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자` song by 선우정아
노랫말을 좋아했던 그림작가와 대중가요가 만나 하나의 그림책이 되었다. 2021년 출간된 ``도망가자, Run with me` (노래) 선우정아(글) · 곽수진 그림/만화.`
사랑을 노래하고 사람을 노래하고 삶을 노래하며 직접 손 내밀어 위로를 전하는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 아늑하고 소박하며 따뜻한 그림을 통해 진심 가득한 밝은 희망을 전하는 일러스트레이터 곽수진의 양장본 그램책이라고 온라인 서점에 홍보되어 있었다. (출처: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83483?utm_source=google&utm_medium=cpc&utm_campaign=googleSearch&gad_source=5)
이 그림책을 넘기다 멈춘 페이지에는 `지쳐도 돼. 내가 안아줄게. 괜찮아 좀 느려도 천천히 걸어도.`라는 글귀와 해변의 모래밭을 반려견과 함께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 길 위의 화자가 있었다.
따뜻하고 온화한 색감과 시처럼 간결한 글로 `넌 그래도 돼, 지금 그 모습도 너라서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잔잔하게 건네 온다.
도망가자
멀리 안 가도 괜찮을 거야
너와 함께라면 난 다 좋아
너의 맘이 편할 수 있는 곳
그게 어디든지 얘기해줘
너랑 있을게 이렇게
손 내밀면 내가 잡을게
있을까 두려울 게
어디를 간다 해도
우린 서로를 꼭 붙잡고 있으니
가보는 거야 달려도 볼까
어디로든 어떻게든
내가 옆에 있을게 마음껏 울어도 돼
그다음에 돌아오자 씩씩하게
지쳐도 돼 내가 안아줄게
괜찮아 좀 느려도 천천히 걸어도
나만은 너랑 갈 거야 어디든
당연해
가자 손잡고
사랑해 눈 맞춰줄래
너의 얼굴 위에 빛이 스며들 때까지
가보자 지금 나랑
도망가자 - `도망가자` 가사 일부
https://youtu.be/wyN27QpglGE?si=4Z-lrg6ihPBovyWq
가수 선우정아의 노래는 드라마나 영화처럼 입체적이다. 내가 그 노랫말의 주인공이 된 듯 노랫가락과 가삿말에 퐁당 빠져 몰입하게 된다. 음악으로 힘을 주는 가수의 노래와 `나만은 너랑 갈 거야 어디든 당연해 가자 손잡고` 라며 함께 해줄 수 있는 사람만 있다면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2023년 봄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미국 사실주의의 대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국내 첫 개인전이 열렸다. 이 화가의 그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은 언젠가 스치듯 한번쯤 본 적이 있을 만큼 유명하다. 1942년에 캔버스에 그린 유화 작품으로, 인적이 드문 도시의 어느 깊은 밤, 문을 연 한적한 식당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도시의 척박함과 쓸쓸함, 불안함과 우울함 그리고 어쩌면 공포나 두려움까지도 연상이 되는 다양한 정서들을 느낄 수 있어 영화감독, 화가들, 광고제작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또한 호퍼의 다른 작품들도 국내에서 배우 `공유`와 `공효진`이 모델이었던 한 쇼핑몰 광고에 오마쥬 되기도 하였다.
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길 위에서: 에드워드 호퍼` 전을 둘러보며 필자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실 호퍼가 아닌 그의 아내 `조세핀`이였다.
매일경제 2018년 기사 `고독을 그린 호퍼, 고독을 삼킨 아내` 편에 따르면 뉴욕미술학교 동급생인 호퍼와 조세핀은 졸업 후 한 모임에서 만나 연인이 된다. 40대 초반까지 작품을 거의 팔지 못한 무명 화가였던 호퍼는 잡지 표지등 상업화를 그리며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여유가 날 때는 당시 미국의 모습을 소재로 작품을 그렸다 한다. 화가로 활동했던 조세핀은 미술관으로부터 작품 전시 요청을 받고, 애인의 그림도 나란히 걸릴 수 있도록 손을 썼다. 관객들은 호퍼의 그림에 열광했다. 성공의 서막이 올랐다. 이듬해 1924년 둘은 40대 초반 나이로 결혼했다. 같은 해 개인전을 연 호퍼는 모든 그림을 팔아치웠다고 한다. (출처: https://www.mk.co.kr/news/culture/8419740)
에드워드 호퍼는 사회성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아내인 조세핀이 매니저를 자처해 남편을 적극적으로 서포트 했고 성공가도를 걸게 되었으니 호퍼에게 아내는 `하늘이 내린 복권`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그는 화가인 아내의 실력을 깎아내려 붓을 내리게 했고 잦은 폭언과 폭력으로 대립했고, 그녀 역시 맞서 으르렁 거리면서도 의외로 40년의 기나긴 부부의 여정을 이어나갔다.
전시된 작품과 그림 밖에서 남편의 활동을 보조해 온 조세핀의 흔적을 시간을 내어 하나하나 보고 읽는 동안 유난히 호퍼가 아내를 뮤즈로 캔버스에 자주 그려 온 점이 이목을 끌었다. 표현이 서툴고 미숙했던 남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 해주는 사람` 조세핀이 그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티를 간접적으로 에둘러 드러 냈지 싶어지는 대목이었다.
`함께 하는 이들이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과정에서 선우정아의 노래 `도망가자`처럼 `나만은 너랑 갈 거야 어디든, 당연해 가자 손잡고, 사랑해 눈 맞춰줄래, 너의 얼굴 위에 빛이 스며들 때까지, 가보자 지금 나랑` 가사처럼 일방적인 한쪽의 희생이 아닌 서로의 생각, 가치관, 욕구를 인정해 주고 같이 성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같이하는 내내 마음이 편안할 것이다.
감상하던 그림 속 `조세핀`은 `웃는` 표정보다 `쓸쓸하고 외롭고 공허한` 표정에 더 가까웠었다. 서로가 필요했고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라면 그림으로 남길 것이 아니라 화가로써의 조세핀의 역량도 함께 키워내고, 고마울 땐 고맙다고, 힘들어 보일 땐 애쓰고 있다고,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땐 응원한다고, 한편이 되어 격려하고 즐겼다면 캠퍼스 속 조세핀도 환한 웃음을 보이지 않았을까 싶어 져 못내 아쉬웠다.
살다 보면 좌절스럽거나, 실망스럽고, 다 놓고 도망가고 싶은 순간을 종종 만난다. `도망가자` 속 가사처럼 마음껏 내 속의 시끄러운 것을 토해내고, 찬찬히 마음을 정돈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돌아오자 씩씩하게`라는 마음이 생겨나게 말이다.
그러할 때 `나만은 너랑 갈 거야 어디든`라고 곁에 있어주고 지지와 응원을 기꺼이 보내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의 소중함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마음 담아 기억하고 감사하자.
그리고 나 또한 그 대상에게 `너랑 있을게 이렇게 손 내밀면 내가 잡을게`라고 표현하고 응원과 감사의 목소리를 내어 주었으면 좋겠다. 만약 표현이 서툴다면 가만히 곁을 내어 주어도 그 또한 금상첨화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