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밤>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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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시의 정석이라 여겨지는 나희덕의 시입니다.
길을 걷는다는 행위는 탈것을 타고 이동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수도의 느낌이지요. 달릴 때와는 또 다르지요.
걸어야만이 주변을 돌아볼 수 있고, 생각을 깊게 할 여지가 마련됩니다.
너에게 가지 않으려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알고보니 너에게 가는 운명입니다. 사실 너에게 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하루에도 몇번씩 네게로 두레박을 드리우죠. 사랑과 치욕이 범벅된 채 말이죠.
드리웠을때 걷어 올린 것은 수만의 길이지만, 이 길은 결국 또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감정을 인정하기까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감정을 정제했습니다.
미친 듯 걸어도, 수만갈래의 길을 걸어도 결국 너에게 향할 수밖에 없는 지독한 사랑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은 감동을 넘어 경건하게까지 다가옵니다.
이런 사랑이야말로, 평생을 가도 깨지지 않을 불멸의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