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던 직장인, 도코로다 료스케가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경찰은 수사 끝에 그가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들과 '가상가족놀이'를 즐겼다는 걸 알아낸다. '가상가족놀이'란 일종의 역할극으로 온라인에서 몇 명이 모여 각자 아빠, 엄마, 아들, 딸 역할을 맡아 가족인 '척'하는 행위다. 도코로다 료스케가 사망하기 얼마 전, 낯선 누군가와 함께 있는 걸 봤다는 딸의 목격담을 듣고, 경찰은 '가상가족놀이' 멤버들을 심문하는 곳에 딸을 부른다. 범인은 누구일까.
경찰은 목격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확인해달라고 딸을 불렀는데, 상황은 묘하게 흘러갔다. 또, 경찰들이 딸을 대하는 태도도 점점 보호해주기보다는 그녀를 관찰하는 듯 변했다. 그래서 딸이 범인이라는 건 중반부터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어머니와 자신은 뒷전으로 하고 여대생과 바람을 피웠던 아버지. 심지어 인터넷으로 만난 사람들과 '가상가족놀이'를 즐기며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아버지인 척하고 있었다. 한창 예민할 나이에 아버지의 그런 행동을 두 눈으로 직접 봤으니 그 분노가 오죽했을까. 이렇게 소설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데, 어? 생각지 못했던 반전이 하나 더 있었다.
이럴수가. 책의 반 이상을 할애해서 '가상가족놀이' 멤버를 조사했던 부분이 모두 연극이라고 했다. 피해자의 딸이자 범인이었던 가즈미도 속고, 나도 속았다. 더 재밌었던 부분은, 다시 앞장으로 돌아가 봤더니 이미 취조장면이 '연극'이라고 알려주는 복선이 많았다는 거다. '가상가족놀이' 멤버들을 궁금해했던 독자들은 허무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 잘 짜인 연극이 가즈미를 죄여가듯 압박해 결국 자백을 얻어내게 한다. 연극이 점차 극에 달하면서 가즈미도 점점 본심을 드러내기 때문에, 극 중 경찰들도 그리고 독자인 나도 범인이 누군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 책의 매력은 단순히 '반전'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현대 사회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기로 소문난 미미여사답게 이 책에서는 어떤 시가 등장한다.
나비
- 사이조 야소
이윽고 지옥에 내려갈 때,
그곳에서 기다릴 부모와
친구에게 나는 무엇을 가지고 가랴.
아마도 나는 호주머니에서
창백하게, 부서진
나비의 잔해를 꺼내리라.
그리하여 건네면서 말하리라.
일생을
아이처럼, 쓸쓸하게
이것을 쫓았노라고.
살해당한 도코로다 료스케는 현실에서는 무책임한 가장이었지만, 온라인에서는 너무나도 다정한 아버지였다. 가짜 엄마도, 가짜 딸도, 가짜 아들도 함께한 시간이 즐거웠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러나 도코로다 료스케 살해되자 온라인에서 다정한 척 굴었던 가족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는 응원과 격려만 나누었던 서로였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의심하고,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단칼에 잘라버리기까지 한다. 바로 곁에 있는 가족들에게는 늘 무관심했으나 온라인 가족들에게는 그렇게 다정했었는데. 도코로다 료스케가 공들여 쌓아 올린 온라인 가족은 모래성처럼 한순간에 무너졌다. 이 책이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진짜' 가족은 무시하고 '가짜' 가족과 정을 나누었던 료스케처럼 우리도 혹시 눈앞에 있는 행복보다는 허무한 이상향을 쫓는 건 아닌지.
전체적인 감상평
반전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탄탄한 서사로 인해 자연스럽게 범인의 정체에만 신경을 쏟게 되는데, 이때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 쾅하고 터져서 재밌었습니다.
별점 ★★★★
생각지 못했던 반전에 재미를 느꼈다면
반전이 멋진 소설은 정말 많아서 어떤 걸 골라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먼저, 우타노 쇼고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입니다. 가상가족놀이와 분위기는 좀 다르지만 후회하지 않을 작품입니다.
덧붙여서 앤터니 호로비츠의 '셜록홈즈 모리어티의 죽음'을 추천합니다. 셜록홈즈 시리즈 중 한 권도 읽지 않았던 분이라도 괜찮습니다. 셜록 홈즈가 유능한 탐정이고, 홈즈의 숙적이 모리어티 교수이며, 그 둘이 어떤 폭포에서 싸우다가 떨어졌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작품입니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비추는 이야기에 재미를 느꼈다면
같은 작가의 모방범을 추천합니다. 두껍다고 생각했던 책 세 권을 이렇게 빨리 읽을 수가 있나 하고 깜짝 놀라게 될 거에요. 장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