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랜트연구소 Nov 02. 2023

4번 죽였지만 포기하지 않는다_괴마옥

플랜트랩 연구대상 (1)

나의 첫 번째 괴마옥


괴마옥을 처음 본 건 4년 전, 엄마아빠를 따라간 화원에서였다.

몸통줄기는 거칠거칠 갑옷을 입은 것 같고, 또 머리에는 초록초록한 귀여운 싹들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마치 파인애플을 연상시키는 귀여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또 이름은 뭐라고?

예상치 못한 무서운 이름이 나를 한번 더 끌리게 했다.


자꾸만 눈길이 갔지만 작은 몸집대비 가격이 꽤 나갔던 터라, 우선 한번 더 고민해 보기로 하고 왔다.



화원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괴마옥은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결국엔 아빠가 인터넷 식물 가게에서 괴마옥을 주문해서 선물해 주셨다.

그때 당시 회사 업무가 정말 바빴던 터라, 괴마옥을 가장 오래 볼 수 있다고 생각한 사무실 책상에 자리를 잡아줬다.


다행히 사무실이 통창 건물이라 채광이 어느 정도 괜찮았던 건지 나의 첫 괴마옥은 금세 팔이 두 개나 생겨 뽀빠이 모양을 하고 있었다.

주말에 회사에 나오지 않을 때는 창가에 요리조리 옮겨놓으며 햇빛 샤워를 할 수 있게 도와줬던 덕인지, 2년 동안 한 번도 걱정시킨 적 없이 건강하게 잘 있어줬다.

항상 어느 정도 안정적인 온도에, 적당한 햇빛까지 있어서 별 탈 없이 컸었던걸 지도 모른다.


문제는 내가 담당하던 프로젝트가 종결되어, 다시 사무실을 이동할 때였다. 옮겨간 사무실은 채광이 좋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집으로 괴마옥을 이동시켰다.



그리고 한겨울에, 무작정 괴마옥을 베란다에 내놓았다. 갑자기 변화된 온도에 적응하지 못했던 걸까. 건강한 모습으로 2년을 함께했던 나의 첫 괴마옥은 집에 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줄기가 흐물흐물 해지며 병들었다.



꽤나 오래 함께한 친구였고, 내가 정말 좋아하며 키운 친구라 그런지 쉽게 보내고 싶지 않아 ‘괴마옥 살리는 법’을 열심히 검색하여 결국 괴마옥을 잘라보기까지 했지만. 속까지 물러버린 괴마옥을 살려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병든 괴마옥을 잘라서 혼자 확인하는 것도 사실 너무 무서워서 멀리 있는 엄마와 동생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괴마옥 자르는 순간을 함께 해달라고 했다.

괴마옥을 자르고, 더 이상의 가망이 없음을 확인한 후, 엄마와 동생과 함께 괴마옥의 장례식을 진행했다.


그렇게 나의 첫 괴마옥은 나의 곁을 떠났다.





두 번째 괴마옥


장례식을 함께 진행했던 동생이 내가 안되어 보였는지, 생일선물로 괴마옥과  작은 감자 같은 친구(스테파니아 에렉타)를 주문해 보내줬다.



이번엔 잘 키울 수 있겠지 하며 기대를 안고 괴마옥을 돌봤다.

하지만 내가 너무 무지했던 걸까. 괴마옥이 좋아하는 햇빛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블라인드 잔뜩 친 어두운 거실에 두고 건강하기만을 바랬던 것이다.


결국 나의 두 번째 괴마옥도 얼마 가지 않아 생을 마감했다.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괴마옥


동생이 열심히 선별해서 보내준 괴마옥이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동생에게 알리는 게 참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동생은 또다시 나를 측은해하며, 다음 연도 생일선물로 괴마옥을 두 마리나 주문해 보내줬다.

심지어 자구가 잔뜩 달린 어마무시하게 큰 친구들로 말이다.



다시 잘 키워보리라 다짐하고, 예쁜 돌화분을 사서 돈을 들여 꽃집에서 분갈이를 했다.


사실 이때, 이제는 절대 죽이지 않아야 한다는 압박이 나도 모르게 생겼던 것 같다.

물을 한번 주고 싶어도 자신 있게 주지 못했고, 물을 줘야 하는 타이밍도 감이 잘 오지 않아 계속해서 괴마옥 몸통만 눌러보았던 것 같다. (물론 이때도 햇빛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다)


물도 언제 줘야 하는지 제대로 모르고, 햇빛도 안보여주고, 통풍도 시켜주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서 나의 세 번째, 네 번째 괴마옥은 또다시 점점 수척해 갔고, 결국 허리가 꺾인 채로 생을 마감해 버렸다.


자구도 주렁주렁 달려있던 친구가 힘없이 땅에 누워버렸을 때, 더 이상 나는 괴마옥을 들이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동생도 나에게 더 이상 괴마옥을 보내주지 않았다.





 끝난 줄 알았지만...



다섯 번째 괴마옥


나는 괴마옥과 무슨 인연이라도 있는 걸까.

괴마옥을 다시 들이지 않겠다고 그토록 다짐했지만, 꽃시장에서 정말 작은 미니 괴마옥을 발견했다.


다육이 종류만 모아놓고 파시던 사장님의 가게였는데, 직접 자구분리를 해서 팔 하나를 뜯어 심어서 키우신듯한 느낌이었다.


가격도 2천 원.


‘그래, 이 정도면 나 다시 한번 시도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가게 앞에서 몇 번이나 고민하고 고민하고 결국 2천 원에 미니 괴마옥을 덥석 데려왔다.



저렴했던 가격이기도 하고, 체구가 작은 친구라 뿌리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고 분갈이를 하려고 엎어 봤는데, 생각보다 뿌리가 엄청 튼튼하게 자라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미니 괴마옥을 세라미스에 안전하게 심어줬다. 그리고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창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자리를 잡아줬다.



플랜트랩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새로운 싹들이 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건강하게 잘 자라나주고 있다.




마지막 잎새 같던 나의 미니 괴마옥.


마옥이가 나에게 선물한 희망이 너무너무 값지게 느껴진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변화된 식물 철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