네 아주머니들이 사랑방 삼았고, 방과 후면 구슬치고, 고무줄놀이하던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해 질 무렵이면, 쓸쓸한 아저씨들의 소주 한 잔 기울일 숨 쉴 언덕 같은 곳.


 어린 나는 그곳을 곧잘 내려다보았는데, 다른 이들의 아빠들의 언덕일 것 같았던 그  쓸쓸한 곳에,

 우리 아빠의 동그랗고 작은 뒷모습이 보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느낌표로 문장이 끝날 것 같았던 아빠가,

이를테면 그래! 해보자! 파이팅! 과 같은 식으로 말이다,

그런 아빠가 소주 한 병을 곁에 두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계셨다.

 

 후회가 밀려왔다.

창문을 열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연습을 하고 있노라면, 빚진 사람처럼 눈썹이 팔자가 되어서는,

미안하다는 말문으로 '가람아, 이 곡 한 곡 쳐줘.' 하셨던, 그리고 '싫어~'했던,  그 곡을 치기 시작했다.

뭐 그리 비싼 연주라고 야박하게도 굴었을까.


쇼팽의 야상곡, 풀어 이야기하자면 밤의 노래.

그 날의 우리 아빠와 퍽 잘 어울리는 그 곡을 쳤다.

아빠에게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23년이 지나,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나는,

아빠를 청중석 가운데 모시고, 독주회의 앙코르곡으로 그 곡을 연주했다.


딸이 헤아릴 수 없는 그 인생의 무게와

지나간 세월에 한 방울이라도, 위로가 되었기를 간절히 바라며 마지막 건반을 눌렀다.







작가의 이전글 ‘겨울愛리스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