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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랜트연구소 Nov 10. 2023

미안하지만 너의 뿌리는 공포였어_아스파라거스 메이리

플랜트랩 연구대상 (2)

아스파라거스 메이리와 처음 만난 건 올해 6월, 뜨거운 여름날.

친한 식집사 언니가 플리마켓을 열어 구경 갔을 때였다.


예쁘게 포장한 꽃다발들과 선별해서 데려온 귀여운 식물들로 작은 마켓을 연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의 눈길을 끌던 작은 친구가 있었다.


여우꼬리라고 불린다는 '아스파라거스 메이리'였다.



작은 몸집과, 바람에 살랑살랑 꼬리를 흔드는 귀여운 모습에 반해 집으로 데려왔다.  

혹여나 또 식물을 지켜내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나에게 언니는 메이리는 키우기 수월한 식물이라며 쉽게 죽지 않을 거라고 용기를 줬다.


집에 와서 며칠 적응시킨 뒤 분갈이를 하려 했는데, 언니가 미리 뿌리에 대해 겁을 줬던 게 기억이 났다.

뿌리가 생각보다 무서운 모습이니 너무 놀라지 말라고.


나는 사실 작은 벌레도 정말 무서워하는 편이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포트 화분에서 꺼내 흙을 털어주는데


메이리에게 너무 미안하지만,

메이리의 뿌리를 보고 통째로 던져버릴 만큼 기겁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허연 감자 같은 둥그런 알뿌리 여러 개가 주렁주렁 달려있던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민달팽이가 뿌리에 붙어있는 줄 알고 정말 놀랐었다.


아마 분갈이할 때 남편이 집에 있었더라면 대신 흙을 털어 달라고 부탁했겠지만, 혼자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의 울면서 분갈이를 진행했다.


원래 분갈이할 때는 뿌리에 붙은 오래된 흙을 털어주기도 하고, 새로운 화분에 넣기 전에 모양도 가지런히 해서 넣어주는데,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어서 알뿌리들을 젓가락으로 툭툭 털어서 대충 정리해 새로운 화분에 넣어줬다.



찾아보니 메이리 뿌리 모습에 나처럼 놀란 식집사 분들이 한둘이 아닌 것 같았다.

지금은 투명 슬릿분에 분갈이해 주어 메이리의 뿌리가 정말 잘 보이는 상태인데, 감자 같은 알뿌리는 몇 달째 보아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징그러운 알뿌리가 아스파라거스 메이리에게는 수분 저장 창고 역할을 해주고 있어, 기특한 녀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메이리는 물을 좀 말려서 키우는 느낌이더라도 항상 주기적으로 건강한 새순도 내어주고 싱싱한 초록잎을 유지했던 것 같다.



우리집에 온 이후 처음으로 내어준 새순
처음으로 꽃을 보여줬던 날. 작은 팝콘이 달린 것 같았다.





아스파라거스 메이리의 꽃말은 '변화가 없다'라고 한다.

아직 이 친구와 겨울을 제대로 함께 보내진 못했지만, 사시사철 초록초록한 모습을 보여줄 것 만 같아 꽃말이 공감되는 부분이다.


큰 변화는 없겠지만, 작은 팝콘 같았던 귀여운 하얀 꽃도 잔잔하게 보여주고 따뜻한 날이 다시 오면 새순도 마음껏 뽑아내며 플랜트 랩에 있는 동안 나의 메이리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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