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song by 하현상
겨울의 눈이 펑펑 내리는 길 위에서 바쁜 중에도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다. 조용한 듯해도 그 공간이 꽉 채워진 느낌을 주는 싱어송라이터 하현상의 `겨울이 오면`이다. 제목조차 딱 이 계절이지 않은가? ㅎㅎ
2024년 11월 27일. 그 해의 첫눈을 만났다. 가을이 평년에 비해 너무 길었던 탓일까. 기습적으로 펑펑 내리는 눈을 기분 좋게 맞으면서 절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10분을 걸으니 이젠 비처럼 쏟아지고 쌓이는 눈이 되어 얼굴과 머리 사이사이를 축축하게 파고들었다. 그렇다!. `적당히`라는 단어가 문득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좋았다. 겨울이라는 계절에 맞게 내리고 쌓이는 눈이 시의적절해서, 그리고 마침 밖이어서 그 순간의 운치를 느낄 수 있어서 말이다.
아무래도 녹은 눈에 머리와 옷이 흠뻑 젖어버리기 전 바로 옆 편의점에서 투명우산을 재빠르게 구입해 쓰고, 조심스럽게 흰 눈이 푹신하게 쌓인 길을 걸었다. 도로에서 떨어진 뒷골목 길이라서였을까. 우산 지붕 위에 톡 톡 눈이 닿는 소리가 ASMR 느낌으로 퍼지고 이 또한 그림 같은 순간이 되었다.
그날은 회의 시간에 맞춰 서둘러 이동하던 길이였는데 갑작스러운 폭설로 인해 모임이 연기되었다는 메시지가 `띠링~♬` 하고 울렸다. 뭔가 여백의 시간을 즐기라는 싸인 같아서 오가는 길에 찜해둔 창 넓은 카페에 들어가 바닐라 라테 한 잔을 손에 감싼 채 눈 내리는 창밖 풍경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아직 지지 않았던 단풍의 난처로움과 함께 겨울의 색을 입은 나뭇가지 위 흰 눈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쌓이고, 어느새 솜사탕처럼 펑 펑 내리던 눈은 여백을 빼곡히 채워 촘촘히도 내리고 있었다.
창밖을 한참 구경하다 보니 한 우산으로 알콩달콩 걷다 멈춰서 열심히 눈사람을 만드는 연인이 귀여워 보이고, 눈이 내리고 쌓이는 순간들을 카메라에 담는 행인들도 여유로워 보였다. 도로가 정체되고 눈길이 미끄러워 운전이 조심스러운 날이겠구나 싶은 걱정도 마음에 한 스푼 담긴다.
하얀 눈이 내리는 그날
난 그대의 두 눈앞에 서 있죠
또 한 번의 겨울이 오면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함께 할래요
– 하현상 `겨울이 오면` 가사 일부
https://www.youtube.com/watch?v=XhNQ-kTXD8A&list=RDXhNQ-kTXD8A&start_radio=1
BGM으로 흐르는 하현상과 잔나비의 노래가 너무도 평화로운 평일 오후 2시 반. 나는 연인들의 눈사람 만들기가 완성되기를 고대하며 알맞게 식어가는 커피를 음미했다. 연인들의 눈사람은 곰돌이 모양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들은 눈사람을 배경으로 다양한 포즈의 사진을 남긴 후 인도 끝 벤치 위에 곰돌이 눈사람을 소중하게 올려놓은 후 한참이다 더 사진 속 추억을 남긴 채 총총 사라졌다.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함께 할래요` 가사처럼 곰돌이 눈사람을 만든 기억이 그 연인에게는 오랜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다.
(너무 흔한 얘기) 지나고 나면, 너무 소중해
(항상 지나치지) 왜 그때는 모르는 걸까?
지금은 다를 거야, 말해주고파 (yeah)- 엑소 `첫눈` 가사 일부
첫눈이 내릴 때 생각나는 노래 중 하나인 엑소 `첫눈`은 크리스마스 캐럴 같은 몽글몽글한 분위기의 음악과는 다소 동떨어진 듯한 가사를 담고 있다. 그때는 몰랐던 소중함을 이제는 알고 있어서 더 후회된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있을 때 잘해`,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담아` 등의 글귀도, 하현상의 `겨울이 오면` 노래 가사 `이 순간을 함께 할래요` 가사도 더 크게 와닿는다.
김남도 교수 외 여러 공동 필자들이 매년 발간하는 `트렌드 코리아 2025`편에 담긴 신조어 `아보하`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아보하’는 아주 보통의 하루가 가지는 힘을 의미하며 무탈하고 특별할 것 없이 평온한 하루를 통해 자신에게 집중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며, 행복을 자랑하고 과시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부터 탈피하고 싶어 하는 것을 의미한다.
<트렌드코리아 2025> 간담회에서 김난도 교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개념이 확산하면서 본질을 잃고 과도하게 피로해졌다. 명품을 사고 오마카세를 가는 것까지 소확행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면서도 “요새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려는 경향이 짙어졌다”라고 전했다.
크게 돋보이고 근사한 이벤트적인 무언가를 경험하는 것이 아닌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알아차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상기시키는 신조어다.
별 탈 없이 무난하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걷고,
내가 업으로 삼고 있는 일에 크게 반짝이는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더라도
하나하나 쌓아가는 보통의 오늘.
이 하루를 감사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싶다.
아프지 않고 건강한 하루여서,
늘 연락하면 반갑게 맞아주는 친근한 목소리가 있어서,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있어서,
밥 벌이 할 수 있는 직장이 있어서,
경험하고 생각하면서 웃음 지을 수 있는 취미가 있어서,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실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리고 평범한 보통의 하루를 보낼 수 있어서,
아주 보통의 오늘 하루가 그저 고맙고 소중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