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하면 평생 욕을 안배 우려나? :(
까까머리 아들이 올해로 초3이 되었다. 나이도 한 자리 숫자에서 두 자리 숫자로 늘었다. 팔다리가 부쩍 길어졌고 먹는 양도 많아졌다. 어디를 가든 꼭 따라다니던 작년과 확연히 다르게 이젠 시장이나 마트 정도는 엄마 혼자 다녀오라고 한다.
그런 아들이 최근 축구에 푹~빠졌다. 동네 친구들, 형아 들과 모여서 축구하는 오후 5시 만을 기다리며 하루를 보낸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주말에 외출했다가 4시만 넘겨도 초조해하며 닦달하기 시작한다. 축구하러 가야 하는데 밖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며 온갖 심통을 다 부리며 가족을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한다.
남는 시간은 축구 관련 책만 보고 위인전도 메시, 호날두, 손흥민 등의 축구 선수들 이야기만 읽는다.
또래에 비하여 작은 체구이지만 제법 운동신경이 있는 아들은 곧잘 5학년 형아 들의 축구 경기에 자주 끼곤 한다. 신나게 축구 한판을 하고 온 날 저녁에는 00형은 어찌 패스를 했고요, 내가 골을 넣었는데 노골이 되었으나 다시……. 뭐 이런 사소한 축구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여기까지는 참으로 바람직하다. 신나게 뛰어놀며 페어플레이를 즐기는 초딩들...어찌나 건강하고 예쁜지. 하지만 축구처럼 승패가 명확하고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기 쉬운 운동을 형들과 하는 시간이 늘어나나 보니 자연스레 형들의 각종 욕설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이웃에 동네에 사는 아들의 친구가 놀러 왔다. 축구를 하는 도중 형들이 욕을 많이 해서 너무 무서웠다고 하는 말과 함께 우리 아들도 단속해야지 않느냐는 친구 맘의 말을 들을 때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물론 유해하다 느껴지는 환경은 최대한 늦게 접촉하고 빈도를 낮춰주고 싶은 것이 엄마의 마음이다. 좋은 것만 보여주고 예쁜 말만 듣게 하고 싶다. 우리 아이는 다른 집 아이들과 달라서 욕설 같은 건 하지 않는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고 상담하면서 깨닫는 것은 유해 환경으로 완벽 차단할 수 있는 방법 따위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다.
욕을 배울까 봐 한참 뛰어놀아야 할 10살 아들을 가둬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노출시키지 않으면 영영~욕하는 환경에 노출되지 않을까?
아이들이 커가며 욕이라는 환경에 노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특히 남자아이들 쎄 보이는 말투와 행동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 빨리 더 많이 흡수하는 아이들도 있고 상대적으로 덜 스며드는 아이들의 개인차만 존재한다. 막을 수 없다면 조절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 외에 어떤 방법이 없다
때와 장소에 맞게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 법을 미리미리 알려 주어야 한다. 친구들끼리 사용하는 격한 언어와 행동은 가족들, 선생님, 타인들에게는 사용하지 않도록 조절하고 몸에 익히는 것이 욕하는 아이들과 무조건 못 어울리게 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일이다.
아들과 축구를 하는 아이들은 단지 내에서 자주 마주친다. 멀리서 달려와서 “안녕, 한결아.” 나에게도 “안녕하세요.” 인사하고는 수줍고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고 지나가는 모습이 참으로 귀엽다.
7층에 사는 5학년 형아는 3형제 중 첫째인데 동생들을 참 자상하게 잘 돌본다. 예절도 바르고 의젓한 모습에 우연히 마주친 날이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 아이에 대한 칭찬을 했다. 작년 봄 어느 날. 딸내미가 동그래진 눈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좋아하는 그 7층 오빠 욕을 엄청 잘해. 놀이터에서 친구들이랑 노는 것을 봤는데 계속 욕해.”
어른이 잠깐 보기엔 세상 착하고 순하고 예절 바른 아이들이 제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하나 보다. 그 아이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때와 대상에 맞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칭찬해주고 싶다. 물론 애미의 속마음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말 좀 예쁘게 하면 좋겠지만...ㅡㅡ;;
10대가 넘어가며 아이들에게 부모보다 더 중요한 관계가 생긴다. 바로 또래와의 관계이다. 또래들과 어울리며 놀고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하며 상호작용을 한다. 자연스레 엄마가 관리하고 참견할 수 있는 범위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엄마가 따라다니며 일일이 잔소리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
자랄수록 아이들의 행동반경은 커져가고 노는 모습을 볼 수 없을 때가 훨씬 더 많아지는 현실을 인정하고 일정 부분은 양보해야 한다.
“축구할 때 형들이 욕 많이 하고 무섭게 하기도 그러나 봐?”
“그런가? 난 그냥 공 따라다니느라 그런 소리 잘 못 들었는데…….”
‘어쩔 수 없다. 내 아이를 잘 가르치면 된다.’라고 여기면서도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들이 있었고 아들에게 확인을 해야만 했다. 생각보다 아이는 형들의 욕설을 크게 인식하지 않고 있었다. 그 친구들이 쓰는 언어보다는 그 아이들과 함께 하는 축구라는 놀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형들이 게임을 하다가 흥분을 하면 욕을 하고 자주 듣다 보면 배우게도 되고 가끔씩 너도 모르게 툭툭 나올 수도 있어. 아무 때나 그런 욕설을 내뱉고 조절하지 못하는 건 안 되는 거 알고 있지?”
엄마의 잔소리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가 되었고 아들은 지금도 축구를 하러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