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의 학습 문제는 늦게 뗀 한글이 아니다.
우리 아들은 초등학교 7살 후반에야 겨우 한글을 떼었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르면서 기죽지 않고 늘 행복하고 혼자 즐거운 아이였다. 7세가 되면서도 한글에 관심이 없는 아들이 은근슬쩍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책 제목이라도 들이대면
"나? 못 읽는데?"
"아... 그렇지? 그래... 천천히 배우면 되지..."
너무 당당해서 오히려 질문했던 엄마가 기가 죽으며 위로를 하곤 했다.
물론 초딩 3학년이 되는 아들은 읽고 쓰는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아이들 입이 트이는 시기는 다르지만 6~7세가 되면 의사소통하는데 큰 무리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뒤집고, 기고, 일어서는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6~7세가 되면 달리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을 불편해하지 않는다. 4살 후반에 한글을 뗀 딸이나 7살 후반에야 겨우 더듬더듬 읽기 시작한 아들의 수준은 초3학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 크게 앞서거나 뒤쳐지지 않는다.
오히려 한글을 늦게 뗀 덕분에 엄마가 읽어주는 책의 그림과 내용에만 몰입한 덕인지 상황에 대한 이해력, 감수성, 기억 유지 수준은 딸보다 뛰어날 때도 있다. 씩씩하고 에너지 넘치는 반면 빠른 눈치와 남다른 사교성을 가진 덕에 친구들과 잘 지내고 인기도 많다.
고슴도치 맘이라 내 새끼 칭찬 시작하면 끝이 없지만...ㅋ 이런 이야기를 하고자 글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
아들이 처음 한글에 관심을 가질 무렵 익힘 문제집 한켠에 있었던 창의력 문제이다.
바른 행동을 하고 있는 아이 고르기!!!
수건을 쓰고 세수를 하는 첫 번째 그림을 가리키며
"자... 봐봐... 바른 행동을 하는 친구를 찾는 거야. 얘는 뭐 하고 있을까?"
"물장난하는데?"
"그... 그래? 머리띠도 하고 세수하는 것 같지 않아?"
"아닌데... 물 막 튀기고 있는데..."
손가락만 살짝 담그고 세수하기 싫어서 요령을 피우는 듯 보이는 두 번째 아이를 가리키며
"그럼 얘는 뭐 하고 있을까?"
"응~거울 보며 윙크하고 있어. 엄마! 정답은 2번!"
예상대로 이 문제의 정해진 적극적인 자세로 씻고 있는 아이! 답은 1번이다. 하지만 아이의 눈에는 물장난하는 아이가 거울 보는 아이보다 바르지 못한 행동으로 보인다. 보는 관점이 다른 것일 뿐 그게 틀렸다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아이들의 초등학교 교과 문제집 풀이를 도와줄 때면 마음에 걸리는 문제가 있을 때가 있다. 충분히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는 문장이나 상황임에도 문제가 원하는 답은 늘 정해져 있다. 앞으로 수 없이 많은 시험을 보아야 하는 아이들에게 정답을 찾는 요령을 가르쳐야 하는 건지... 틀려도 좋으니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것을 소신 있게 말하도록 가르쳐야 하는 건지 공부에 있어서는 늘 딜레마에 빠진다.
"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문제는 이렇게 답을 써야 맞게 해 줘."
어색하게 말하고 다음 문제로 넘어가곤 한다. 사고력, 창의력을 키워주기 위하여 교과과정을 개정하고 있다지만 엄마의 눈에는 여전히 닫힌 결말이다.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만 문제가 원하는 정답을 찾는 요령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씁쓸하다. 우리 아들의 학습 문제는 늦게 뗀 한글이 아니라 정해진 답과 같은 답을 찾으라 강요하는 현실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