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SOS를 모르는 척하지 마세요
지인의 부탁으로 오랜만에 B센터 수업을 갔다. 새삼 느끼는 건 꼭 상담센터가 아니더라도 아픈 친구들이 참 많아졌다는 것이다. 십 수년 전만 하여도 영재 교육, 조기 교육을 목표로 하는 엄마들이 절대다수였다면 최근에는 사회적 관계에 적응 문제를 겪는 친구들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가끔은 간단한 에티켓과 상호작용 요령을 알려주는 것 만으로 좋아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는 물론 부모님들도 집중적인 상담과 교육을 받았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생길 때가 있다.
지난 토요일에 만난 A도 그랬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가야 하는 A는 말을 못 하나 싶을 정도로 입을 열지 않았다. 인지 및 작업 수행 능력이 또래에 비하여 낮은 수준이었다. 옆에 앉히고 차분히 말을 시켜보니 두 단어 이상을 연결하여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조차 어려워하였다. A는 스스로가 또래보다 늦는 것을 알고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새로운 과제가 주어지면 구석에 숨어서 혼자 조물 거리고 있어서 몇 차례 손을 잡고 원래의 자리로 데리고 와야 했다. 긴장도가 높아지면 다한증이 심해지는지 A와 손을 잡고 나면 내 손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으로 젖어있었다.
이미 주변 친구도 A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고 지적하거나 암암리에 소외시키고 있었다. 무엇보다 걱정인 건 심하게 왜곡된 A의 그림 형태였다. 복잡한 그림도 아닌 꽃 속에 하트가 들어 있는 수준의 간단한 암호를 전혀 다른 형태로 표현했다. 단순히 인지, 정서 발달이 늦는 정도의 문제가 아닌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을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나. A가 많이 불안해하고 긴장을 많이 하네요. 긴장을 많이 하면 손에 땀이 나는 신체적 반응도 있고요.
엄마. (처음 듣는 듯한 표정) 아 그래요?.......
나. 친구들과 작업한 내용이나 수준이 차이가 난다고 하여도 주어진 시간 동안 집중해서 열심히 한 부분 칭찬 많이 해주시고요, 평소 A가 한 단어씩 말하는 것을 잘 엮어서 문장으로 연결하여 표현하는 연습을 많이 시켜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엄마. 워낙에 말도 늦게 시작했고 또 그게 그래서 그런지 친구들하고도 못 어울리고 그러네요. 그래도 많이 우울해하지도 않고 집에서는 잘 지내니 학교 가면 좋아지겠죠.
A는 친구들에 비해 본인의 지적 작업 수준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다. 기질적으로 소극적이었을 아이는 점점 더 소심해졌을 것이고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은 커녕 눈도 맞추기 어려워하였다. 특히나 손바닥에 물 고이는 것이 보일 정도의 심한 다한증의 경우 방치하면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받을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아니 이미 친구들과의 관계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에 B센터를 찾아왔다고 들었다. 하지만 B센터는 간단한 상호작용 기술에 약간의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치료기관이 아니다.
A는 여러 가지 형태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더러는 언어로도 표현했을 것이고 행동이나 신체 반응, 표정 등으로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안타까운 건 엄마는 그 SOS 메시지를 듣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엄마가 평소 사람들의 감정에 둔감한 성향이어서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혹은 내 아이의 문제를 직면하기 힘들어서 무의식적으로 차단하고 있을 수도 있다. 치료가 필요하다는 권유를 받고 상담실을 오는 아이들의 엄마들 대부분 우리 아이는 건강하며 정상범위에서 약간만 어긋난 상태라고 믿고 싶어 한다. 그 이유야 어떻든 아이는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사회성을 배우는 가장 적기의 골든 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안타까움에 수업을 다녀오고 며칠 동안 그 아이가 자꾸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