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미터> 허연
마음이 가난한 자는 소년으로 살고,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 못 참고
내 후회는 너를 복원해 낸다
소문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오십 미터도 못가서
죄책감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무슨 수로 그리움을 털겠는가
엎어지면 코 닿는 오십 미터가
중독자에겐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지화면처럼 서서 그대를 그리워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십 미터를
넘어서기가 수행보다 버거운
그런 날이 계속된다
밀랍인형처럼 과장된 포즈로
길 위에서 굳어버리기를 몇 번.
괄호 몇 개를 없애기 위해
인수분해를 하듯,
한없이 미간에 힘을 주고
머리를 쥐어박았다
잊고 싶었지만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어떤 불운속에서도
너는 미치도록 환했고,
고통스러웠다
때가 오면 바위채송화
가득 피어 있는 길에서
너를 놓고 싶다
-------------------------------------------------------------
오십 미터 정도면 멀다고 하기에도 가깝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거리입니다.
이런 애매한 포지션은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화자의 입장이기도 하지요.
잊을만 하면 떠오르는 지독한 사랑은 오십 미터도 못가서 떠오릅니다.
엎어지면 코 닿는 오십 미터는 중독자에겐 호락호락하지 않은 먼 거리이기도 합니다.
이런 오십 미터의 모순은 '잊고 싶었지만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던' 옛사랑과 일맥상통하죠. 그렇기에 미치도록 환한데도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때가 오면 바위채송화 가득 피어 있는 길에서 너를 놓고 싶지만
시에서도 나오듯 무슨 수로 그리움을 털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